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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Aug 01. 2016

덥지만 따뜻한 여름날에..

세상은 이렇게 늘 다정하다. 그래서 고맙고 감사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푹 익혀질것 같이 속에서부터 뜨거운 김이 올라온다.

저절로 자꾸만 찬걸 챙겨먹게 되고 시원한 곳을 찾아 들어간다. 다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내뱉는 숨마다 주변 공기의 온도를 조금씩 더 높이는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오늘 점심은 머리가 쨍하고 깨질것 같이 차가운 동치미 국물이 육수로 나오는 냉면집에 가고 싶었다. 일찍부터 길게 줄을 선 냉면집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이미 서걱서걱한 살얼음과 함께 새콤달콤 시원하고 칼칼한 동치미 육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가게 안의 손님들 표정들을 살짝씩 엿보았다. 손님들의 표정에서 역시나 줄까지 서서 냉면을 먹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받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맛을 곧 만나게 될 시간이 기분좋았다.


그런데 이 냉면집은 여름엔 냉면을 겨울엔 육계장 칼국수를 대표 메뉴로 파는 집이다. 그래서 작년 겨울 처음 이 가게를 찾았을땐 육계장 칼국수를 먹었었다. 아빠가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 가시고 그런 아빠를 돌보느라 아침저녁으로 몇 번씩 집, 직장, 엄마네집, 그리고 병원을 오가며 한동안을 식탁에 앉아 제대로 된 밥을 챙겨먹을 여유가 없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더 춥고 새벽부터 꽁꽁 얼어붙은 날이었다. 잠깐 짬이 나서 대형 마트에 들렀었다.


아빠는 병원에 누워 계시니 어쩔 수 없다해도 엄마까지 당신 혼자 드시겠다고 챙겨 드시지 않으니 장을 봐다가 냉장고라도 꽉꽉 채워드리고 싶었었다. 아무리 경황없고 귀찮더라도 냉장고를 열었다가 뭐라도 눈에 보이고 쉽게 손에 잡히면 꺼내 드시지 않을까 싶었었다. 그래서 장을 보고 있는데 마침 근처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따로 시간을 내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여유까지는 없어서 후다닥 달려나온 친구랑 식품코너 두 바퀴를 도는 동안 잠깐 얼굴을 보고 그간의 안부를 주고 받았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했다. 서둘러 친구와 헤어지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있었다.


잊은게 있었는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고 잠깐만 기다리라며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며동안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을텐데.."


"날씨도 너무 추운데..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지조차 잘 모르겠어서.."


"그냥 따뜻한 국물이라도 한그릇 먹여 보내고 싶어서.."


렇게 처음으로 함께 찾은 이 집에서 나는 속까지 뜨끈뜨끈 해지는 육계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미 초저녁 시간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날 첫 끼니였었다.

너무 춥고 고달프고 지치고..

바늘 끝 물방울처럼 예민해지고 불안했던 모든 감정선은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끄트머리에 메달려 있었다.  


모든 픔이 몽땅 내 차지 같았던 그 겨울은, 멀리서 봄소식을 듣고도 밖은 아직 영하의 날씨여서 여전히 어깨는 파들대고 추웠었다. 그날...따뜻한 국물로 시린 몸을 녹여주었던 친구가 곁에 있었고 잠시동안 몸도 마음도 한없이 든든하고 따뜻했었다.


그리, 다음날 아빠는 조용한 새벽시간을 택해  평화롭게 먼 길을  떠나셨다.


갑자기 친구가 보고싶었다. 근처라고 전화를 하니까 너무 더워서 기절할 것 같다고 엄살이었다.


"나와, 그 더위 내가 식혀줄게."


겨우   거리라 미리 주문을 해놓고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꾸만 고맙고 감사하다. 덥지만 한없이 선하고 따뜻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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