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를 잃었더니 '안 된다'가 판을 치네.
취준생의 삶이 고달프다. 아니, 취준생으로서 떳떳하지 못한 나의 삶이 고달프다. 여전히 대학생이라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동안 4학년 2학기도 벌써 절반이 흘러 11월이 문턱을 넘어올 듯 발을 내딛고 있다. 이제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신발끈을 묶는 데에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스타팅 블록을 박차고 나아가 까마득한 결승선을 향해 있는 힘껏 뛰어야 할 때였다. 그러나 자소서라는 허들을 넘을 때마다 아찔하다. 100m 내지는 200m 달리기 종목이 아니었던가. 내가 단거리에 특화된 선수라는 걸 모두가 까맣게 잊은 것만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들을 넘어가는 폼들을 보아하니 당황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거든. 그러니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넘다 보니 요령을 알 것도 같았다. 아니, 알기는 개뿔. 갈수록 넘어야 할 허들이 높아지는 듯했다. 결국 허들의 아찔함에 겁에 질린 나는 추진력과 탄력을 잃었다. 운전면허 필수. 그것도 ‘1종 보통’이었다.
운전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 없는 나에게 쓸데없는 철학 하나가 있었다. 자차가 생길 때까지 운전면허 보류. 당장 운전할 일도 없는 나에게 장롱면허는 사치품 같았다. 그래도 올해가 다 가기 전에는 따야지. 면허도 스펙이라더라. 그런 마음으로 남은 2021년의 달력을 한 장 한 장 세어보던 중에 ‘운전면허 필수’라는 (심지어 빨갛고 굵었던) 음절들은 갓 구운 치즈스틱 하나가 되어 예고 없이 날아왔다. 너무 뜨거운 바람에 오른손은 왼손에게, 왼손은 오른손에게 떠넘기게 되는 그것. 호호 불어 한 입 베어 버리면 끝도 없이 늘어나는 조바심을 어찌할 바를 몰라 손으로 돌돌 말게 되는 그것.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 식어빠진 치즈스틱은 맛이 없는 것을.
그래서 부랴부랴 운전면허학원으로 달려갔다. 지원서를 제출하는 날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제가 해낼 수 있을까요’. 데스크의 직원에게 감미롭게 떨려오는 알싸한 전율을 숨 가쁘게 털어놓았다. 결국 마음먹은 일은 기필코 해내고야 마는 나의 성미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1종은 어려워서 한 번에 붙기 어렵다고 하니 기능 시험 두 번, 도로주행도 두어 번이라 감안하고 전투적으로 일정을 짜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야 마는 성미가 장애물이 되었다. 면허를 미루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밀리고 밀리던 또 다른 일정이 중앙에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었다는 뜻이다. 단 한 잔의 불합격의 고배마저 위기였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두 존재를 믿어보기로 한다. 엄마와 아빠. 그들에게도 염치가 있다면 운전의 DNA를 물려주었으리라. 카트라이더 세포야, 거기 있다면 드디어 네가 나설 차례라는 뜻이란다. 처음은 물론 당황스러웠다. 이 무거운 물체가 힘들이지 않고 굴러간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러나 곧잘 해내는 듯 싶었다. 이대로라면 한 번에 덜컥 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말하는 10명 중에 딱 2명 그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번에 덜컥 해내는 사람들이요! 그러나 시험이라는 시스템이 주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4시간의 연수 동안에는 해본 적 없었던 단 한 번의 실수로 실격. 억울했지만 다음은 자신 있었다. 그때는 반드시 합격하리라.
반전은 없었다. 두 번만에 기능 시험 합격. 아쉽긴 했지만, 추가로 수업을 듣지 않은 채로 해낸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그러니 도로주행은 더 잘하자. 그러나 정해진 일정에 맞출 수 있을까. 10월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기한이 아슬아슬했다. 이번엔 정말로 한 번에 합격해야만 당당하게 '운전면허 소지자'로서 지원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면허가 필수인 시대가 되어버린 거야!
