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12살 때 초경을 한 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모여 종종 초경 얘기를 했지만, 입을 닫고 있었다. 초경 한 사람이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숨길 일이 아님에도 ‘나는 저번에 초경했어’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어색하게 웃으며 ‘초경하면 어떨지 궁금하다~ 엄청 아프다는데~’ 거짓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가을쯤, 반장 어머니께서 햄버거를 잔뜩 사 오셨다.
“우리 딸이 초경을 해서 다 같이 축하하려고 간식 사 왔어요~”
하셨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교실에는 옴뇸뇸뇸 햄버거 먹는 소리가 가득했다.
“생리는 키가 크고, 나이를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거야. 사람이 사는 동안 당연하게 거치는 과정이고. 그런데 많이 아프고, 힘들고, 불편해. 그러니까 생리하는 친구 놀리지 말고, 괴롭히지 말고, 도와줘. 알았지?”
그전까지는 남자애들이 짓궂게 생리가 어쩌고 저쩌고, 여자가 이러쿵저러쿵 못된 말을 해댔다. 성교육 시간에는 큰 소리로 낄낄거리며 지들이 아는 제일 야한 얘기를 해댔다. 그런데 다 함께 교실에서 햄버거를 먹은 후엔 조금 달라졌다.
나도 변했다. 친구들에게 ‘나 초경했는데 부끄러워서 말 못 했어’ 고백했다. 몇몇 아이들도 ‘실은 나도…’ 얘기를 꺼냈다. 언제 어떻게 했는지, 부모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초경 이후 생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조잘조잘 나눴다. 남자애들은 ‘생리’를 말하지 않았다. 여자애들이 모여 큰소리로 생리를 논해도 장난치면서 끼어들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햄버거 하나 같이 먹었을 뿐인데,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 잠깐 말했을 뿐인데 우리는 그 이후로 조금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에 알맞은 언행을 해야겠다 다짐한 것 같았다.
이 일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출근해서 일을 하던 중에 별안간 번쩍 떠올랐다. 반장 어머니, 햄버거, 선생님, 달라진 반 분위기.
여전히 ‘초경을 했으니 여자 됨을 축하하자’는 견해에는 반감이 있지만, 사람이 살면서 거치는, 무수한 관문 중 하나가 ‘초경’이고, 그러니 ‘한 관문을 통과했음을 기념’하는 것은 찬성이다. 성별을 떠나 그 관문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맞이하고, 이해하고, 지나가는지가 무척 중요하다는 걸 나이 먹을수록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