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복 Jan 09. 2023

# 은퇴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당신에게

은퇴준비생 아내의 기록들

[나이듦과 은퇴준비생]이 폴더를 만들어놓고 제일 쓰기 싫었던 것이 이 폴더였다. 그럼에도 왜 만들어놓았을까. 그때는 조금 더 멀리 있어서 이날이 그래도 멀게 느껴졌다는 것과 반대로 이 시간들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이유라는 걸 안다. 


남편과 결혼할 무렵 나이차가 있었기에 이날이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이 점점 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때마다 그것이 마치 나의 은퇴처럼 느껴졌다. 남편의 일이 곧 내 일이니까. 남편이니까 당연히 생각해할 것이 아니라 같이 그 마음의 흐름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주로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회사일이 어떻든 퇴근하고 오면 'OFF'버튼을 누른다고 하지만, 나는 남편의 마음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은퇴가 우리들의 금기어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이 언젠가 마주할 일이라는 것을.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이런 표를 컴퓨터에 만들어놓았다. 

가족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그 옆에 나이를 적어놓은 표. 

그러니깐 몇 년도가 되면 자신의 나이와 아이들의 나이를 보며 어느 때 즈음 자신이 은퇴를 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결혼할 때만 해도 만 55세에 은퇴를 하던 때였으므로 아이들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때 은퇴할 거라는 예측을 했다. 그런데 어느 대통령이 있던 해, 갑자기 은퇴나이가 늘어났다. 만 60세로. 그 기사를 보던 순간 우리들은 더없이 좋아했다. 그리고 첫째 딸은 그 은퇴의 시기를 훨씬 넘어 지금 중학교 1학년을 지나가고 있다. 남편은 이런 이유들로 회사를 덤으로 다닌다는 마음으로 감사해하고 있다. 딸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아빠가 될까 봐 걱정했는데 그 시간을 조금 더 연장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보너스로 얻은 감사라고 했다. 


그 사이 남편은 많은 미래들을 눈으로 그렸다. 

부모님이 아프시고 일찍 철이 들어서 공부밖에 한 것이 없었던 남편은 혼자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를 다니고 생활비를 벌었다고 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은 자신이 있다며 수학 강사라도 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하며 그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다. 나이 든 수학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그다음 고민하다가 찾은 것이 부동산 자격증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을 해냈다. 퇴근 후 공부할 분량을 영상으로 몇 배속을 속사포로 돌려 들으며,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공부라지만 미래를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해냈다. 이것만 생각하면 '그래 은퇴하고 이것으로 일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은 있으나 그래도 마음은 말끔하지 않다. 정말 이것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 자신도 아직은 와닿지 않은 모습이었다.


남편이 만나는 사람들은 은퇴를 한 사람들과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그렇게 된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비행기 파일럿 기장, 우체국의 장. 운동을 하면서 만난 분들인데 은퇴를 한 사람들을 실제 옆에서 보면서 그분들이 보내는 시간을 보고 있다. 은퇴 이후에 뭘 더 하며 사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하고 싶으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남편과 달리 그 정도 나이가 되니 자녀들을 다 키워놓았다는 것.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올해가 회사에서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시기라고 했다. 회사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회사에서 주는 돈을 받고 퇴사를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하는 시기. 아빠와 남편으로 무언가 엄청난 결단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비장해진다. 어떻게 우리들의 미래가 흘러갈 것인가.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쓰는 사람인 나는 이 시간을 받아쓰기하듯이 적어놓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물길로 흘러가는지 그 위에서 다시 쓸 것임을 안다. 아내의 마음으로 적어보자면 나도 그날이 떨리기도 하지만, 지금 마음은 가진 것에 맞게 일상을 맞춰가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도움이 되는 것(캘리그래피나 글쓰기) 이런 것이 현재의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남편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을 보며 느꼈던 찡한 마음을 더 많이 생각하고 싶다. 일하느라 충분히 수고한 사람에게 더 뭔가를 하라고 재촉하는 것이 안쓰럽다. 잘 걸어왔다고 충만한 토닥거림을 안겨주고 싶다. 사진 찍을 적마다 자신의 얼굴에 주름살이 왜 그렇게 많아졌냐며 아침에 출근하며 주름살 크림을 반들반들하게 바르는 남편을 보면 웃음이 나면서 또 시큰해진다. 나이를 먹으며 동지애가 늘어간다는데 이런 마음일까 싶다. 


더 앞서지도 않고, 모르는 척 덮어두고 싶은 않은 현재의 마음. 

남편에게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묶으라는 말보다 같이 신발 끈을 묶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