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 가을 이야기
11월의 시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오래전 해묵은 별빛으로 전해진 별빛이 야간 산책길 내 어깨에 낙엽과 함께 내려앉았습니다. 시나브로 별빛에 채색된 내 청춘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별 하나, 낙엽 둘, 별 셋, 낙엽 넷..
평생을 가자던 옛 친구가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날이 11월이었습니다. 대입 수학능력 시험을 치르던 날 주어진 대로 뻔하게 살기 싫어 고사장 가는 길을 벗어난 것도 11월이었습니다. 용기도 만용도 아니었습니다. 감정의 선택인지 아니면 의식의 흐름인지 몰라도, 마음은 나에게 그만 떠나라고 했고 나는 그 마음의 소리를 온전히 따라 속세를 벗어난 가을 속으로 떠났습니다.
수험표를 휴지통에 꾸겨 버리고 지리산계곡 산사를 찾아간 그날 하루를 영화의 장면처럼 기억합니다. 지리산에서 새하얀 입김을 불어 후후~ 별들에게 날리며 올려본 밤하늘은 떠나간 친구의 속 깊은 청춘처럼 시리고 아팠습니다. 나에게 11월은 내 가난한 청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프랑스 남부 도시 Arles의 강변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를 지켜 주었지만, 별을 바라본 내 곁엔 화엄사의 낙락장송 느티나무 한그루가 별이 된 내 친구를 대신하여 담담히 서 있었습니다. 스무 살을 한 달 남기고 니힐리즘(Nihilism) 세계로 빠져 들기엔 우주 속 밤하늘 캔버스와 별들은 경이롭고 황홀했습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전한 '채움은 황홀한 비움에서 비롯된다'는 언어적 감정을 각성한 채 11월의 추운 밤을 명멸하는 별들을 발견했습니다. 오들 오들 떨며 바라본 별과 완전한 고독은 쓸쓸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것임을. 별과 고독은 형제이며 동의어임을.
나는 허무로 시작된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이상을 탐험하는 어른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늦가을 새벽 플라타너스 잎새가 저녁에 붉고 노랗게 물들어 버린 것처럼. 수험생에서 해방된 친구들이 포장마차에서 생애 첫 소주맛을 만끽한 그 밤. 세상 아무도 모르게 산골짝으로 들어가 무념무상 황홀한 별들을 올려 보며 시작한 소년의 그 밤. 자정을 지나면서 긴 밤과 같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할지 실존적 고민을 시작하는 성인식의 밤이 되었습니다.
설거지할 때와 글을 쓸 때 찾아 듣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있습니다. 플레이리스트 가장 윗단을 차지한 옛 노래의 가객 두 분은 11월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가수 겸 작곡가 유재하는 11월의 첫날 사고로 별이 되었고, 가객 김정호는 11월 마지막 날 딱 하루를 앞두고 병으로 하늘의 별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함없이 내 청춘노래를 부른 스타이기에 나의 영원한 스타가 되어 11월의 별자리로 올랐습니다.
11월엔 별을 땅바닥에서 흔히 수두룩하게 만나거나 주울 수 있습니다. 플라타너스, 단풍, 은행나무는 무수한 잎사귀로 별을 바람에 날려 보내 땅바닥 캔버스를 물들입니다. 자연주의와 인상파의 채색으로 황홀한 가을 속 우주는 온통 하늘과 땅 별들로 가득 차 있지요. 그리하여, 몸도 마음도 앙상한 낙엽은 내게 찬란한 비움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복잡한 일과 관계들로 마음 바쁜 나날 속 시리게 물든 낙엽은 별이 되어 땅바닥을 캔버스로 채색했습니다.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의 11월을 보며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가을의 쓸쓸한 기쁨을 하마터면 잊고 그냥 보낼 뻔했다
11월은 하늘과 땅에 만개한 별들의 충만한 선물 보따리
누가 11월을 한갓 빼빼로 따위로 기억하게 하는가?
낙엽 속을 거닐다 11월에 쓸쓸히 잠들고 싶어
11월 가객의 별자리로 올라 함께 노래 부를 수 있기를
'Autumn Leaves' 곡조 뽑으며 가을의 원소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