도로주행은 훨씬 더 까다로웠다. 그러나 코스보다, 기어 변속보다, 차선 변경보다 더 까다로운 것은 랜덤으로 배치된 첫 선생님이었다. 일단 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차에 대한 지식을 뽐내고 싶었나. 각종 어려운 말들이 트럭의 바퀴 아래로 떨어져 처참하게 뭉개졌다.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 따위가 오른쪽 귀를 통과하여 왼쪽 귀를 넘어 차문 밖으로 흘러내렸다는 뜻이다. 게다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접촉이 진했다. 핸들 위에 놓인 내 손을 쥐었다 펼쳤다 할 때마다 쳐내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출차 센싱을 할 때에도 인사 없이 사라진 태도가 불쾌했다. 적어도 수고했다, 감사했다 정도의 인사는 오가는 게 예의 아닌가. 그래도 다시 볼 사이가 아니라 잊기로 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시험 치기 직전의 수업에서 다시 만났다. 가장 중요한 2시간이 이미 망한 셈이었다. 예상은 어느 것 하나 빗나가지 않았다. 자신감마저 너덜너덜한 채로 하차했거든. 게다가 극도의 패배감 속에서 자포자기한 상태로 시험에 임하니 오히려 편안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시작은 첫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도로 상황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만큼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고, 기계 소리가 묻혀 좌회전 깜빡이를 넣어야 하는지 우회전 깜빡이를 넣어야 하는지도 헷갈리는 중이었다. 아니, 기계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었던가. 마지막 연습인데 나를 좀 믿고 내버려 둘 수는 없으려나. 그 한 마디를 뱉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쯤, 시험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절정은 두 번째 시간이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기계를 세팅하면서 이런 말들을 뱉기 시작했거든. 1종은 원래 한 번에 합격 못 해. 운전 좀 한다 싶은 애들이나 겨우 붙을까 말까 하지.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이 수업이 끝나면 저 시험 친다니까요. 꼭 붙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치면 안 되는 거야. 긴장해서 다 떨어지거든. 오늘까지 꼭 면허를 따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니까 그건 본인 사정이라고 말하더라. 그럼 어디 혼자 할 수 있는지 봅시다. 그냥 출발한 이후에 조용히 지켜볼 수는 없었던 건가. 게다가 보기는 개뿔. 출발한 지 몇백 미터 달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험 붙겠다길래 한 번 해보라고 했더니 아직 혼자서는 안 되네. 6시간으로는 안 되지. 적어도 10시간 이상은 들어야지. 안 돼. 안 돼.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인가 싶었다. 운전면허 강사로서 할 소리인가. 두어 바퀴 돌고 난 뒤에 바로 시험을 쳐야 하는 수강생에게 이게 무슨 막말인가. 울컥 무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연달아 실수도 반복되었다. 이전 수업에서는 절대 없었던 실수들이었기에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총체적 난국이네. 총체적 난국이야. 신호등의 불이 빨갛게 바뀌자마자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다. 주행을 안정적으로 잘한다는 칭찬도 받았다. 당연히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건 첫날보다도 못한 후퇴였다. 자신감이 짓밟힌 건 오래전이었고, 이제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나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C코스를 도는 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당연히 정면을 주시해야 하는 운전자로서 조수석에 탄 사람의 얼굴 따위가 눈에 들어 올리가 없었다. 급격하게 차량 내부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그러나 이런 기분으로 주행을 마친들 나에게 무슨 이득이 남을까.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수업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눈치를 보던 선생님도 그제서야 입에 발린 칭찬을 하나 툭 던지더라. 이제 기어 변속 혼자서도 잘하네. 미안하지만, 그 말마저 최악이었다.
