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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Mar 07. 2023

우리의 본업은 무엇인가?

이것은 축구인가 야구인가

Montzine 3월호

https://linktr.ee/montzine

https://m.montshop.com/board/view.php?category=MOMENT&period=&bdId=magazine&sno=105


주차장에 차들이 한 둘 멈춘다. 야구복을 입은 언니들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친선경기 날, 친한 팀들끼리 편하게 야구를 하는 날이다. 그런데 상대 팀 감독님이 야구 가방을 내리다 말고, 우리 팀 감독님 쪽으로 황급히 다가온다.


"오늘은 연습 경기 전에…. 좀 춥기도 하고 웜업으로 축구, 어떠세요?"

"오! 축구 좋아요. 풀타임은 진 빠질 것 같으니까 시간은 풋살 정도로 할까요?"

"인원은 그냥 다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요?"

"거기 14명이죠? 여기 12명인데- 제가 심판할게요."

"감독님 심판은 무슨…. 한 명 보내드릴게요. 그냥 다 해요."


주차장엔 어느새 야구 배트, 묵직한 볼 가방, 각자 매고 있는 개인 장비들까지. 옮길게. 수북이 쌓여있다. 이야기를 다 끝낸 감독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팀원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짐, 좀 있다가 옮겨도 돼. 축구할 거야."

"네?" (감독님, 저흰 야구팀입니다.)  

"저쪽 감독님이랑 이야기하고 왔어, 가볍게 축구. 러닝도 충분히 될 거 같고 재미로 하는 거니까 몸 풀 정도로만."


취미로 야구를 하러 온 사람들이, 재미로 축구를 하기로 했다. (아니 야구도 재미로 하는 게 아닌가?) 야구를 잘하는 운동 천재들은 놀랍게 축구도 잘한다. 들어보니 엘리트 선수 때는, 축구도 했다고 한다. 공을 통통 치는데(전문용어로 트래핑?) 에이스의 느낌이 물씬 난다.


"재미로 하는 거긴 하지만, 이기긴 해야 해, 축구 좀 해 본 수영이가 원톱. 나머진 상대편 공격에 붙어서 걸리적거리게 해."

나는 나머지도 못 되고, 상대편으로 파견됐다. (훌륭한 전략적 판단이다) 오늘은 우리 팀을 거치적거리게 하는 게 목표다. 쉽지 않다. 거치적거리려면 상대를 쫓아가야 하는데 내 느린 발로는 수영이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도 벅차다.


"입문아, 그냥 코너에 있어라. 중간에 달리다 다치겠어."

"네…. 감독님."

 신발부터 화려한 두 축구 선수 출신 언니들 사이에, 어정거리는 나.


보다 못한 감독님이, 경기하다 말고 나를 물러 세운다. 잘못 어슬렁거리다간 큰일 날 거 같다. 워낙 다들 빨라서. 어정거리기도 쉽진 않다. 야구도 한여름에 외야에서 수비가 길어지면 목에서 쇠 맛이 난다. 그런데 지금 이런 맛이 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다들 지금 취미를 위해 재미로 몸 풀고 있는 거 맞죠? 경기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아니… 아무리 몸풀기라도 동점으로 끝낼 수는 없지.”

감독님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복근에서부터 우러나오고 있다. 연장전까지 치를 기세.

“감독님, 연장전도 해요?”

“으음… 연장까지 하면 몸풀기가 아니긴 하지.”

“그럼 우리 승부차기할까요?”

승부차기란 말에 수영이는 신이 났다. 이 여자는 발재간도 뛰어나서 축구 경기를 할 때도 마저 화려한 플레이를 한다. 좌완 언니랑 투톱, 화려함도 두 배다.

“어떻게든 승부는 내야겠어요?”

“당연하죠. 상대편 점심 내기로 하시죠. 커피도 포함. 더우니까 ‘아아’에 냉면입니다.”


“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냉면을 건 뜨거운 싸움이 시작된다. 전국대회에서는 연장에서 승부가 안 나면 승부 뽑기(?)를 한다. 아마추어에게, 그것도 프로도 없는 여자 선수들에게 줄 구장은 없어서 그런 걸까? 1년 내내 열심히 운동하고 나서 승부는 뽑기로 낸다니, 어쩐지 웃픈 장면이다. 막상 할 땐 엄청 진지하지만. 하여간 야구, 어떻게든 승부를 낸다. 뽑기를 해서라도. 야구인, 동점을 참을 수 없다.


