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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08. 2020

생리와 이석증

하다 이야기 

평범한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려서 껐고, 샤워를 하려고 일어선 순간 ‘평범’이 깨졌다. 나를 둘러싼 공간이 소용돌이쳤고, 토할 것 같았다.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았다. 입 밖으로 아무것도 쏟아지지 않았다. 그저 계속 모든 것들이 빙빙 돌기만 했다. 출근은 해야 하니 샤워부스로 들어가 겨우겨우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으려고 허리를 숙였다. 다시 구역감이 몰려왔다. 거품 범벅이 된 머리카락을 대충 넘기고 변기 곁에 앉았다. 이번에도 넘어오는 건 없었다. 휘청거리는 몸에 보디클렌저를 문질러 샤워를 빨리 마쳤다. 수건으로 온몸을 대충 닦고, 침대에 누웠다. 세상이 계속 빙글빙글 돌았다. 자주 체해서 체한 줄 알았다. 


좀 진정을 시키고 내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체한 것 같다며 약을 처방해줬다. 출근이 걱정돼 ‘제가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몸이 빨리 나아지는 방법 없을까요?’ 물었다. ‘그럼 수액을 맞도록 합시다.’ 1시간 남짓 수액을 맞고 출근했다. 지하철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머릿속은 선로를 벗어나 빙글빙글 돌았다. 어영부영 출근은 했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퇴근을 했다. 


속은 편해졌으나 어지러움은 나아지지 않았다. 설마, 혹시나 하며 이비인후과에 갔고, ‘이석증’ 진단을 받았다. 주변에 이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편하며, 힘겨운지 알고 있었다. 그 일을 똑같이 겪어야 하다니… 끔찍했다. 더 놀라운 건 명확하게 밝혀진 이석증의 주된 원인은 없으며, 치료약 역시 없다는 사실이었다. 상체를 이리저리 요리조리 움직이며 나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의사 선생님이 야속했다. 흑. 


가만히 앉아있어도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었다. 당연히 입맛도 떨어져서 끼니를 걸렀다. 그리고 어김없이 생리가 시작했다. 생리가 몰고 온 두통, 생리통이 이석증과 뒤엉켰다. 몇 해 전에는 생리와 신종플루를 함께 겼었다. 또 어떤 때에는 생리와 장염, 생리와 피부염, 생리와 허리 고장을 동시에 마주했다. 이번에는 생리와 이석증이었다. 


이석증 자체가 극심한 어지러움을 주는데 생리 때문에 생긴 어지러움까지 더해졌다. 몸이 얇은 종이가 되어 격렬하게 펄럭이는 것 같았다. 서도 앉아도 누워도 불편하고, 모든 감각이 잔뜩 날을 세웠다. 약간의 냄새에도 조금의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토할 구실로 만들었다. 화장실로 달려가길 수차례. 나중엔 그냥 화장실 문 앞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추석 연휴 내내 한 자리에 가만히 누웠다가 앉아있기만을 반복했다. 


글을 쓰는 지금 생리는 끝났지만 이석증은 조금 남아있다. 머리를 어느 방향으로 돌리면 세계가 빙그르르 돌고, 안구도 빙그르르 돈다. 원래 생리 중에도 입맛이 없는데 이석증 때문에 더 없어서 살이 빠졌고, 때문에 기운이 1g도 없다. 


조금 아니, 많이 서글프다.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혼자 털럭털럭 나부끼는 한 겹의 화장지가 된 기분이다. 세상에 제대로 발붙이고 뚜벅뚜벅 걸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nadograe.com/stor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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