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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웅큼 Sep 17. 2021

로맨스에도 ‘휴일’이 필요해!

-‘로맨스 홀리데이’를 기획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알바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5시. 역까지 걸어서 30분. 지하철로 15분. 다시 걸어서 15분. 도착해서 옷까지 갈아입고 숨을 돌릴 때쯤 6시 20분. 마치 공이 날아오는 시간보다 더 빨리 팔을 뻗기 위해 슬라이딩하는 그라운드의 선수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쯤이면 오늘은 세이프. 그러나 경기는 계속되었다.


2루에서 3루로, 3루에서 홈으로. 전광판에 더해지는 1점. 득점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다시 타석에 서고 삼진아웃을 피하기 위해 온 신경을 방망이와 날아오는 공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9회 말 투아웃이다. 그렇게 한 경기가 끝나면 다시 내일이 온다. 어제의 승리나 패배 따위는 잊고, 새로운 게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어휴.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피로지수 80 그 이상이다.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 그러니 그 시간들 속에서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괜히 있었을까. ‘삶의 균형’을 위해 학업과 생계유지라는 조급했던 일상, 300원짜리 믹스커피 너머로 ‘지루한 휴식’이라는 6500원짜리 달콤 쌉싸름한 디저트가 너무나도 간절했던 거지. 그러니 ‘사랑’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샤넬백이나 구찌백’ 정도의 사치품이었달까.


그러나 탐욕에 마음이 홀려 결국 손에 쥔 그것들. 직원들은 다가와 이렇게 물어본다. 어떻게 결제해드릴까요. 애석하게도 신용카드라는 작자는 나의 능력 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할부’라는 신용을 대출해준다. 12개월 무이자 할부에도 매달 ‘30만 원’이라는 사치가 카드내역서에 찍혀 날아오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였다. 360만 원. 과연 ‘너’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치였을까.


놀랍게도(?) 할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로 카드내역서가 날아오는 날, 그날은 사치를 허용한 신용카드의 운명이 지갑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밀려나는 날이었다. 사랑의 휴지기가 시작된 이유였다. 아니, ‘연애의 휴식’을 선언하는 이유가 되겠다. 적어도 할부에 할부를 더하는 미련한 짓 따위는 곱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사랑은 고프다. 사치하던 제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할부가 끝나는 어느 날까지 당분간은 ‘대리만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 보려 한다. 사실 연애라는 게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일 때 더 흥미진진한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책장에 먼지와 함께 수북이 쌓여있는 ‘로맨스 영화’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 것으로, 나의 연애에 ‘심심한 휴일’을 선물하겠다는 뜻이다. 이참에 ‘나의 연애사’를 돌이켜보며 나를 점검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다음 연애를 위해 ‘연애근력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매주 한 편의 새로운 영화와 함께 찾아오고 싶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나의 상황에 약간은 무리가 있는 욕심이지 않을까 싶다. 고로 적어도 격주에 한 번씩은 꼭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감히 남겨 본다. 영화에 대한 세심한 분석보다는 영화를 보는 내내 꽂혀 있었던 하나의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나의 이야기로.


예를 들어, <500일의 썸머>는 ‘톰과 썸머, 누가 더 이기적인가’에 대해서,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질투도 과연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쓸 예정이랄까. 부디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거나와 무관하게 자유롭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터가 되기를 바래 본다. 사실 나의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서 쓰기 시작한 글들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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