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날덕 Feb 02. 2024

2. 동요 가사는 어려워

홍당무 <무라카미 라디오>

오래된 노래의 가사들은 오래된 탓에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동요 "빨간 구두"에서 '빨간 구두 신은 여자아이, 이-징(異人)을 따라가 버렸다네'라는 한 소절이 있다.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씨! 빨간 구두라니 빨간 망토가 생각나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습니다만, 모쪼록 무사하기를 빌어야겠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노랫말은 동요에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요 근래 들었던 외국 동요 중에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이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이거야말로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가사는 이렇습니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own.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My fair lady.


음, 일단 다리가 무너지는 게 왜 동요가 되었는지부터가 미스터리합니다. 아무래도 다리가 무너지는 데에 있어선 트라우마가 있는 나라의 사람이다 보니, 런던에 가본 적이 없지만(앞으로 갈 일이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왠지 런던 브릿지는 건너고 싶지 않아집니다. 슬몃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를 찾아봤더니, 이렇게 무너지는 다리에 대한 노래가 한두 개가 아니더군요. 잉글랜드에서 이 노래가 불리기 전에 덴마크에서도, 독일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심지어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라임을 가진 "무너지는 다리" 노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불구경, 싸움 구경이 인간의 본성이라고는 합니다만, 그래도 동요로까지 불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긴 하네요. 모두가 무사했기를(안타깝지만 아마 아니겠죠) 빨간 구두의 무사와 함께 빌어 봅니다.


단순히 템스 강에 다리 놓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표현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만, 이 런던 브릿지는 정말 오래된 다리라 실제로 무너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시티 오브 런던과 사우스왁을 이어 주고 있는 이 다리가 처음 지어진 것은 서기 5세기 경 로마인들에 의해서였습니다. 이때는 부교로 지어졌었고, 이후 9세기에 목조로 건설했다가 12세기에 석조 다리로 다시 지었다고 하네요. 10세기경 바이킹이 런던에 쳐들어오면서 무너졌고, 17세기에는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었다고 하니 런던 브릿지 무너진다는 노랫말이 아주 이상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이후로도 1831년에 이 런던 브릿지를 새로 지었고, 이걸 다시 1972년에 교체해서 지금에 이르렀답니다.


흥미로운 건 1972년에 교체된 올드 런던 브릿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겁니다. 로버트 P. 맥컬록이라는 미국의 부동산 개발 사업가가 1968년에 이 다리를 사들였고, 자신이 개발한 애리조나의 레이크 하바수 시티에 이 다리를 옮겨놓았다고 합니다. 일종의 랜드마크를 만들어 여행객도 끌어들이고 부동산 가격도 올리려는 계산이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업자들이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아래 사진처럼 놓여 있으니 이게 유서 깊은 다리인지 아니면 그냥 미국의 흔한 다리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는군요. 주변에 큰 성당이라도 하나 지어 놓았으면 조금 런던 느낌이 났을까요? 역시 오래 된 다리든 고풍스런 건축 양식이든 중요한 것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831 London Bridge in Lake Havasu, Arizona. - From Wikipedia.org


이 노래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마지막의 my fair lady라는 부분인데, 이 페어 레이디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5가지 정도의 추정이 있다고 합니다. 1. 성모 마리아(10세기경 바이킹이 쳐들어온 날이 성모 마리아의 생일이었다고)라거나, 2. 스코틀랜드의 마틸다(헨리 1세의 비로, 런던의 여러 다리를 짓는 책임자였음), 3. 프로방스의 엘레노아(헨리 3세의 비로 1269년부터 1281년까지 다리 통행세를 징수했음), 4. 이 다리에 사람을 바쳤다는 리 가문의 일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5. 템스 강의 별명인 리버 레아라는 주장도 있네요. 뭐가 맞는지는 당연히 모릅니다만, 저 중에선 리버 레아가 그나마 제일 나은 것 같습니다. 바이킹 침략이라거나 인신공양은 끔찍하기 그지없고, 통행세 징수도 그리 신나는 일은 아닌 데다, 다리 건설 책임자로서 다리가 무너지는 걸 보는 것도 참담하지 않을까요? 강 입장에선 사람들이 지어놓은 다리 따위야 어찌 되든 상관없을 테니까요.


이외에도 우리나라 동요 중 동대문을 열어라 라거나, 미국 동요 중 Mary had a little lamb 등 독특한 노랫말을 가진 동요들을 듣다 보면 도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동대문을 열어라 는 뭐 통금 이야기겠거니 하고 지나갈 수 있겠습니다만, Mary had a little lamb 은 매사추세츠 스털링의 메리 소여(Mary Sawyer)라는 사람의 실화에 바탕을 둔 노래라고 하네요. 심지어 동상까지 있답니다. 이 양은 농장에서 함께 키우던 소 뿔에 받혀 죽었다고 하네요.


Mary had a little lamb;
Its fleece was white as snow;
And everywhere that Mary went,
The lamb was sure to go.


음, 근데 이후 이 양을 had먹었다면 정말 말 그대로 Mary가 가는 곳 어디에나 sure to go가 되는 것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1. 전자식 체중계란 비정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