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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Aug 07. 2016

우리엄마 이름은 엄마다.

우리엄마는 어쩜 그렇게도 엄마일까?

둥글납작하니 손바닥만 한 게 골각지 안 끼게 오이지 눌러놓으면 참 좋겠네.. 하시더니만

엄마는 계곡을 따라 주룩이 모아오신 돌로 공든탑을 차곡차곡 지으신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에 손자, 손녀들 이름까지 하나하나 구슬을 실에 꿰듯이 다독다독 부르시며 정성들여 기도를 하신다.


"그저 우리 자식들 모쪼록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만 해 주십사, 하는 일들 모두 잘 되게 해주시고, 원하거든 다 이룰 수 있게 해 주십시요."


그렇게 자식들, 손주들, 사위 며느리까지 살뜰히 챙겨서 한놈이라도 복을 덜 받게 하지 않으려고 기도를 하시면서 정작 그 기도에 엄마를 위한 기도는 처음부터 나중에도 없다.

 어느덧 엄마가 된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러지 않던가? 날 때부터 엄마가 어딨냐고, 자식을 낳았다고 저절로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고.


애지중지 자식을 키우면서 열댓 번은 가슴이 철렁하도록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어 금방이라도 숨이 꼴딱 넘어가게 생긴 갓난쟁이를 둘러업은채 응급실 몇번은 들락거려봐야 하고, 아장아장 걷는 걸음이라고 우습게 봤다가는 도깨비처럼 금새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아이를 찾느라 간이 밑바닥까지 뚝 떨어지고, 순식간에 꽈당 엎어져서 이마를 세면 바닥에 콕 하고 찧는 바람에 심장이 오그라들고  애간장이 녹도록 그렇게 몇번이고 가슴팍을 흠씬 두들겨 맞아가며 담금질을 당해봐야 비로소 엄마가 되어가는 거라고..


딱히 부족한 거 없어도 밖에 내놓으면 그냥 안쓰럽고 딱하고 가슴이 저린 내 새끼를  키우며 조금씩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거라고.. 그런데 암만 생각해봐도 우리 엄마는 날 때부터, 배냇짓할 때부터 연습도 없이 그냥 엄마였었나 보다. 어찌그리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일까?


사려니 숲은 습하기까지 한데다가 더운 열기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훅훅 하며 뜨거운 찜통 열기가 느껴졌다. 아직 절반의 반도 못 걸었는데 엄마는 많이 지쳐보였고, 연신 흐르는 땀으로 목까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쉽지만 끝까지 다녀오는게 무리인가 싶을 즈음에 엄마가 결국 참다못해 물으셨다.


"언제까지 가야 되니? 끝까지 가면 거기에 뭐라도 있니"?


"아니, 그냥 끝까지 이런 삼나무 숲길이고 오솔길 같은 산책로야"


" 그럼, 이만 돌아가자. 끝까지 가면 뭐라도 볼거리가 있다든가, 아니면 하다못해 약숫물이라고 먹을 수 있다면 모를까 물색없이 뭐하러 거기까지 가니? 이만큼 실컷 봤으면 그만이지." 


" 엄마, 사람들 좀 봐. 다들 천천히 손잡고 걸으면서 하늘도 보고 초록잎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그러면서 다정하게, 즐겁게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그냥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누리는 거야. 꼭 목적이 있어서 거기까지 가진 않아."


안타까움에 말해놓고도 왠지 마음 한귀퉁이가 저릿했다.


" 그러니? 난 또 부지런히 가면 뭐가 나오는 줄 알았지. 알았어, 그럼 우리 딸하고 손 붙잡고 천천히 걸으면 되네?"

그러면서 '아이고, 참 좋다' 하시며 두팔을 하늘로 활짝 벌리시는데 조금은 멋쩍으셨나?


" 엄마, 우린 관광을 온 게 아니고 여행을 온 거야. "


한 차에 가득 싣렸던 아줌마들이 동서남북으로 정신없이 끌려 다니던 관광버스에서 하나같이 울긋불긋 비슷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왈칵하고 쏟아지듯  내리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부지런히 구경을 한다. 시간맞춰 부리나케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목청높여 오라이를 외치면 어느새 다음 목적지로 내달려 미리 예약된 식당에 들러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다시 또 시간맞춰 다음 행선지로 향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의 관광이 여행이셨던 엄마는 한없이 한가하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천천히 걷는 여유가 왠지 불안하고 낯설게 느껴지셨나 보다.


 아니, 그보다 우리 엄마는 평생을 식구들 건사하느라 무릎연골이 맨들하게 다 닳도록 부지런히 빨래하고 청소하고 하루종일 끝도 없이  종종거리며 온 집안을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닦아대고 반들반들 윤기가 나게 만들었어야만 직성이  풀렸고, 매 끼니때 맞춰 뚝배기에서 보글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따끈한 밥상을 차려내야만 했었다. 언제나 부리나케 시장에 다녀와 엉덩이 붙일 사이도 없이 지지고 볶고 끓이고 해대느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얼마나 숨이 차고 가쁘셨을까? 그러니 별 뚜렷한 목적이 없이 걷기만 한다는건 멍하니 허송세월 같고 괜히 할 일 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 같아서 조급증이 올라오고 멀자가 나셨던 거다.


우리엄마의 삶이 그랬다. 엄마는 그렇게 평생을 집안일에서 못 벗어나고 묶여서 사셨다.

엄마에겐 한번도 이렇게 잠시라도 멈춰서서 여유라는 걸 느껴볼 틈이 없으셨다.

부지런히 시장 다녀오고 부지런히 밥하고 그러는 동안..어느새 부지런히 시간이 흘러 어느새 일흔 하고도 여섯이나 꼬박꼬박 거르지않고 부지런히도 나이를 챙겨드셨다.


"뭐하러 우두머니 앉아있니? 뭐라도 일을 찾아서 부지런히 해야지. 시간 날 때 그저 구석구석 쓸고 닦고, 틈틈히 식구들 먹일 밑반찬이라도 하나 더 해놓고 나가기 전에 서둘러서 이것저것 정리정돈 해놓고, 얼마나 할 일이 산더민데.. 얼마나 바쁜데.."


그런데 엄마, 어쩌다 하루쯤은 매일 하는 집안일 좀 안 한다고 큰일 일어나지 않고 누가 흉보는 것도 아니야. 그냥 다 내려놓고 쉬기도 해. 이렇게 한가하게 햇살도 바라보고 풀향기도 맡고 새소리도 듣고 바람도 느껴보고.. 그렇게 잠깐 쉬었다 가도 되. 그래야 정말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 더 중요한 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되..


우리 엄마 유한순 여사님 설거지감 누가 안 뺏어가. 어차피 돌아가면 다 엄마 일이고, 엄마 빨랫감도 누가 안 훔쳐가. 어차피 돌아가면 그대로 엄마 거야. 그러니까 이제 가끔은 엄마를 위해서도 좋은걸 주자고..맛있는 생선 가운데 토막도 엄마가 먹고, 향기로운 꽃향기도 엄마 머리맡에 두고, 제일 따뜻한 아랫목도 여기저기 들쑤시는 엄마 어깨며 무릎팍을 위해 양보하자구..


"고맙습니다,  엄마. 내 엄마로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엄마딸로 태어나게 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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