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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통 Nov 06. 2016

사무실을 나서며(집을 나서며-제페토)

내가 주인이라고 말하는데, 목이 멨다

어제는 근무하는 날이라 퇴근하고 집에 가려고 했다. 촛불도, 깔고 앉을 것도, 준비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무실을 나오는데 발걸음이 저절로 광화문으로 향했다. 사람들 목소리가 저만치서 들려왔다. 마침 청계천에는 예쁜 등도 달리고 관광객도 많고 군것질거리를 파는 분들도 많았다. 오징어, 쥐포, 닭꼬치, 호두과자, 땅콩과자... 나는 땅콩과자를 좋아한다. 살짝 들뜬 마음으로 땅콩과자를 한 봉지 샀다. 좋은 냄새가 따뜻한 종이봉투에서 올라왔다. 광화문이 가까워질수록 진풍경이 펼쳐졌다. 축제도 이런 축제가 없을 것 같았다. 어느 외국의 여행지에서도 이렇게 놀랍고 벅찬 축제는 가보지 못 했다. 일민미술관 앞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모여서 초와 종이컵을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서 종이컵과 초를 얻었다. 초를 준 여학생 옆의 여학생이 내 초에 불을 붙여줬다. 초는 따뜻했다. 땅콩과자도 따뜻했다. 그런데 왼손에 땅콩과자를 들고 오른손에 초를 들자니 뭔가 머쓱했다. 이 고등학생쯤 됐을까 싶은 소녀들이 저녁은 제대로 먹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는 나는데, 조금 쑥스러운데 다시 다가가서 땅콩과자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별거 아닌데 지금 산 건데 같이 드세요...

그랬더니, 그 소녀들이 너무 놀라는 거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냐는 듯 너무 놀라면서 좋아하는 거다. 나는 갑자기 목이 멨다. 


광화문 사거리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촛불문화제는 곧 시작됐다. 나처럼 혼자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단위로 나온 분들도 많았다. 저 앞쪽에 어느 아버님이 싱글벙글 자꾸 앞뒤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을 건다. 뭐라 하시나 귀를 기울였더니,


오늘은 경사 날이에요. 나 오늘 우리 아들 여자친구 처음 봤어. 우리 아들 여자친구가 있었네. 얘가 내 아들이고 얘가 아들 여자친구예요.


주위 사람들이 친인척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까지 막 흐뭇했다. 

아들과 아들 여자친구와 아버지는 나중에 합류한 어머니와 함께 싱글벙글 함께했다. 같이 외치고 손뼉 치고 앞뒤 옆 사람 나까지 모두 친인척처럼. 


문화제가 시작되면서 제페토의 '집을 나서며'를 낭독하는 영상이 나왔다. 

그랬는데, 울컥울컥하던 마음이 눈에서 터져버렸다. 생판 남들에게 둘러싸여 광화문 사거리 바닥에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 난감하다. 이런 데서 혼자 눈물이 터지다니. 하지만 조절이 되지 않는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내 주위에서 훌쩍훌쩍 소리가 들린다. 이런 게 '같이 울고 웃고'라는 건가


나처럼 혼자 와서 혼자 앉아서 혼자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앞에 검은 모자에 후드티를 쓰고 있는 남자도, 내 뒤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자도 혼자서 나왔다. 혼자가 많았고, 모여서 또 다른 하나가 되었다.

그동안 어디 숨어있었을까, 이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삼키고 있었나, 이 커다란 목소리를.

우리는 참고 참다가, 참는 줄도 모르고 성실히 참다가 부끄러움이 턱까지 차오르니 숨을 쉴 수가 없어 광장으로 모였다.

또 목이 멨다. 

내가 주인이라고 말하는데,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데, 목에 메였다.


그 자리에 앉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의 감촉도. 광장으로 나오는 설렘도, 여기서 받는 위로도. 수십만 명의 사람이 모여서 한 소리를 내면, 그 메아리의 울림이 어떠한 지도. 내가 그렇게 큰 소리로 '내가 주인이다'라고 말을 할 기회가 또 있을까.


문화제가 끝나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져서 구호를 외치거나 시민 발언을 하거나 집으로 갔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고 있는데, 앞에 앉으셨던 아저씨가 뒤돌아 나를 봤다. 기분 좋게 웃으시던 그분은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손을 내미셨다. 악수를 청하는 그 손을 보고 순간 당황했는데, 나도 덥석 손을 잡았다. 20살 초반의 딸과 함께 집회에 나오신 그분은, 우리 아빠처럼 키가 자그마하고 안경을 끼셨다. 손이 따뜻했다. 그분은 내 뒤의 학생에게도 악수를 청하셨다. 그 학생도 깜짝 놀란 얼굴로 당황하다가 곧 환한 얼굴로 그분 손을 잡았다. 


나는 내가 하도 못나고 미련해서, 부끄럽고 어쩔 줄을 몰라서 오래 숨어 지냈다. 겨우 혼자 지낼 공간을 바득바득 월마다 지키며 숨어지냈다. 모르는 사람이 수고했다고 손을 내밀어 주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집에 와서도 마음이 벅차서 한동안 멍했다. 멍한 건지 꽉 찬 건지. 

이럴 때 시를 읽나 보다. 이렇게 마음이 무엇으로 꽉 찼는데, 그 무엇이 마음을 사로잡고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 말은 보통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고 찾을 길도 없다. 

이럴 때 시를 읽나 보다. 그래서 시를 읽다가 눈물이 터지나 보다. 


자기 전 양치질을 하는데, 손을 씻기가 싫었다. 그 악수의 감촉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손을 씻기가 아쉬웠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인 오늘,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비누로 씻고, 대신 글을 쓴다. 기억하고 싶어서 글이라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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