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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새미 Jan 01. 2022

2021년 기록

사람, 투자유치, 여성됨, 코로나

크리스마스에 코로나 확진을 받아 재택치료 중이지만,

육아로 고된 재택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이렇게 2021년을 보낼 수는 없겠다 싶어 글을 남긴다. 아무래도 브런치는 1년에 한 두 번,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에만 활성화를 목표로 기록해 보겠다.


창업 2년차, 창업계 4년차 최새미의 2021년은 사람, 투자유치, 여성, 코로나로 요약한다.


1. 사람.

사람을 판단하는 법을 배우고, 움직이는 힘이 뭘까 고민했던 시간들이다. 2021년, 두 세 명의 사람들이 메이코더스와 고용관계를 맺다 나갔다. 회사의 내외적인 복지랄까. 빌드업 단계라 자금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급여체계나 과학기술인공제회 연계 복지 등 시스템을 추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나간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복지가 좋아 나가고 싶지 않지만 비자발적으로 나가야 한(내가 내보낸) 사람들. 나가고 싶어서 나간(스스로 나간) 사람들이다.


내보낸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거짓말 안하고 몇 달 더 함께 하다가는 회사가 망할 것 같았다ㅠㅠ 이렇게 작은 조직에서 200만원이 한참 넘는 인건비를 매달 잡아가면서(사업주 입장: 월급 액면가의 120%를 씁니다) 다른 사람들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껴봤다. 그 사람이 진정성 있게 일을 하는가, 그 이전에 과연 성의있게 일을 하는가, 아.. 사람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평가하는 나는 얼마나 잘났길래를 굉장히 고민했다. 그 소모적인 시간들이 모두에게 독이 됐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또다른 한편, 나간 사람들도 있다(사실 한명이다). 멤버십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포지션의 적합성을 고민하며 나갔다.


하여간, 회사에서 함께할 사람을 만나고, 고용관계를 맺는 것, 나아가 비전을 공유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사람과 돈의 무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인턴을 내보내고 정말이지 '현타가 왔다'. 급히 진단하기로는 회사의 '네임밸류'가 부족해서였다. 5인미만 중소기업. 소프트웨어로 글로벌 사업을 한다는 스타트업.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생활. 한 번도 보도된 적도 없는 회사. 2021년에 플레이를 잘 해서 창업 2년만에 연 매출 10억 원 규모로 점프했지만 우리에게는 이따시만큼 큰 매출이, 채용공고를 올리는 사람인에서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본다.


아, 누가 오겠냐!



2. 투자유치.

그래서 9월 즈음, 투자유치를 시작했다. 투자유치의 목적은 '네트워크의 확대'(로 읽고 '네임밸류의 상승'으로 해석했다). 당연히 창업도 처음이고 투자유치도 처음인 나. 투자받았다는 거창한 기사야 많이 나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하나 싶다.


초기에 창업을 할까말까 고민할 때 만났던 VC분들을 찾아 갔다. 아는 투자자에 전달 요청을 드렸는데, 리뷰를 받았다.


"눈에 안들어오네요."

"이력(학력)을 좀 더 강조해봐요."


음, 안좋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어떤 책에서 보니 별수확없이 VC랑 커피만 한잔하고 오게 된 상황인건지. 다른 VC는 시장규모나 프로젝션 산출이 잘못됐다고 했다. 뭔가 월매출 1억원도 달성하고 목표 중심으로 잘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멤버가 나갔을 때가 떠오르면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더 기다리지 않고 TIPS 프로그램에 진입하기로 했다. TIPS 프로그램은 창투사의 투자 이후 정부가 매칭해 지원해주는 창업지원제도다. 사실 자체적으로 비지니스 모델이 돌아가고 있는터라 초기 투자로 지분을 많이 희석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 성장할 때까지 투자유치에 주저해 왔다.


그런데 TIPS 프로그램이라면 합리적으로 창투사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초초 범생이같은 순한맛 내 사업 스타일과 잘 맞는 프로그램 같았다. 창투사에 직접 지원하고 엘리베이터 피칭하면서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어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보다 말이다.


그래서 TIPS 홈페이지를 통해 #카카오벤처스 #더인벤션랩 두 곳에 사업계획서를 접수했다. 포트폴리오상 핏이 맞아 보이는 곳을 나름대로 선별했다. 먼저 더인벤션랩에서 연락이 왔다. 사업설명을 했고, 지금 운영중인 서비스를 보였고, 투자유치중인 새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을 보였다. 이전과 달랐다. 반응이 있었다. 심지어 긍정적이었다. 아, 내 아이템이 괜찮은가? 생각이 들었다.


