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통 Apr 21. 2016

세상의 모든 '나'에게

[와일드]를 보고




나는 잘 운다. 특히 불 꺼진 영화관에서는 정말 맘 놓고 운다.

모든 인생은 아름답다는 믿음을 가진듯한 이 영화, 와일드를 보면서는 정말 맘을 놓고 실컷 울었다. 눈물샘이 일찍 터지기까지 했는데, 그녀가 이제 몇천 킬로미터의 PCT하이킹을 오르는 시작,

그러니까 그 어마어마한 짐을 싸고, 그녀의 키만 한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안간힘을 쓰고 바둥바둥거리며 씨름을 할 때, 결국 메고서 일어섰을 때.  

그때 진즉 눈물샘이 터졌다.

  





저 작은 여자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 무시무시한 짐(별명도 있다 몬스터)을 지고 가려는 걸까.

왜 사막으로, 사람도 없는 곳으로, 몇 달이 걸리는 길을 가려는 것일까(죽을 수도 있는데!).

왜 자기 자신을 극한으로 내모는 걸까. 

글쎄, 아마 셰릴(리즈 위더스푼) 그녀 자신도 잘 몰랐을지 모르겠다.

영화 중반부에 그녀가 결정적으로 PCT하이킹을 다짐하게 된 계기와 이유도 나오지만, 정작 하이킹을 시작하기 전, 전남편과의 통화에서 그가 "셰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네가 그것 때문에 그렇게 몇천 마일을 걸어야 하다니..."라고 말을 맺지 못하자. 셰릴은 그 문장을 덥석 물고서, 바로 그에게 되묻는다.

"문장은 끝내야지. 내가 왜 수천 마일을 걷는다고?"

그는 문장을 끝내주지 않고 전화를 끊지만 셰릴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내가 왜 수천 마일을 걷는다고?' 


그 문장은 수천 마일을 걷는 사람만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어쩌면 이 영화 덕분에, 극장 안에서 그녀와 걸으며 나만의 문장을 완성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여정의 시작에 따뜻한 메시지를 하나 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잊지 마 언제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둬도 괜찮아."   




 

의지 충만,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의 고통 극복 인간승리의 스토리는 아니다. 예전의 나는 이제 없어. 나는 새로 태어났어라는 새사람 프로젝트도 아니다.

그저, 알았든 몰랐든(이럴 줄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든 싫든 자기 자신과 오롯이 붙어있어야 하는 그 시간을 견딘 것에, 그 많은 후회와 과거를 마주한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특히, 셰릴 자신이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됐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

 그 순간, 쉽사리 비집고 들어오는 답은,

 나의 불우한 어린 시절, 지지리도 가난했던 하루하루, 그리고 매정한 신이기 쉽다. 남 탓하는 건 언제나 쉬우니까. 심지어 탓할 거리를 찾아서 일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남 탓을 너머, 더 쉬운 것은, 자기혐오 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녀는 발톱이 너덜너덜 해지는 고통을 초래하는 하이킹 신발도 '원래 이렇게 아픈 건 줄 알았'을지 모르겠다. 난 영화 속 그 대사에도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작년 여름 누군가 나에게 여행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뭐라고 하겠냐고 물었다.

난 대뜸 "응급처치?"라고 말했다.

힘들거나 지쳤을 때 직빵으로 에너지를 채워준다고.

그리고 덧붙였던 말이 있었는데, 일상생활을 할 때는 너무 많은 소리가 들린다고. 회사에서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다른 사람들의 말이 너무 많이 들려서 마음과 몸이 갈팡질팡하고 내 소리가, 내 생각이 안 들릴 때가 많다고. 여행을 하게 되면 내 안의 소리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가장 나 다울 수 있다고. 


우린, 가장 나 다울 때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 


셰릴은 아름다워지고 싶어 했고,

수천 마일을 걸으며 좋든 싫든 자기 자신을 모두 만났다. 마지막 그녀가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날 엄청 울렸는데 그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하고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정작 내가 만난 모습은 사랑스럽고 부드럽다. 

문득, 내가 외로운 이유는 내가 나를 보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자꾸 밖으로 눈을 돌려 찾아 헤매기 때문은 아닌지...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어디 저 깊은 곳 내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나 자신의 모습을 안아주고 싶어 지는 것이다. 내가 애써 피하고 외면했던 그 굽은 등을 끌어안고 싶어 지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셰릴의 표정은 그렇게 가뿐하고 충만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가장 나 다울 때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You are not nothi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