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준비생 아내 일기
며칠 전 여행 가서 시동이 걸리지 않던 남편의 차가 응급 처방을 잘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다시 차가 멈췄다고 했다. 그것도 퇴근하려고 하는데 일어난 일이다. 남편도 당황스러웠던지 계속해보겠다며 시간을 끌다가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멀미가 보통 사람보다 심한 편인데, 버스를 타고 오면서 멀미가 심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씻지도 않고 바로 기절할 만큼 잠이 들었다.
분명 아침에도 다시 버스를 타고 회사를 갈 텐데, 그러면 다시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을 하니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조마조마. 차 운전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남편의 멀미로 하루를 힘들어할 생각을 하니 내 겁쯤은 집어 두고 싶었다.
결혼한 지 15년. 처음으로 남편의 출근길을 같이 동행했다.
차는 왜 그렇게 많은지, 갈 때는 당신이 운전하겠다고 해서 옆에 앉아있는데 나는 잠이 쏟아졌다. 그러다 매일같이 이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터를 갔을 남편의 하루가 참 길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날이면 통장에 들어오는 급여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잠시 들여다보고 말았는데, 오늘 난 뭔지 모르게 돌아오면서 마음이 시큰했다. 더군다나 10년 전 큰마음먹고산 중고차가 잘 달려주더니 지난주부터 갑자기 아예 파업 모드가 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도 달릴 만큼 달렸어요!" 하고 외치는 소리처럼.
요즘 남편은 은퇴 준비로 마음에 또 다른 안경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테니스도 요즘은 잘 못 가고 다른 것을 준비하느라 퇴근 후 학원에 다녀오고 집에 와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잘 달리던 차가 갑작스럽게 멈추고, 남편의 회사 생활도 언제일지 모르지만 멈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멈춤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막상 발등에 점점 다가오는 일들에는 멈춤이 무엇을 위해 가야 하는지 마음이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남편을 내려주고 자동차 유리에 비친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내가 운전을 잘하고 집까지 잘 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남편이 짠하고, 남편은 나를 걱정하고, 뭔지 모르게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은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