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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통 Apr 17. 2016

출근길 옆 빵집

Je ne veux pas travailler. lol



버스 정류장 옆에, 빵집이 하나 있다. 아침 일찍 헐레벌떡 출근을 할 때면 이 빵집을 반드시 지난다. 

길고 길었던 구직기간을 생각하면 일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지만, 출근길은 종종 우울하거나 비장하다. 특히 꼬깃꼬깃 구겨지러 만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그 출근길 끄트막 빵집에서 구수한 빵 냄새가 나는 거다. 

유독 마음이 피곤하여, 출근길이 마치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하러 가는 길처럼 생각될 때, 그때 맡는 빵 냄새는 종종 서글프다. 서둘러 나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과연 나는 나답게 살 수 있을까,  언제나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만 쓰다가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고작 하루하루 무사히 버티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떠올라서, 그 좋아하는 빵을 사 먹기 위해서는 오늘도 일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것 같아서, 그래서 종종 서글프다. 

하지만, 일을 하는 덕분에 많은 걸 배웠다. 세상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일을 했기 때문에 내가 몰랐던 나를 더 알게 됐다. 질문이 많아졌고,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나를 지키며 나답게 사는 일이라고. 어쨌는 나는 나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그것으로도 의미 있다고.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출근할 때보다도 훨씬 일찍 일어나 버스정류장 옆 빵집으로 간다. 커피와 빵을 주문해서 자리에 앉는다. 이집은 아메리카노가 참 맛있다. 저렴한데 양도 많고,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딱 좋은 맛이다. 빵도 맛있다. 나는 뺑 오 쇼콜라를 즐겨 주문한다. 크라상도 좋고 초콜릿도 좋은 나한테는 그게 딱이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하면서 책을 읽거나 종이에다가 글을 쓴다. 어떤 것이든 마음껏 써 내려간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이 후련해지는 일이다. 간간이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주문을 하고 주문을 받는 소리, 영어와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저기 내 옆으로 버스가 지나간다. 매일 나를 구겨뜨려서 태우고 회사 앞에 떨구는 버스들이. 터벅터벅 회사에서 걸어나온 나를 태우고 집 앞에 떨구는 버스들이. 그리고 마침 고소한 빵 냄새 향긋한 커피 냄새를 타고 노래가 한 곡 들려온다. 


Je ne veux pas travailler.


Pink Martini의 Sympathique.

그냥 그를 잊고 싶지, 일하기도 싫고 점심 먹기도 싫다는 노래. 인생이 날 죽이려 들지만 착하게만은 못 살겠다는 그 발랄한 멜로디. 


유독 '나는 일 하기 싫어'라는 Je ne veux pas travailler 대목만 귀에 쏙쏙 들어온다. 

힉 어떻게 알았지. 나 지금 내일 출근하기 싫어서 이러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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