야구인 골키퍼가 가까이서 차는 슛을 막긴 어렵다. 골은 계속해서 들어간다. 이어지는 팽팽한 승부, 자연스럽게 다음 타자(하여튼 치는 사람)를 바라본다. 상대의 마지막 타자는 화려하다. 신들린 발놀림 보여주는 자. 축구와 야구, 모든 면에서 슈퍼스타. 그 이름 이수영. 반면 우리 편은 상당히 만만하다.


"너구나…."


나다. 감독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왜 내 타순은 언제나 이런 절묘한 순간에 온단 말인가. 각 팀의 전략은 달랐다. 처음부터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확실하게 상대와 격차를 내서 마지막 타자가 긴장하지 않을 만한 장면을 만들어 주는 전략. 다른 한쪽은 적절하게 전력을 분산해서 마지막 타자가 모든 기대를 짊어지게 하려고 했다. 시작은 달랐지만, 끝은 같았다. 모두가 골을 넣었다. 이러다 또 승부가 안 날 거 같다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나와 수영이가 남았다. 걱정은 필요 없다는 듯, 수영이는 의기양양하다. 걱정이 필요한 내 얼굴과는 다르게.


시선은 최후의 키커, 슈퍼스타 이수영으로 몰렸다. 모든 사람이 다 넣었어도 긴장 따윈 하진 않는다.


 내 슛은 아니다. 이 슛은 수영이의 화려한 슛.


“으아아아아아!”


호기로운 기합 소리,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기합부터가 다르다. 공을 차는 자세도 그림 같다. 공은 호쾌하게 날아갔다. 월드컵에서 많이 보던 속도, 각도 ‘이건 들어가겠네.’ 싶은 공이었다. 아주 살짝 빗겨나가서 골대 위를 스쳐 지나간다.


“아아아아악!!”

기합이 비명으로 바뀌었다. 머리를 싸매며 좌절하는 수영. 함께 머리를 싸매는 언니들.


 좌절은 그녀의 몫이었다.


수영이의 실패와 동시에 시선이 나에게 돌아온다. 걱정 반, 의심 반으로 나를 바라본다. (믿음은 없다) 축구 선수 출신인 어떤 언니가 발 안쪽으로 살짝 치면, 공이 원하는 방향대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왼쪽도, 오른쪽도 가질 않는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공이 갈까? 이놈의 축구공은 잘못 만들어진 게 아닐까?


프리킥을 30초쯤 앞둔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누군가에게 배울 수도, 재능이 꽃필 리도 없다. 그래도 슛은 넣고 싶다. 온갖 잔머리를 굴려본다. 축구가 당구와 같이 공을 쳐서 보내는 거라면? 공을 직진으로 보내기만 하면 저 큰 골대에 넣을 수 있다. 내 눈앞 정면으로 공을 차려면 상하좌우 모든 면에서 공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노려 차기로 한다. 아니 사람보다 작은 스트라이크 존에도 공을 던지는데, 사람보다 몇 배는 큰 망에 이 큰 공 하나 발로 못 차 넣는단 말인가? (전국 축구인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죄를)

그러니까 요는 이 구체의 가장 중심을 정확하게 발로 콕! 가장 빠른 속도로 차 넣으면 정면으로 빠르게 공이 갈 것이다. (당구처럼) 문제는 찰 수 있냐 없냐?


"헉, 들어갔다!"

 두 팔을 번쩍 든 우리 팀


차고 말았다. 아무도 (본인도) 믿지 않던 슛이 들어갔다. 축구공의 정중앙을 발가락으로 찍어 차는 바람에 상당히 발이 얼얼했지만, 공은 (내 아픔에 보답하듯) 보람차게 당구공처럼 쭉 뻗어 나갔다. 골대 정 중앙으로! 골대에 하얀 망이 출렁거리는 순간, 아니 우리 팀 우승한 줄 알았다. 두 얼굴을 감싼 채 좌절하는 수영을 뒤로하고, 두 팔을 번쩍 들고 소리 지르며 신나 하는 우리 팀. 내 야구 역사상 기억에 남는 승리였다. 비록 그게 축구이긴 했지만. 여하튼 그날의 냉면과 팥빙수는 아주 맛있었다.


축구는 내 삶에 큰 쉼표를, 가슴이 뻥 하고 뚫리고, 마음속에서부터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하루를 준다. 아 잠깐, 축구가 아니라 야구, 야구요. 주장님의 목소리가 귀를 맴돈다.


“언니 본업이 뭐예요. 야구선수잖아. 주말에 야구 못하게 하는 일 할 거예요? 안 할 거잖아. 그럼…. 언니 본업은 야구 선수지.”


그렇지. 난 야구선수지.


축구는 재미고, 야구는 본업이다. 아, 취미가 일인가?


 나의 즐거움, 너의 패배. 너도 가끔 지는 날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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