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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현 Sep 09. 2020

1. 환멸나는 데이팅앱 만들기

데이팅 앱 디자이너의 인사이트부터 런칭까지

데이팅 어플 리디자인 프로젝트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때 나는 무척 들떠있었다. 

컨셉부터 기능, 디자인까지 모든 권한을 일임받아서가 첫번째 이유였고, 정말로 성과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계약구조였기 때문. 현재 게임을 제외한 국내 어플리케이션 매출순위 상위 20위 중 무려 7개가 데이팅어플(이 아닌척 하는것까지 포함해서)이다. 이거 잘 되면 나 진짜 부자되는거 아닐까?



데이팅어플을 꽤 오랜기간 사용했고, 실제로 매칭 된 사람과 데이트도 해봤고, 그 중에 꽤 오래 만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유명한 앱들이 그렇듯 사용성도 훌륭했고, 그다지 불쾌한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경험은 현재 거주중인 영국에서 겪은 일들.

국내 시장과 정서에 맞는 데이팅 앱을 위해 리서치에 착수했다.


하지만 리서치를 시작한 바로 첫날부터, 아주 깊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현재 존재하는 데이팅 앱 시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이 있으니 해당 회사 재직자, 사용자 혹은 누구든 불쾌하게 받아들일 분들은 굳이 읽지 않으시기를 추천.


일차적으로는 시장, 경쟁업체 조사. 국내 데이팅 앱은 크게 세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다른 데이팅앱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데 친구만들기 앱으로 포장한 경우. 이 경우는 대개 근처에 있는 사람을 찾아주는 것을 메인 기능으로 한다. 동네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 하며 알아가는 것이 이 앱들이 설정한 이상적인 경험인듯. 하지만 누가봐도 이성을 만나려는 목적의 앱을 친구 찾기로 포장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물론 그런 브랜딩이 먹히니까 여기저기서 사용하는 것이고 우리 정서상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꼴보기 싫다.

둘째. 외모, 직장 등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거나 회원을 선별하는 경우. 제일 제일 제일 싫은 경우. 안그래도 팍팍한 현대사회에 굳이 일조할 필요가 무엇인가. 심지어는 금수저들만을 위한 앱이라면서 남성은 재산/직업/슈퍼카/부동산 등을 인증해야 하고 여성은 직업 혹은 외모를 인증해야 하는 앱도 있다. 이런 앱들이 있는것부터가 환멸포인트인데 더 싫은 부분은 이게 셀링포인트가 되어서 아주 잘 나가고 있다는 점. 이런 앱을 원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고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유저들이 많다는 점.

셋째. 매칭, 혹은 프로필 보기에 횟수제한을 두어서 조금 더 상대방에게 집중하게끔 하는 앱. 이 경우에는 초기에 시작할때 유저 풀이 작더라도 티가 많이 나지 않는다는 (회사쪽의)장점이 있다.



왜 데이팅앱을 데이팅앱이라고 부르지 못할까?

심지어는 틴더마저도 친구를 찾아보라고 외친다. 세상에 누가 틴더에서 불알친구를 만난단말인가. 틴더에서 이성적 매력이 전혀없지만 너무 잘 맞는 친구를 만나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이건 데이팅앱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다. 

데이팅 앱을 쓴다? 너 진짜 외롭구나, 너 진짜 간절하구나, 거기 현실에서 여자/남자 못만나는 찐따들이 쓰는거 아니야? 등등. 최근에는 그나마 많이 대중화 되어서 주변에 쓰는 사람들도 곧잘 봤지만 여전히 본인이 앱 내에 리스팅되어있다는 사실을 달가워하는 분위기는 아닌듯 하다.

우리 사회는 정말 정말 이상하다. 애인이 없으면 눈치를 주면서 상대를 열심히 찾으면 또 눈치를 준다. 대체 어느장단에 춤을 추라는건지. 



외모, 재력 등급제 이정도면 불법이어야 되는거 아니야?

이 리디자인 프로젝트의 원형은 사실 일반인 인기투표 앱이었다. 하지만 앱스토어에서 콘텐츠가 부적절하고 유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번번이 심사에서 탈락, 인기투표의 기능을 다 쳐내고 아쉬운대로 최소한의 데이팅앱 기능만 가지고 런칭을 한 프로덕트이다. 

자 그렇다면 외모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합격 불합격을 매기는 앱은 어떻게 승인이 된것일까? 청소년에게 무척이나 유해한 컨텐츠 아닌가? 남성들은 슈퍼카나 부동산, 재산 증명을 해야하고 여성은 외모 인증만 하면 되고? 욕이 안나올수가 없다. 이게 안 유해하면 대체 뭐가 유해하냐고! 한다리만 건너면 이 특정 금수저 앱을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가정 환경이 유사하고 수입이 비슷한 사람과 만나보니 트러블도 적고 잘 맞아서 좋더라, 그런 사람을 또 만나면 좋겠다', 정도인지 '나는 재력이 이정도 되니 학력이 어느정도 이하인 사람은 안만나겠다' 같은 선민의식인지, '돈 많은 남자 만나서 팔자 펴야지' 인지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도 재력에 큰 매력을 느껴서 마음이 많이 가는 타입'인지 나는 알 바가 없다. 



이런 시장 앞에서 순수하게 편견없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앱을 만든다면, 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멍청하고 순진해빠진 생각일까? 직업이나 재력, 학벌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상대방을 찾는 사람들은 진짜 진짜 극소수여서 절대로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까? 

주변에 크게 잘나지도 크게 못나지도 않은 사람들끼리 잘 만나서 잘 연애하던데 그런 느낌을 온라인으로 옮겨놓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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