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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Aug 17. 2016

옆집 남자가 수상하다.

몰라도 될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불편함..

저녁식사 설거지를 마치고 9시 뉴스를 보는 남편에게 과일 한 접시를 갖다 주고 나면  주부 놀이도 드디어 퇴근이다. 기르는 강아지 중 한 녀석만 데리고 편한 슬리퍼를 발뒤꿈치로 직직 끌며 산책을 나간다. 하루 일과 중 특별히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저녁 산책길에 옆집 남자를 자주 보게 됐다. 요즘엔 아침밥을 올려놓고 부지런히 강아지 세 녀석 모두를 산책시키는 새벽 6시에도 매일 옆집 남자를 만난다. 서로 터놓고 인사까지 나누며 지내는 사이는 아니라서 잠깐 동안의 서먹한 마주침이나 스쳐 지나가는 몇초의 불편함을 견뎌내고 있다.


내가 강아지를 데리고 천천히  단지를  두 바퀴 도는 동안 옆집 남자는 내내 등나무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핸드폰만 들여다본다. 하필 단지의 한가운데 등나무 벤치가 있어서 오며 가며 일부러라도 안 볼래야 안 볼 수도 없다.  매번 마주치는 모습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이었고 처음엔 그저 게임을 하나 싶었는데 누군가와 끝없이 문자를 주고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방정맞게 '카톡카톡' 대던지..남자들이 누군가와 새벽부터, 밤늦게 한 시간이 넘도록 문자를 주고받기도 하나? 할 수도 있겠지, 무슨 상관이람. 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필 그 옆을 지나가고 있을 때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전화기 저편의 상대방은 약간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진 젊은 여자였다. 도대체 무슨 소릴 들었길래 '까르륵까르륵' 세상 명랑한 웃음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여자의 직감이란건 남의 일에도 쓸데없이 적중한다.


별로 웃긴 것 같지도 않은데 한참 좋을 때라서 그런가  남자는 그저 조용조용 이야길 하는구만 여자는  웃음소리가  자동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처럼 숨넘어가게 잘도 웃더라.

생전 본 적도 없고, 어디쯤에 사는지도 모르는 전화기 너머의 여자에게 묘한 적개심이 들었다.


옆집은 3년 전 봄에 우리 집 옆으로 이사를 왔다. 그동안 한 번도 옆집 여자의 웃음소리는 열어둔 문밖으로도 흘러나온 적이 없었다. 어쩌다가 마주치는 복도나 현관 앞, 엘리베이터와 주차장에서조차 늘 약간씩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미소 띤 모습도 보기 힘들었었다. 그저 늘 몸가짐이 다소곳했었고 얌전하기만 했었다.

가끔 복도를 지날 때면 한참 말썽이 많은 이제 다섯 살, 여섯 살이 된 연년생 사내 녀석 둘의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어쩌면 그렇게 한 개도 안 무섭게 "엄마가 하지 말랬지" , "엄마 회초리 든다" , "이거 또 누가 그랬어" , "이느무시키들 일루 안 와" 하면서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고 무한 반복을 하듯 들리는 소리가 전부였었다. 그러니 그녀의 웃음소리가 어떤지는 들어보질 못 했다.


'나쁜 놈'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일러바치고 싶은 아줌마의 오지랖이 불뚝거렸다.


오늘 아침 출근길엔 서로 인사 같지도 않게 어색한 눈인사 정도를 나누며 옆집 부부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여자는 거울을 보면서 아직 덜 말리고 나온 머리를 만졌고 그 뒤에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 그놈의 핸드폰 문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잠깐의 마주침조차 어색하고 불편해서 층수가 바뀌는 번호판만 바라보며 내려가는 숫자를 따라세고 있거나 괜히 애꿎은 핸드폰을 만지며 오지도 않은 문자만 확인하고 있었을 텐데 나는 안 보는 척 하면서도 둘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는 어제의 피로감을 밤새 다 내려놓지 못한 채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건지 여전히 웃음기라곤 없었다. 생기 없이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습자지처럼 얕은 한숨을 쉬었고 습관인 듯 몇 초 뒤에 또 한숨을 쉬었다. 그런 여자의 뒤편에 서서 전혀 내 탓 아니고 아무 상관 없는 사람처럼 무심히 저장된 문자만 훓어내리고 있는 남자의 핸드폰을 순간 휙 소리가 나게 빼앗아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벌써부터 옆집 여자의 편인 게 분명했다. 그녀의 무조건적인 동지였다. 그녀가 '폭~폭~' 알 수 없는 한숨을 내 쉴 때마다 속으로 다독이듯이 "괜찮아, 그까짓 거 겨우 남자 하나일 뿐이야.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는 마음으로 눈물처럼 발등으로 뚝뚝 떨어지는 한숨소리를 들어 올렸다.


일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잘 다녀오세요" 하는 인사를 여자에게 건넸다. 예상치 못했던 내 쪽에서의 인사에 여자가 잠깐 주춤하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어색한 웃음으로 "네.. 잘 다녀오세요" 하고 답을 해 왔다. 그 뒤에 멀거니 서 있던 남자는 자기도 덩달아 인사를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쭈삣쭈삣 여자가 남긴 인삿말 뒤에 엉거주춤 묻어서 평소보다 조금 더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속으로 옆집 남자를 아침인사에서 재외 시키고 있었다.


"너는 말고 시키야..나쁜놈"

이제 옆집 남자는 나에게 '옆집 남자' 말고도 '나쁜 놈' 으로 칭함을 얻었다.


실은 삼 년 전에 그들이 옆집 사람이 되던 날은 선뜻 먼저 용기내어 인사를 건넸었다.

그때는 재작년 가을  먼저 떠난 첫째 강아지를 포함해 네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고 다행히도 하나같이 순댕순댕이라 여간해서는 짖는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낯선 사람의 인기척은 귀신같이 구분해서 택배아저씨나 가스 점검, 복도 청소 아줌마, 세탁소 아저씨, 계량기 검침 아저씨가 오면 있는 힘을  다해서 왁왁 짖어댔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민폐를 끼치게 될테고 운이 없어서 개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으니 이쪽에서 먼저 굽히며 양해를 구했고 어쩔 수 없이 비굴한 처지가 되어 반갑다고 인사를 하면서 어쩌면 조금은 과하게 친절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한참 개구지기 시작할 세 살, 네 살 사내녀석 둘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대환영이었고 내심 다행이었다. 옆집 아이들의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와 우리 아가들의 왁왁 짖어대는 소리를 맘편히 퉁치고 싶었다. 이사 오던 날에는 아침부터 부산스러워서 제대로 못 챙겼을 아이들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음료수와 함께 전해주기도 했다. 당장에 제일 급한 가스 연결을 할 수 있도록 도시가스와 중앙관리실 전화번호, 그리고 어차피 당일엔 집에서 저녁을 해 먹긴 어려울게 뻔해서 근처 맛있는 중국집이랑 치킨집 전화번호까지 친절하게 적어 주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후로 삼년 가까이 같은 복도를 쓰고 살면서도 서로가 대면대면 했었고 살가운 인사조차 없이 나란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그들이 이웃으로 오던 첫날처럼 그렇게 먼저 인사를 했다.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앞뒤로 뚝뚝 떨어져서 말없이 주차장으로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바램을 얹어주었다.

'그저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일 테니 곧 그치고 해가 날 거라고'

'오래오래 옆에서 서로에게 상처주지 말고 살뜰하고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라고..'


"아이고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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