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작가입문
무얼 해야 할지는 불분명했지만, 무얼 그만두어야 하는지 분명했다. 일이었다. 하지만 쉽게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예전 회사에서 선배가, 회사 독을 빼려면 반년은 넘게 걸릴 거 같다고 했다. 영혼 없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내심 그렇게나 걸릴까 싶었다. 20년 들어간 회사 독을 빼는데 6개월이면 선배는 빠른 편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두려웠다.
나는 지금 하는 이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니 잘 못한다. 지금까지 써온 변명이다. 변명은 어떻게 포장해도 없어 보인다. 그래,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나는 이 변명을 명분으로 인정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괜찮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선택하면 퇴로가 없다. 최선을 다해도 만약 못 한다면 그건 온전한 나의 실패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내 무능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펜을 들기도, 글을 시작하기도 어려웠다. 아이디어는 있으니 쓰기만 하면 되는데, 첫 줄부터 막힌다. 일로 쓰는 글은 영혼 없이 그저 술술 나왔다. 영혼도 없고 진심은 부족하지만, 그저 글을 써낼 수 있다. 실을 뽑아내는 누에고치 마냥- 뽑아내야 했다. 일이었고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뽑아내다 보면 그게 안타가 돼서 누군가의 마음을 사서 돈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판을 깔아줬는데 아무것도 못 한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자습’이다. 자유는 하나도 없는데 왜 자습이라고 부르는지는 반평생의 의문이다. 글을 쓰는 건 자습시간이 따로 없으니 글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정해진 시간, 글을 쓰는 다른 이와 함께 자신이 쓴 글을 함께 읽고 나눈다. 글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도 아니었고, 지름길을 알려주진 않았다. 나는 그게 더 좋았다. 독립서점의 ‘글쓰기 원정대’는 나에게 진짜 같은 가짜 마감을 주었다. 글은 마감이 쓰게 한다고, 결국 마감일이 닥쳐오니 글은 써졌다. 매주에 한 편씩 쓴다.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글마다 마감을 하는 법을 배웠다.
가짜 마감마저 어기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무섭다.’라는 나의 진짜 두려움을 깨달았다. A4 용지로 1~2장 되는 글을 보여주는 일인데 나는 그때마다 손가락 끝 모세혈관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출판할 땐 최소 10배는 넘게 더….) 일을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글을 썼다. 종일 100여 명 넘는 회사 사람들과 얽히고설킨 대화를 하고 나면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책도 아니 글자조차 읽기도 힘들었다. 무언가 배우고 익힐 만큼 체력도 없었다. 그 상태로 쓴 글은 대단하긴커녕 당장 버려야 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글을 모으고 모아 A4 용지 한 장이 되었다.
종이를 책상 위에 놔두고 조용히 각자의 글을 읽었다. 우려와 다르게 글을 받은 모임 원은 신중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읽어주었다. 이때는 몰랐지만, 내 글을 읽어준 이가 글을 쓰는 어려움을 알아주는 동료이자, 가장 따뜻한 독자였다. 냉엄한 진짜 독자는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지 않는다. 따뜻한 가짜 독자는 글이 부족할지언정 끝까지 읽어주었다. 각자가 글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주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니 나만 보았던 장면이 그들 안에서 살아 움직였다. 내가 없어도 이 장면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 A4 용지 한 장이었지만, 글을 인쇄해 전했다. 이게 글을 쓰는 의미였다. 글을 못 써도, 부족해도 ‘그래도’ 계속 쓰고 싶다. 중계도 없고, 기록도 오류투성이에, 사진도 영상도 제대로 남은 게 별로 없는 우리의 야구를. 좋은 카메라로 끝까지 당겨서 생생하게 슬라이딩하는 장면을 남겨두고 싶었다. “이렇게 힘든데 야구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벤치에서 부리는 투정도, 외야에서 딱 하나지만 공을 잡았던 즐거움도, 공이 빠져 실수한 날의 아쉬움도.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못했지만 내 머릿속의 기억을 다큐멘터리처럼 써 보자.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시작할 때 다짐과 다르게 사이드 프로젝트는 메인 프로젝트에 쉽사리 밀렸다. 긴 글은 때때로 길게 쉬었고, 짧은 글은 매일 올라오기도 쉬기도 했다. 그렇게 쉬고 나면 다시 쓰기 쉽지 않았다. 글은 운동과 상당히 비슷했다. 감이 왔을 때 매일 미친 듯이 꾸준히 한다. 그러다 실수로 한 번 다치기라도 하면 한두 달 쉬었다. 그러면 감을 찾느라 또 시간이 한참 들었다. 쉬는 동안에도 야구를 놓지 않고 구경했고, 비록 글은 못 썼지만 관련된 책을 읽었다. 긴 글은 쓰다 보면 한두 편이 완성되었고 그렇게 글쓰기 모임에서 내 글을 읽었다. 한두 주가 마감이었고, 출판이었다. 그렇게 몇 화 만들어지지 않은 어느 날 ‘브런치 대상’ 공고가 떴다.
