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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Aug 09. 2022

시작에서 연재

#1 #작가입문

나는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딘가 불편하다. 누군가의 프로필에 ‘출간 작가’라고 쓰여 있으면, "나는 진짜 작가야!”라고 외치는 느낌이 든다. 그때마다 ‘출간’ 하지 않은 작가(인 나)는 작가가 아닌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비집고 올라왔다. 마음 한편 어딘가에 ‘글을 쓸 수 있고, 공개할 용기가 있는 모두는 작가’라는 말을 믿기 때문이리라


나도 운이 좋아, 여하튼 책을 내고 ‘출간’ 작가가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프로필을 수정했다. 그 어떤 수식어 없이 그저 ‘작가’로. 글을 쓰고, 용기가 있다면, 우린 모두 작가다. 꾸밈없이 솟아오르는 힘이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작가다.


만나는 이들이 궁금해했다. “어떻게 썼어요?” 나는 원래 작가도 아니었고, 국어를 특별하게 잘하지도 못했다. 어떻게 썼는지 말로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말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든 잘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무엇하나 명쾌하게 답을 내진 못했다. 어떻게 썼더라.... 어떻게’는 모르겠지만, ‘시작’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느 봄날, 은행동의 독립서점이다.

해뜨기 전에 출근하고, 해 지고 나서 들어온다. 해를 못 보고 하루가 끝나기도 한다. 일을 해도 공허함만 늘어가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힘을 들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었다. 잔꾀로 주식처럼 앞으로 가치가 올라갈 일을 쫓아다녔다. 재밌지도 잘하지도 못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모래처럼 산화되어 허무하게 날아간다. 술병 뚜껑을 꽉 닫아두어도 술이 나도 모르게 솔솔 사라져 버리듯. 마시려고 술장을 열어 보면 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시간도 이렇지 않을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횡단보도 건너다 갑자기 멈춰 선 느낌이다. 나에겐 더 이상 시간이 없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집안 여기저기 벗어던져둔 양말 마냥 흐트러져 있었다.

그날은 외근이었는데, 일정이 일찍 끝났다. 오랜만에 햇빛을 보며 걷는 오후. 좀처럼 가져보지 못한 자유시간이 당혹스럽다. 뭐 없을까? 지도를 보다 독립서점이 근처에 하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뭐라도 하고 싶다. 다음 달 내 통장에 들어오는 돈과 아무 상관없는,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무언가….. 하고 싶은 일.

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 은행동에 있는 서점 문을 열었다. 사진보다 더 작았다. 책만 본 다고 하면 들어가자마자 나가야 했다. 큰 서점에서 이 정도 매대는 슥슥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저 앉아서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든 나가지 않을 방법을 찾는다. 햇살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서점은 나에게 안전한 핑곗거리를 주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매대 ‘청소’라는 주제로 책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청소에 대한 글은 바닥에 흐트러진 양말 같은 내 마음을 싹 쓸어갔다. ‘아!’ 하고 소리친 내 마음은 내일 내야 하는 보고서를 잊은 지 오래다. 커피를 마시며 한가롭게 청소에 대한 글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중 코피루왁님의 《저 청소일 하는데요?》 책이 있었다. (그땐 독립출판물 버전이었는데 특이한 느낌이었다.) 방 청소도 못하는 나는 그 일을 해내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이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나올 때쯤엔 가방에 다 들어가지 못할 만큼 책을 샀다. (결국 책을 택배로 받았다.) 즐거운 오후였다.

그 책들을 다 읽고  다음 주에 미루고 미루던 청소를 끝냈다. 방 청소를 하고 나니, 마음의 청소가 남은 걸 깨달았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분명한 건 지금 하는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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