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얼 느끼더라도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커다랗게 다가오는 기분이 든다. 내 삶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사람들의 일상도 내 일처럼 느껴진다.
기쁨, 감탄, 축하, 안타까움, 쓸쓸함, 그리움, 허전함, 슬픔, 손바닥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처럼 가깝게, 자세히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물을 급하게 먹은 듯 다가옴이 벅차다.
친한 언니의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갑자기. 나 역시 갑자기 언니를 위로하러 장례식장에 갔다. 그곳에서 상복을 입은 언니의 모습이 낯설어서 어떤 모습으로 언니를 봐야 할지 주춤했다.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후회와 자책을 하는 언니의 목소리가 마스크를 뚫고 가냘프게 흘러 내 귀에 들어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언니를 생각하니 괜히 물어본 것 같아서 미안했다.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 눈에 물방울이 자꾸 어렸다. 언니를 위로해야 하는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날 머리가 복잡하여 손에 닿는 대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이 화면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퇴사를 당한 한 언론인의 이야기가 유튜브에 내가 고르지도 않았는데 번쩍 떴다. 깜짝 놀랐다. 방송에서 줄곧 보던 능력 있는 여자 언론인, 33년간 다닌 회사에서 경영난으로 작년에 퇴사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 지나갔다. 내가 듣기에도 황당한 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듣고 싶었다. 거기에 반전은 그녀가 퇴사를 한 다음날 바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발레 학원을 등록했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출근하던 자신이 갈 곳이 없어지게 될 그 생각을 하니 몸을 힘들게 해서라도 잡생각을 안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발레를 55세의 나이에 등록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당한 퇴사에 갑자기 시작하게 된 취미 발레, 갑자기 책으로 이어지게 된 일들. 도무지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일이 갑자기로부터 시작되다니 모든 일들이 가깝게 다가와 빽빽하게 가슴에 새겨졌다. 여기에 제일 포인트는 갑자기를 대응하던 그녀의 용기 있고 생소한 선택이었다.
'갑자기'의 일들.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 싫어서 남편과 결혼했을 때부터 은퇴와 퇴사의 주제들을 꺼내곤 했다.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마주할 일이었기에 덮어놓고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바로 뭔가가 떠오르거나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 역시 미지수였지만, 이 자체로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 시간이 국수 가락처럼 미끄러지듯 지나가더니 마침내 눈앞에 다가왔다. 오히려 인사팀에서 연락이 안 와서 스스로 찾아가서 말해봐야겠다고 했는데 그 사이 연락이 온 것이다.
"회사에 남아 있겠습니까? 아니면 3년 치 월급을 줄 테니 퇴사를 선택하겠습니까?"
예상했어도 막상 마주하니 마음이 이상했다는 남편. 나도 마찬가지였다. 카톡으로 남편의 메시지를 읽고서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갑자기가 싫어서 오래 이야기한 일이었는데, 막상 눈앞에서 보니 그래도 갑자기처럼 다가왔다. 다만 갑자기의 강도가 조금 낮아져서 다행스러웠고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당신의 휴식, 새로운 시간들을 이제 내가 지지해 줄게요." (2024년 4월 23일 화요일 오후 2시)
그래.. 우린 그렇게 언젠가 다가올 것을 담담하게 맞이한 날이었다. 당한 것이 아니라 예상했으니 맞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