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내다 보면 단어도 사람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자주 만나다가 그것이 마음에 각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요즘 내게는 "일기"라는 것이 그랬다.
라디오에서 오프닝으로 듣다가 김형석 선생님의 책을 읽어 보고 싶었다. [백세일기].
100년을 살아가신 분은 어떤 생각으로 지내시는지 궁금했다. 책이며, 기고된 글과 방송된 것들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서 찾아봤다.
그중에서도 하루 일과가 마칠 때 즈음 책상에 앉아 펜으로 일기를 쓰는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은 백세일기 책에 이렇게 적어 놓으셨다.
"나는 40 이 되면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중략)
40부터는 지금까지 내 삶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를 지키면서 연장하고 싶었다."(김형석 선생님의 백세 일기 중)
이 문장을 읽어보면 지금 103세가 되셨으니 60년 넘게 일기를 쓰고 계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도 순전히 아날로그. 손글씨로.
일기를 쓰기 전에 재작년에 쓴 일기와 작년에 쓴 일기를 읽어본다고 하셨다. 현재는 어떤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된다.
'사회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시는 분이 일기를 쓴다는 것이 왜 그렇게 새롭게 다가왔을까?' 철학자인 그분께서 하루를 적는다는 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해주시는 듯했다.
"일기"
'나에게 일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의 상징처럼 다가왔던 일기. 개학에 임박해서 몰아 쓰기를 하다가 날씨 쓰기에서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일기. 그런 숙제 같던 일기를 어른이 되어서 자발적 쓰기를 하도록 만든 것은 어떤 힘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썼던 육아일기 공책과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을 적마다 적어 놓았던 문장 공책.
그 썼던 것들을 보면 시간 속에 머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뭉클함이 있는지 보여주는 증표 같다.
여기에 더한 감격은 마침내는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볼 세라 부끄러워 공책에 소심하게 적어 놓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어느 날의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는 것이 더 없는 변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책이 나오지 않았어도 나는 이렇게 달팽이집처럼 드나들며 나의 일상을 적어 놓았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머릿속에 잔뜩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청소할 때가 필요한 것 같다.
말로 하기 전에는 마음에 맴도는 글자들. 그 모든 생각들을 꺼내어 바로 날 것을 적지는 않게 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치 마음이 정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어떤 글들이 쓰일지 나도 모르는 체 마음이 쏟아내는 말들을 받아 적게 된다.
나는 이런 나의 마음들이 어떤 과정이 되어주었는지 책에서 한 문장을 찾았다. 김형석 선생님의 백세일기를 읽으면서.
"일기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
내면의 안부를 물으며 살아가는 것은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문장이었다.
'네 마음 안녕하니?'
때때로 모르는 체하고 싶었던 마음들을 가까이 다가가서 이렇게 내게 묻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