시험은 당연한 결과로 불합격이었다. 그러나 조금 억울한 점이 있었다. 좀 빨리빨리 가자. 우리가 못 가면 뒤에도 못 가잖아. 버스 같은 건 시간 안에 가야 하는데 우리 때문에 못 가. 그래서 30km/h로 서행해야 하는 구간에서도 액셀을 밟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러는 동안 40km/h가 훌쩍 넘었고, 4단으로 기어 변속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점이 되었다. 선생님은 여기서 절대 4단은 넣지 말고, 30km/h보다는 더 밟으라던데요. 그렇게 변명했지만 통할 리가 있나. 게다가 황색 불에 유턴이나 좌회전을 시키던 선생이었다. 결국 불합격의 이유도 신호위반이었다. 물론 황색 불에 액셀을 밟는 미친 짓은 하지는 않았다. 마치 우회전하듯이 지나가는 구간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곳에서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인데 건넜으니 불합격일 수밖에. 선생님이랑 조금 전에 이 구간 돌 때만 해도 사람도 없는데 왜 가만히 있냐고 혼났다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눈물이 차올랐다. 이유를 몰라 당황스러웠다. 이게 눈물을 흘릴 정도의 일이었던가. 사실 ‘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세상에 해도 안 된다는 주문을 외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뽑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요즘 자꾸 해도 안 되는 일이 쌓인다. 운전면허처럼. 그래서일까. 아무래도 그 선생의 ‘안 된다’는 말이 그림자가 되어 자꾸 밟히는 모양이다. 사실 허들과 부딪혀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워 넘으면 되는 일이었다. 또 부딪히면 다시 세워 넘으면 되는 일이었고. 덕분에 자꾸 안달이 나기는 한다. 이번엔 될 것도 같았고, 한 번만 더 해보면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러니 꼭 한 번에 넘을 필요가 있나.
물론 첫 술에 배가 부르면 멋있는 그림이겠지. 그러나 모든 순간에 실패가 없는 성공을 그릴 수 있을까. 그러니 부디 도전하는 모든 순간이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 늘 처음처럼 뻔뻔하게. 세상 내가 제일 잘난 것처럼. 그렇게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오늘은 부끄러웠다. 창피했다. 안 된다는 말을 덥석 믿어버렸거든. 원래 처음에 합격은 불가능한 거래. 그렇게 나의 좌절에 적당한 이유를 찾았거든. 운전면허와 함께 원했던 회사에 지원할 자격마저 잃어버린 처지에 우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실은 오기로라도 붙고 싶었는데. 안 된다고 말하던 당신이 얄미워서라도 꼭 붙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활활 태우지는 못했지만.
못 먹어도 고라고, 친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해보라고 한다. 기능은 합격했고, 도로주행 중이라고. 너의 의지를 증명하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라고. 글이라도 기깔나게 잘 써내면 또 모를 일 아니냐고.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만 해도. 그러니까 나의 의지마저 면허와 함께 날아간 셈이었다. 대체 '할 수 있다'던 말은 어디로 숨어버린 거야. 꼭 필요할 때 찾으면 없는 나의 애마였다. 결국 하루 종일 나의 시간들 속을 헤맸다. 어느 순간에 그 고삐를 놓쳤더라. 또 어디서 혼자 날뛰고 있으려나. 사실 이 글을 완성하는 동안에도 이놈을 찾지 못했다.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를 놈이라. 그 고집과 변덕을 누가 말려. 그러니 이제는 이 글을 마무리하고 그놈을 좀 더 찾아보아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서는 넣어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거든. 안 되면 또 어때. 거기만 회사겠어. (이러다 아무데도 못 가는 거 아닌가 몰라.)
아, 떠나기 전에 한 마디만 더 남겨야겠다. 당신의 주변에도 '안 된다'고 세뇌시키는 저따위의 인간이 있을까. 그렇다면 부디 멀리 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의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안 된다'고 주문을 외운다면, 그냥 이렇게 말하시길. 제발 입 닥치고 좀 꺼져줄래?
문득 얼마 전 <유미의 세포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재무부에서 마케팅부로 옮기고 싶었던 유미에게 부정적인 이유만 들이대며 겨우 얻은 용기 바가지들을 모두 깨뜨리고야 말았던 '구웅' 때문이었다. 덕분에 구웅이 더 싫어졌다는 글도 블로그에 남겼다. 아래 덧붙인 글이 그때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