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한동준의 FM POPS 내 마음의 보석송 사연으로 채택된 글
글의 쓰임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같은 글도 어느 자리에 가져다 놓은 지에 따라서 글의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저는 글 쓰는 용기들을 라디오라는 매개체가 큰 역할을 해줬어요. 오래도록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 어차피 여기에 있을 글들을 다른 데도 가져가 볼까 하는 생각이 라디오 사연들을 들으면서 생겼거든요.
처음에는 월간지에 글 응모를 해봤답니다. 그런데 보내는 족족 미채택.
나는 글에 소질이 없는가 보다 좌절이 컸어요. 월간지에 글 하나 올라가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라디오에 보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글이 방송이 되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무엇보다 내가 쓰는 글이 그렇게 엉망은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어요.
그렇게 해서 라디오에 방송된 글 사연만 10번은 넘더라고요. 물론 그 재미(?)를 누려볼 마음으로 계속 보내지는 않았어요. 듣다가 꼭 보내고 싶은 날, 또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날들을 심듯이 보내는 거예요. 무언가 기다릴 것이 있다는 설렘이 이렇게 좋았나 싶었어요.
6월 13일에 방송된 글을 기록해봅니다.
그런 곳이 있어요.
자주 가고 싶은 곳, 찾고 싶은 곳. 생각나는 곳.
나는 그곳을 아지트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결혼을 하고 육아에 힘겨웠을 때 남편은 제가 좋아하는 피자집에 데려가 줬어요.
가기 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났어요. 그곳이 저에게는 첫 번째 아지트였어요. 아이는 그 사이 하나에서 둘이 되었고, 딸들과 같이 이따금 그곳을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찾아갔는데 공사를 하는 거예요. 제가 그토록 좋아서 갔던 그곳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때 얼마나 마음이 이상하던지 임신부터 육아의 시절을 같이 한 친구가 사라진 것만 같았어요.
이후 그 기억이 희미해질 때 즈음 저희 가족에게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가족들과 생일, 크리스마스, 특별한 날에 가는 가격 착하고 분위기도 좋은 스테이크 집을 찾게 되었죠. 그렇게 몇 년 동안 먹는 기쁨을 누리며 그곳을 아지트로 삼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한참 코로나가 있던 몇 년 동안 가고 싶었지만 조심한다고 가지 않았더니 그곳이 사라진 거예요. 그것도 너무 어울리지 않게 권투 하는 체육관으로 바뀌었어요. 순간 '멍'. 포근하던 조명과 따뜻한 소품들은 사라지고 덩그러니 링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같이 갔던 딸들도 아쉽다며 우리들은 아쉬운 발길을 억지로 돌리며 또 하나의 아지트가 사라진 것에 대해 허전해하고 말았어요.
최근에는 갈 적마다 따뜻하던 카페에 단골이 되었는데요, 그곳에서 일하시던 분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갈 적마다 이야기를 나누던 분이어서 카페를 가는 것이 그분을 만나려고 갔던 것일 만큼 좋았는데 얼마나 허전하던지요. 한동안 마음이 헛헛해서 이게 뭔가 싶었어요. 왜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일까 속상하기까지 했어요.
그동안에 아지트로 삼았던 곳들이 같이 떠올라 한동안 그 기억들이 이런 말로 건네는 것만 같았어요.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일이 아닐까 하고요.
좋아하는 공간이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
마음 한편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물들어준 고마움이었더라고요.
이렇게 자주 듣는 라디오는 마찬가지 같아요.
오후만 되면 나오는 한동준 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
"커피 쿠폰"이라는 단어가 경쾌하게 들리는 것.
내 마음의 보석 송 사연에 귀 기울이는 것.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서 추억에 빠지는 것.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의 약속처럼 어떤 시간만 되면 만나는 풍경들도 마음에 힘을 실어주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 것처럼, 곁에 있을 때 충분히 소중하게 누리고, 마음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요즘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