카카오벤처스에서는 한달만에 연락이 왔다. (TIPS홈페이지보다 자사 홈페이지로 접수했으면 더 빨랐을 것이라는 얘기도ㅎㅎ) 코로나 확진자가 한창 늘어나고 있을 때라 모든 미팅이 줌으로 이루어졌다. 첫번째 피칭에서 VC에게 좋은 아이템이고 잘 하고 있으므로 더 자신감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팀장님과 미팅을 잡았고, 대표님과 미팅을 잡았다. 투자심의위원회도 열렸다. 나는 그 단계단계의 의미를 잘 몰랐다. 줌미팅에 피피티를 안 켜놓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의 대표란, 무릇 자료를 들고 다니며 설명을 하는 사람인데...? 완전 허접하다ㅎㅎㅎㅎ 발표와 질문이 이어지고 여러 종류의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면서 허접이도 서서히 고통받으며 구원되었다.


이후 투자조건을 협의하고 각 조건이 명시된 텀싯을 받고 계약서를 검토했다. 중간에 이런저런 고민들이 있었고, 투자심의에 앞서 걱정도 많이 됐지만, 성과가 돼서 너무 다행이다. 3~4개월에 걸쳐 절차를 마무리하고 투자 확약을 받았다. 목표한대로 사람들이 솔깃하게 들을만한 투자를 유치했고, 내부 구성원들은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처음에 투자유치는 논문 디펜스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내 연구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반박을 하고 내가 재반박을 하는 과정 말이다. 오해였다. 뭐랄까. 투자유치에는 '(미래향) 나의 확신'이 강하게 들어가야 한다. 아이템에 대해서는 대표가 가장 잘 아는 것이 맞다. 전문성이 높거나 낮은 이런저런 질문에 대해 확신이 들어간 답을 하지 않으면 아이템이 빛을 잃는다.


자신감 있게 확신을 표현하는 일은, 정말이지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이 험하고 확률적으로 불안정한 세상에 무엇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가 슬그머니 말을 바꾸는 것을 오히려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때로는 이해를 위해 과도하게 풀어 말하기보다 약간 어려운 과학 어휘를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해 자명한 것이 아니면 별로 말하지 않는다. 이런 성향과 말하기가 투자유치에는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훨씬 더 바닥까지 내려가서.. '내가 사업가 기질이 있기는 한가'를 생각했다.


그래도 뭐 어쩐단 말인가. 시간은 가고 프로세스는 흘렀다. 돌이켜보면 내 성향을 바꾼다기보다는 나와 맞는 투자자, 나와 맞는 비지니스가 진행'된'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내가 다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때그때 닥치는 일들을 처리하고 되는 것에 집중한 결과이다ㅎㅎㅎ. 어쨌든, 내년도에는 20평대 사무실에서 몇 명의 사람을 충원한 채로 3~4배 매출 성장을 목표로 달릴 수 있게 됐다. 보도자료도 몇 개 내보고 할 것이다(!)





3. 여성됨.

더인벤션랩에서는 무역협회 글로벌스타트업스쿨 5기에 참석하기를 권유 받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무려 90팀(!)이나 지원했고, 1차에 20여팀, 2차에 10개팀 정도가 선발된 프로그램이었다(!). 와 경쟁률 대박. 멘토나 멘티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ㅎㅎㅎ 아마 내가 '멘토링' 프로그램 공지만 보고서는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 코로나 상황으로 이사님이랑 미팅만 줄곧하고 데모데이에 이르렀다. 편견과 달리 재밌는 제안을 해주셨고,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데모데이에 두둥


대표 중 여성이 나 한 명.

스텝까지 다 합쳐도 여성 두 명.


인 것을 알게 되었다. 1차 선발 단톡방에는 여성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몇 명 더 있긴 했는데... 최종에는 나 빼고 전부 남성이었다.


 ‘스타트업레시피 투자리포트 2020’를 보면,
지난해 투자를 유치한 여성 창업기업은 전체의 6.6%인 54건에 그쳤다.
투자 받은 금액도 총 3313억원으로 전체의 8%에 머물렀다.
한겨레, 2021-03-08.


