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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May 12. 2022

가뭄에 내리는 빗방울 같은 홈런

2022 신성현의 마지막 기회, 홈런

타율 1할 5푼, "벼락같은 홈런."


신성현의 홈런은 벼락이라기 보단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땅에 내리는 단 비, 한 방울이었다.


신성현의 경력은 좌절로 가득하다. 일본 데뷔 후 1군 무대를 밟지 못하고 한국으로 귀국. 한국에서도 1군에 안착하지 못한 채 데뷔 후 13년이 흘렀다. 그동안 팀을 찾지 못해 독립리그 고양 원더스에서 달렸다. 지옥 같은 펑고 끝에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선수였다. 고양 원더스 해체 후, 끝내 팀을 찾지 못한 마지막 10명이었다. 비를 기다리는 시간이 긴 야구 인생이다.  


이제와 일본에서 1군 기회를 전혀 받지 못한 일이 실력 때문'만' 그 원인이었을지 의문이 든다. 나는 재일교포가 아니기에, 그 어려움을 가늠할 수는 없다. 한국에선 일본인이라고, 일본에선 한국인이라며 중간계에 있는 듯한 그 애매하고 붕 뜬 느낌-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 <GO>,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서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었다. 외국에서 인종차별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인종차별을 받으며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울까? 한국에서도 쉽지는 않았다. 기회를 얻지 못한 그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1년을 보낸다. 또 다른 다큐멘터리 <파울볼>에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1년이 기록되어있다.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해체와 그 과정은 선수들에게는 꿈을 접기에 충분한 큰 충격이었다. 먼지투성이로 연습하던 신성현은 기다렸다. 다른 이들이 자리를 찾아갔지만 신성현은 자리가 없었다. 김성근 감독과의 연 일까? 그가 지휘봉을 잡은 한화에서 연습생으로 다시 기회를 잡았다. 이름만 신고되어있다고 '신고 선수', 언젠간 키울 거라고 '육성 선수' 단어는 많지만 팀에 간신이 붙어있다는 뜻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다.

 

한화에서도 끝내 보호 선수 명단에 들지는 못했다. 두산의 백업 포수, 최재훈과 트레이드된다. 트레이드된 최재훈은 한화의 알짜배기 포수가 되었다. 올해는 FA 50억 대박이 났다. 최재훈도 두산에서 백업 포수로 기다림이 길었기에- 결과적으로 최재훈에게는 운명적인 트레이드였는지도 모르겠다. 팬으로서는 시원섭섭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신성현이 활약하지 못하자, 당연히 비난의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잘 생긴 거 마저 공격의 대상이 된다. 가뭄에 뙤약볕까지 내리쬐는 격이었다.

 

어쩐지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성현의 모습은 어딘가 현생을 사는 나와 비슷한(잘 생김 제외) 느낌이 든다. 힘들었던 시기도 비슷해서일까? 그니까 이렇게 길게 쓰는 건... 그냥 잘 생겨서 좋아하는 거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인지도. 못해도 욕하지 못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플라이를 안전하게 잡고 홈에서도 아웃을 잡아낼 때 "잘 됐다! 성현아"를 외친다. 그렇게 어젠 홈런까지 때려냈다. 이게 단비의 첫 방울, 시작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그아웃에서 신나 하는 다른 선수들도 기다림이 길었던 그의 궤적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기회라며 엄포를 놓던 감독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진심으로 기뻐한다. 마지막이 아니면 좋겠어서. 누구에게나 이런 시기가 올 수 있기에, 그가 가뭄을 이겨내는 모습이 보고 싶다.  


샤랄라라 라랄라~ 신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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