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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호 Nov 20. 2023

그 시절 내가 기억하는 MVP

혼자 그 사랑을 꺼내보았다


길고 길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 2023 월드 챔피언십은 T1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토록 차가운 날씨 속에 스토브리그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바이퍼' 선수의 재계약 소식을 들었다.


새로운 팀으로의 이적과 재계약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들이 꽃피우고 

본인들이 좋아하는 팀에서 영입하길 바라는 선수들의 이름들이 하나둘씩 오르내리는 

이맘때가 되면 내가 사랑했던 한 팀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추억으로 데려간다.


OGN으로부터 시작한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 방송을 시작으로 2023 월드 챔피언십까지 

리그 오브 레전드는 내 어릴 적 스타리그의 빈자리와 지금의 여가시간을 완벽하게 채워주고 있다.

특정 선수를 좋아해 그 선수가 우승 혹은 실패를 겪을 때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은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팀으로 팀의 승패에 희로애락을 느끼지는 않았던 어릴 적에 나는

'비욘드' 김규석 선수를 좋아하게 되어 챙겨보기 시작한 MVP의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언더독의 모습에 반해버렸던 순간 난 이미 이 팀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던 팀은 항상 패배와 가까이 지냈다.

상대적으로 약팀으로 불리던 나의 팀은 모든 팀들의 승리의 재물이 되기 일쑤였고

그런 예상들이 빗나가지 않았을 때는 이 팀을 사랑한 내가 미워지는 순간 또한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패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패배라는 결과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라인전에서부터 오브젝트 싸움까지 모두 밀려 경기가 쉽지 않은 순간에도 그들은 번뜩이는

한타를 보여주며 경기를 뒤집기 위해 하나가 되던 모습을 보여주었고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물어뜯으며 승리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의자에 일어나 소리치게 만들었다.


승자 인터뷰를 할 때면 승리에 기뻐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혼자 있는 방 안에서

나만 들리는 박수를 쳤고 쉬운 게임이 하나 없었던 나의 팀 선수들의 유니폼은

더러워질 일 없었지만 피와 땀으로 얼룩이 진거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이온이라는 히든카드를 보여주며 협곡을 뛰어다녔던 애드.

당시에 아주 많은 기대를 받았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비욘드.

신드라만큼은 누구보다 잘했고 픽했다 하면 대활약을 펼쳐주었던 이안.

팀 내 맏형이자 서브오더가 가능할 만큼 뇌지컬이 뛰어났던 마하. 

메인오더로 게임의 판을 흔들고 픽의 변수를 창출했던 맥스.


이변의 모습을 보여준 시즌도

리프트 라이벌즈라는 국제대회를 나갔던 순간도

강등을 피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운 시즌도

강등을 당하고 다시 정상에 서기 위해 승격을 이루어낸 시즌도 있었다.

전쟁에서 싸우다 쓰러진 영웅들의 이야기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선수들에게 생긴 임금체불 문제로 나의 마음속 MVP 추억에 얼룩도 생겼다.

하지만 나의 사랑에 얼룩이 진다 한들 그 마음까지 얼룩지지 않았다.


마지막 모습은 아름답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고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팀으로 남아있는 MVP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팀이 아니기에 정보와 영상이 남아있는 게 많이 없는 나의 팀.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을 앞두고 문뜩 그리워진 MVP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검색해 보다 우연히 보게 된 유니폼 나눔에 관련된 글을 보았다.

그 시절 대학생 신분으로 돈이 언제나 부족한 나에게 부담스러운 금액으로 판매되던 유니폼.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가끔 중고나라에 검색해보곤 했던 그 유니폼을 나눔 받을 수 있다니 이건 기회였다.

내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누군가 받는다면 그 사람도 MVP를 사랑했기를 바라던 마음이

공존하던 하루를 보내다 당첨되었다는 글을 보며 그때처럼 집에서 박수를 쳤다.


문뜩 그때의 그리움이 내 방을 가득 채웠을 때 남아있는 선수들의 플레이 영상을 보며 웃었고 

그들의 실력에 감탄했으며 다시 그리워했다가 김규석 선수의 은퇴 영상을 보며 그때의 나처럼 울었다.


모두가 흩어지고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었을 때 누구 하나라도 성공하길 빌었던 나의 팀 선수들.

최고의 리그인 LCK에서 발자취라도 남기고 떠난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나의 팀 선수들.

실패라는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던 선수들이라는 오명을 덮어쓴 체 사라지게 되었지만

나에게는 아직 누구보다 빛나는 별로 남아 있는 나의 팀 선수들.


월드 챔피언십 우승 4회라는 대기록을 세운 T1도, 

언제나 우승문을 두드릴 수 있을 만큼 강한 GEN.G와 KT도,

LCK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팀들이 다 매력적이고 사랑스럽지만 

나에게는 MVP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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