아, 그렇구나. IT융합 비지니스모델이 기반이 되는 것들을 스타트업으로 불러서 그런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여학생 비율도 저정도 될테니 이치에 맞나 싶다가도, 경영학을 전공한 여학생 비율은 저정도 보단 훨씬 많을 건데 싶다. 스타트업 관련 여성 엄청 적다는 것이 너무나도 체감됐다. 마켓컬리로.. 퍼블리로.. 닷페이스로.. 보았던 대표님들의 투자유치와 플레이가 새삼 더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줄곧 여성인 것이 뭐 대수야, 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냥 숫자로 인해 공기처럼 뭔가가 깔려있다. 더 고민하면 부정적 생각이 들어 안될 것 같다.


아무튼 데모데이는 잘 마쳤고, 여러 단위의 새로운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4. 코로나.

크리스마스날 온가족이 확진을 받았다(!) 많은 사람이 걱정의 메시지를 보내주었지만, 민망스럽게도 나는 감기 이하의 경미한 증상, 남편은 몸살앓이, 애기는 무증상이었다.


타이밍이 좀 절묘했다. 나는 쉴려고 하는 타임이었고, 아기는 방학을 앞두고 있었으며, 남편은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야 하는 시점이었다. 재택치료에 들어가면서 쉬지 못하게 됐고, 놀지못하게 됐으며, 결론을 지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일을 못하게 됐다. 남편은 아파서 계속 잤고, 육아와 가사는 온전히 내 몫이 됐다(!).


체력이 좋은 아기 돌보기와 (전원이 하루종일 머무는) 집안일을 동시에 독박쓴다는 건 정말정말정말 어렵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말이다. 그동안 어머니들에게 90%정도 도움을 받았는데 그 빈자리를 내가 온전히 채우려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아파서 누워있는 남편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내가 서글퍼 정말. 우씨.


첫날 둘째날에는 시간표를 짜서 콘텐츠를 채워보려고 했다. 9시~12시 물감놀이, 12시~1시 점심, 1시~3시 글자쓰기 책읽기 이런식으로 말이다. 물론 첫날부터 실패했다. 폰으로 잠깐씩 일을 한다는게 자꾸 폰중독자처럼 보게 되었고, 아기에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다. 밥도 짓고 끓이고 하다가 만들고 치우기가 힘들어 짜장라면도 주고 샌드위치 시켜서 먹고 그렇게 됐다. 첫날에는 대충 실패했고, 둘째날에는 아예 실패했고, 셋째날부터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됐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콘텐츠를 일일이 짜서 콘트롤하겠다는게 불가능한 일이다. 아기랑 나, 우리는 같이 '산다'. 매번 선생님처럼 특별한 활동을 준비해준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산다는 건 서로 그럭저럭 존재하는 것 아닌가. 아기라서 못하는 부분을 내가 일방적으로 돌봐주는 것은 맞지만,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하느라 서로 지치면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단지 내가 아기를 키우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할 때 꼭 그렇게 얘기한다. 이러이런게 어려웠구나, 어떻게 풀면 좋을까. 하면서. 손을 못씻겠다고 하면 어려운 이유를 이야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히 해야할 행동을 짚어보는 식이다. 남편과의 일상대화에서도 "문제는 ~~야"를 잘 얘기하다보니 아기도 가끔 그렇게 말한다ㅎㅎㅎ


세부적인 것은 어짜피 내가 못해. 큰 방향성만 지켜보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저렇게 서로 부대끼면서도, 살아가기 위해, 너무 세세히 관리하지는 않고 열심히 몸을 회복한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집요정 도비는 자유가 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회사의 큰 방향성을 공유할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것이다.


2021년의 인사실패 케이스들은 내가 내보냈거나 스스로 나갔거나  가지로 보이지만, 사실 문제는 하나였다.  방향성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 애초에  방향성을 공유할 사람을 찾아 설득 후 일을 시작했어야 했고, 이미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어 함께 일을 시작한 사람과는 방향성을 확실하게 공유했어야 한다. 어떤 직무적 필요나 지원사업 기회에 의해 일하게 된 사람들은 방향성에 대해 공감할 애티튜드가 적극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나라는 사람에 애정을 갖고 시작한 사람이라도 함께 성장하려면 내가 더 큰그림을 그려 보여줬어야 하는 것이다.


2021년에 그런 와중에도 함께할 사람들이 있었다는 . 실낱같은 뭔가를 찾는다. 2022년에는 방향성을 훨씬  그려볼 것이고, 공유할 사람을    만날 것이다. 아, 이건  자명하게 말할  있겠다.  건강히 고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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