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날씨나 하늘의 분위기에 따라 꼭 보는 영화가 있다.
날이 궂을 땐 영화 ‘곡성’과 ‘SE7EN’을 본다 최소 스무 번은 봤다. 어두운 배경과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인물들이 뒤엉킨 게 딱 취향이다. 날이 맑고, 여유가 넘치며, 이불이 바삭바삭할 땐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본다. (일본 영화도 봤지만, 한국영화가 더 마음에 든다) 특히 일요일 아침이 ‘리틀 포레스트’ 감상에 알맞다.
임순례 감독이 만든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에 살며, 뜻대로 되지 않는 시험과 연애에 시달린 주인공이 어릴 적 살던 시골로 돌아가 직접 키운 농작물로 요리를 하는 내용이다.
농사도, 요리도 관심 없지만, 리틀 포레스트가 좋은 이유는 적당한 무미함과, 적당한 소소함 때문이다. 시골 어딘가에 한두 집은 있을 법하지만, 막상 가보면 없는, 흔하디흔한 것 같으면서도 흔하지 않은, 잔잔한 것 같으면서도 적당히 재치 있는 내용이 은근 중독성 있다. 곡성과 세븐처럼 자극적인 마라탕 같은 작품도 자꾸 손이 가지만, 쌀밥 같은 리틀 포레스트도 손길을 이끈다.
누워서 이불 덮고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소란한 도시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신선놀음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영화 자체가 주는 장점 덕분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제작 방식 영향도 있다. 배경이 시골이니 촬영 중에 자연스레 곤충과 동물을 만나게 된다. 가끔은 앵글로 들어오기도 한다. 때마다 감독은 살생하지 않았단다.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들의 경로를 옮기기만 했단다. 영화는 연출 즉 인위적인 것이지만, 영화 제목과 최대한 가깝게, 영화 내용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영화에 더 몰입됐다. 부담 없이 편하게 보며 ‘힐링’할 수 있었다.
그 흔한 ‘육식’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매력적이다. 요리하는 장면과 음식 먹는 장면이 주인, 많은 영화에는 고기가 등장한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고기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육식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식용 목적으로 기르는 동물을 어떤 환경에서 사육하는지 찾아보고, 그 부분에 좀 민감한 편이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서 갇힌 돼지를 보여준 후 그 돼지로 요리하는 장면을 비추는 구성도 매! 우! 싫어한다. 영상매체에 동물이 나오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특정 종을 기르는 게 유행이 되고, 종국엔 방치와 유기를 하는 게 못마땅하다. ‘촬영’ 때문에 갖가지 방식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것도 너무 불편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동물을 좋아함에도 매체에서 동물을 보는 게 달갑지 않다.
임순례 감독은 동물보호시민단체 대표이며, 채식주의자다. 그럼에도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분명 있으나, 아직까지 임순례 감독이 잔인한 이면을 가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자연의 중요성을 알고, 동물과 공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만든, ‘자연스러운’ 영화는 나의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고, 무해하며, 언제든 편하게 볼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춘 것이다. 그래서 날 좋은 때 외에도 유난히 세상과 사람에 시달리고, 진 빠진 날 ‘리틀 포레스트’를 꼭 본다. 그러면 마음이 좀 나아진다.
머리와 마음, 시각에 평화를 주고 싶다면 ‘리틀 포레스트’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사진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