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임언출바는 임신의 언덕에서 출산을 바라보다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을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새로운 세상은 아마 이런 일을 말하는 듯합니다.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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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사랑하는 것과 아기와 같이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아마 그 둘을 동일시한다면 틀린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차이로 결혼은 하지만 출산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캐나다 어학연수 기간 동안 내가 지낸 홈스테이가 아이를 갖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집이었다. 그 캐나다 부부는 서로의 직업에서 적당히 만족했고, 남는 에너지를 여행에 쏟아부었다. 지금도 가끔 크리스마스 때 날라오는 크리스마스카드는 캐나다 부부의 여행 경험으로 화려하게 도배되어 있다.
물론 그 캐나다 부부의 지인들이 그들에게 아이를 왜 갖지 않냐고 묻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캐나다 부부들은 특히 나이 많은 분들은 그 부부에게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전도한다. 문제는 그 부부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이지만...
나 역시 결혼에 성공한 위대한 인물이기에 나의 주변은 또 다른 성공을 원했다. 서울대 갔더니 이번에는 고시공부하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서울대 안 갔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어쨌든 평소 주변의 말을 귀담아는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소신을 지키는 삶을 추구하기에 나 역시 아이를 낳아야 되는지 생각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인생 동지는 아이를 원했다. 그녀는 가끔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나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 걱정을 들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아이 없는 삶을 고민할 필요는 없구나.' 그녀가 선택했고, 선택할 마음이 없는 나는 선택을 수용하는 편이다. 뭐 내가 아이를 갖기 전 부부에게 필요한 행위를 싫어하지 않으니, 침묵을 통해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속으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음속 결정은 묵시적으로 끝냈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미래를 꿈꿀 자유는 있지만,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투쟁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포털의 대문 기사만 봐도 수도 없이 나열된다. 우리 부부 역시 그 속사포 랩처럼 나열되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넘어서야 했다.
나의 동지는 미래를 걱정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 경제적 위기를 경험했기에 경제적 문제는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해 길고도 험한 노동시간을 감내하는 편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달랐다. 무소유도 좋다는 주의였고, 가난이 분명 선물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스웩. 이런 얘기를 소개팅에 나온 여자들에게 하면, 보통 이 인간하고는 안 되겠구나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도 반전은 있다. 돈을 좇는 어느 누구보다 돈에 대한 속성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세상 물정 좀 안다고 할까? 그런데 나에게는 돈보다 인생이 중요했다. 돈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만, 경험적으로는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하면 나를 고용한 사장님의 인생만 아름다워졌다. 그래서 뜬구름 좀 잡는 편이었다.
아내는 현실주의자였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많은 보험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미래는 실버타운이 책임 지리라고 믿었기에 연금보험에 가입한 상태였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연금보험은 보험의 끝판왕이다. 보험의 끝판왕에 가입했다는 것은 그 중간 보스인 생명보험과 운전자 보험도 들었다는 이야기다. 차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런 보험회사의 고객님의 삶은 사실 쉽지 않다. 분명 밝은 미래의 보장은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미래를 아름답게 현재에서 꾸미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 가혹했다. 내가 보기에 보험은 아이를 갖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적폐였다.
전우의 시체를 넘듯이 서로에게 가해지는 상처의 시체를 넘었다. 나는 타협했고 고로 적당한 승리를 취했다. 보험의 끝판왕은 사라졌고, 아내는 더 이상 미래를 바라보기보다는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아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라의 모든 부부들은 현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지와 연결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