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편지_ 2021.12.19
온기 부자 마롱님, 잘 지내셨나요. 저는 올겨울 추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보내 주신 편지를 뒤적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뜨끈해지거든요.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아랫목에 누워 있는 기분이랄까요. 두고두고 생각날 편지였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손안에 있는 것 같”다는 문장에 <그림에 부친 시>(김환기)가 단박에 제 손에 들어온 듯했어요. “싸늘한 사기(砂器)로되 다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 체온을 넣었을까.”는 문장은 또 어떻고요. 문장이 마음에 드냐 물으셨는데, 아무렴요. 들다마다요. 부암동 환기미술관에 훌쩍 다녀와야겠다 다짐했던 지난 여름날도 생각났어요. 생각만으로 그치지 말자고 한 번 더 다짐합니다. 핑계 김에 리스본포르투에도 가야겠다고 마음속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렸어요.
마롱님, 주말의 첫눈, 보셨지요. 직접 맞은 눈만 첫눈으로 치는 저는 첫눈이, 그것도 넉넉하게 내려준 어제의 첫눈이 무척 반가웠어요. 순식간에 펑펑. 인심 좋은 첫눈이었지요. 매일 글쓰기클럽에도 잔뜩 써놨지만, 빨간 모자를 눌러 쓰고 눈 내리는 한강변을 뽈뽈 쏘다녔어요. 이상해요. 매년 보는 눈인데도 어쩌면 때마다 마음이 이럴까요.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밤이라 했는데, 저는 없던 고백도 만들어서 할 판이라고 대답했답니다. 눈이란 참. 어쩜 이럴까요.
마침 토요일이기도 했으니까, 이때다 싶어 산책을 나갔어요. 한껏 눈 속에 있을 수 있는 횡재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 짧은 시간에 쏟아진 눈 덕에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자전거 군단과 산책자들로 늘 붐비는 한강 자전거 도로도 텅 비어있었답니다. 눈은 내리면서 주변을 잠재우잖아요. 고요 속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이 꽤 근사했습니다. 아마도 눈이, 어지러운 제 속도 덮어주었나 봅니다. 어쩐지 안심이 됐어요.
돌아오는 길 공원에서 눈을 잔뜩 지고 있는 억새를 만났는데, 무거워 보이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툭, 억새의 어깨를 털어준 건 아마도 그래서였겠지요. 잔뜩 수그리고 있던 억새는 손짓 한 번에 금세 고개를 들었어요. 때로 바람이, 때로 눈빛 하나가 누군가의 짐을 나눌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편지 한 장일 수도 있고요. 마롱님의 편지처럼요.
몇 발자국 곁의 남천은 눈 사이에서 더 선명해졌더라고요. 무거워지거나, 선명해지거나. 다 제 마음이겠거니 생각하니 하하, 웃음이 났어요. 널을 뛰는 생각 끝에 웃었으니 이만하면 첫눈 산책, 성공입니다.
돌아와 만난 문장을 보냅니다.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 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마롱님도 읽고 계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최승자) 속 일부입니다. 매일 떠나고 기어이 돌아오는 우리를 꼭 안아주고 싶은 건, 눈 오는 밤이라서만은 아닐 테지요.
내일의 산책에서는 또 어떤 마음과 만날까요. 집 앞 건물 1층에 오픈 준비 중인 카페는 문을 열었을까요. 오픈일이야 물어보면 될 테지만 매일 아침, 오늘은 열었을까 궁금해하며 집을 나서는 마음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올겨울은 이런 설렘을 부러 만들어보려 해요. 기다리면 도통 오지 않는 녀석이라서요. 부러 만든 설렘을 안고 내일도, 잘 떠났다 무사히 돌아올게요. 퇴근길 붕어빵 같은 온기를 품고서요. 마롱님도 부디, 그러하시기를. 건강해요, 우리.
2021년 12월 19일, 물속깊이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