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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07. 2020

롱보드를 타요

앰버 이야기 

 한 달쯤 되었나… 몇 달을 벼르고 벼르던 롱보드를 주문했다. 이틀 남짓 기다리니 거대한 박스가 현관 앞에 배송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뜯어 보면 은은한 페인트 냄새와 함께 비닐 진공 포장된 노란 보드, 노란 바퀴, 스티커 몇 장이 들어 있다. 아뿔싸, 들뜬 마음에 보호장비를 주문하는 걸 잊었다. 바로 주문하고 배송되기만을 기다렸다. 다음날 현관 앞에 놓인 택배 봉투를 찢을 때의 설레는 마음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날 저녁, 보호장비를 단단히 착용하고 휴대폰과 지갑이 든 작은 크로스백을 멨다. 그리고 밑창이 얇은 슬립온을 신고 보드를 들고 집을 나섰다. 여름인데도 저녁 시간엔 바람이 좀 불었다. 집 근처의 작은 공원으로 갔다. 아주 작은 공원. 운동기구 몇 개와 족구장이 있는 공원에는 지름 200m 정도 되는 공터가 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이 깔려있는 바닥에 보드를 내려놓고,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며칠간 찾아 본 유튜브의 롱보드 기초 영상을 되새기며 오른발을 데크에 올려 놓고 왼발을 살살 밀어 봤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5분 정도 타 보니 앞으로 느리게 가는 건 할 만 했다. 유튜브에서 봤던 대로, 구르는 발의 바닥으로 땅을 쓸며 멈춰 봤다. 데크 위에 있는 다리에 꽤 많은 힘이 들어갔다. 기분 좋은 근육통과 함께 나쁘지 않게 성공했다. 좋아, 이 정도면 괜찮았다.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다지 어렵지도 않고 아직까지는 넘어지는 일도 없었다. 


이젠 다음 단계로 넘어가 발을 몇 번 굴러 앞으로 나아가며 데크 위에서 몸을 옆으로 돌려야 했다. 그렇게 발을 11자로 만들고 무게중심을 앞뒤로 옮겨가며 방향을 바꿔 봐야 했다. 데크에서 몇 번 떨어지고, 넘어질 뻔 한 게 몇 번이었을까.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어느 순간 성공하게 됐다. 그 이후로는 아주 쉬웠다. 울퉁불퉁한 땅이라 아쉬웠지만 첫날 치고 나쁘지 않았다. 마스크 안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보드를 질질 끌며 집에 가던 길은 괜찮은 취미를 찾아 신나는 기분이었다.


최근 며칠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땀 흘릴 일을 피해야 해서(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걸로 하겠다) 보드를 타지 못했다. 베란다에 세워진 보드를 보며 찬찬히 생각해 봤다. 굳이 보드가 아니더라도 노력 대비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취미를 하나 갖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지금의 내게는 그게 보드다. 


초반이라 그렇겠지만, 어쨌든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그러면서 얻게 되는 즉각적인 성취감과 즐거움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게다가 보드는 운동량이 꽤 된다. 40분 타고 나면 몸에 열이 확 오르고 땀이 흐른다. 심신이 보다 건강해지는 느낌이 마음에 들어 그렇게 보드를 며칠 타 보니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조금씩 휘발되고, 감정의 디폴트 값이 꽤 긍정적으로 변했다.


빠르고 쉬운 취미는 예상보다 큰 물결을 일으켰다. 그냥 작은 즐거움, 나 자신을 다독일 수단, 나를 위로할 구멍 하나 만들어 뒀더니 그게 나비효과를 일으켜 일상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열심히 하지 않았고, 다가오는 부담감도 없었다. 그저 즐기기만 했는데 말이다. 


이렇게 얻은 에너지로 해야 할 일을 해 내며 삶을 살아가며 또 한 번 느꼈다. 뭐가 되었든 사랑하는 일 하나쯤은 있는 게 좋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이미 사랑하는 일이 있다면 너무나 기쁘다. 그러나 아직 없다면, 여유 있는 시기에(무리해서 뭔가를 찾으려 하면 외려 역효과가 난다. 가능한 때에 시도하시면 좋겠다.) 사랑하는 일을 찾아 거기에서 일상을 영위할 에너지를 얻으셨으면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롱보드 기초 영상을 보러 갑니다. 안녕!


   nadograe.com/stor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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