마음이 급해져서 텅 빈 브런치 계정에 급하게 브런치 북부터 만들었다. 완성되지 않은 초반 몇 화를 묶어서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그대로 응모했다. 맞춤법도, 글도 제대로 다시 읽어보지 않은 채였다. 전체 글 개수가 매우 적고, 완성된 원고조차 매우 짧았다. 당연히 그해 12월엔 다른 누군가의 글이 상을 받았다. 노력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글도 얼마 쓰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질투도 했다. 솔직히 부러웠다. 평생을 글만 쓰겠노라 다짐하지도 않았고, 그만큼 읽지도 쓰지도 않았지만, 그저 부러웠다. 노력도 고생도 하지 않은 저렴한 질투였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내 원고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그 사실이 묵직하게 짓눌렀다.
이젠 그냥 운동처럼 쓰기로 했다. 좌절을 이미 했으니, 하루키가 말했듯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 장문을 쓸 수 없을 땐 단문이라도 썼다. 운동이 안 되는 날엔 스트레칭을 하듯이. 뭐라도 쓰는 몸을 만들고 싶었다. 수영을 잘 하는 방법은 매일 수영을 하는 수밖엔 없다. 글을 쓰려면 매일 무언가를 쓰는 수밖엔 없다. 글이 부끄러워서 자꾸 막혔다. 막힐 때마다 멈추기 일쑤였다. 야구선수도 아닌데 사회인 야구선수가 매일 같이 경기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스트레칭 같은 글이 필요했다. 몸에 알이 배겼다고 가만히 누워있기보단 폼롤러라도 굴려야 했다.
뭐라도 쓸 거리를 만들려고 <야알못 탈출>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글은 멋지지 않았고, 파편적인 정보를 나열했다. 그래도 검색으로 사람들이 브런치에 찾아왔다. 예전엔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신기했다. 힘을 들이지 않은 글도 누군가는 봐준다. 그 사실이 마냥 기뻤다. 힘이 부칠 때는 간단한 글을 쓰고, 그러다 되는 날엔 긴 글을 썼다. 글을 쓰는 건 이렇게 내가 조정할 수 있다. 일이었으면 <야알못 탈출 연재에 관해> 라는 보고서를 쓰고 사업 배경만 한 달은 넘게 쓰다가, 조직구성으로 왈가 왈부하다 간담회를 하자, 팀별 협의를 하자 그러다 예산 이야기로 넘어가겠지. 결국엔 사업이 엎어지거나, 뭐 난리가 났을텐데…. 이건 그냥 쓰면 된다. 긴 글을 쓰다 절망하면 짧은 글로 도망갔다. 글이 절망스러울 때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 조차 별 희망은 없었지만 부족한 글을 채워주었다.
1년이 지났다. 운동 하듯 글이 쌓였다. 짧은 글도, 긴 글도 어느정도 완성했다. 비록 우승 메달은 없지만, 그 해엔 브런치 북이 두 권이 생겼다. 꾸준하게 글을 썼다는 나만의 증명이자 훈장이었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나의 훈장을 다시 브런치 대상에 응모했다.
인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