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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덕 Feb 04. 2024

4. 건강검진은 두려워

금연이 취미 -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금연을 위한 노하우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금연을 시작하면 삼 주일은 일을 안 한다.
2. 남에게 시비를 건다. 지저분한 말을 내뱉는다. 거리낌 없이 싫은 소리를 한다.
3.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다.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씨!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송년회와 신년회? 

아니죠. 건강검진 시즌이기 때문입니다. 올해(2023)도 어김없이 미루다 미루다 연말에 정기 건강검진을 앞두게 되었네요.


건진을 가면 의사 선생님께 늘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술 줄이시고 담배 끊으시고요, 가능한 스트레스도 좀 관리하시면 좋겠네요 - 라는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스트레스는 모두가 알고 있는 만병의 근원, 악의 축이죠(저도 알고 있답니다 의사선생님). 이들 셋이 인격체였다면 오랫동안 악명을 떨쳐온 악질 건강 파괴범으로 수배되어 사람들에게 다구리를 맞아 죽고 말았을지 모릅니다.


내 오랜 친구 말보로이 - photo by me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뭔가 짠하기도 한 게, 술 담배 스트레스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네요. 나름대로는 자기 몫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친구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원효대사께서 해골물을 마시곤 일체유심조라 하셨으니 길거리 짱돌처럼 마음 밖에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스트레스가 생겨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 스트레스라는 게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로써 지금까지의 인간이란 종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 아니냔 말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저와 같이 대대손손 물려받은 영지도 없고 기업도 없고 자산도 쥐뿔도 없는 일개 직장인의 경우라면, 직장 생활 그 자체가 스트레스인데 이걸 때려치우면 생계에 크나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작금의 이러한 푸대접은 스트레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서운한 일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생존의 공신 대우를 받아도 아쉬울 판에 건강의 주적 취급이라뇨. 쯔쯔 요즘 친구들이란 도대체가 글러먹었군, 하고 이데아로서의 스트레스가(그런 게 있다면) 고개를 내젓고 있을지 모릅니다.


술의 입장은 또 어떨까요? 술은 일종의 진정제로 오랫동안 약으로 쓰여왔던 음료였습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술은 오곡의 진액으로 혈과 맥이 잘 통하게 하고 장위를 든든히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더해 근심을 삭여주고 말을 잘하게 하며 기분을 좋게 한다고 되어 있지요. 그래서 예로부터 감기엔 소주에 고춧가루를 톡 타서 꼴깍 넘기라고 하고, 소화가 안 될 때는 에거마이스터, 말라리아엔 진토닉, 추울 땐 보드카, 실연엔 병나발이라고 해 온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나 효능이 많은 술인데, 이게 다 취할 때까지 퍼붓는 놈의 잘못이지 술의 잘못은 아니겠지요. 술은 떡이 안 되는데 사람은 떡이 되는 게 바로 그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떡이 되었으면 고이 들어가 발 닦고 주무시면 될 것을 객기에 여기저기 사고를 치니 더 큰 문제인 거죠. 사실 그것도 애초에 사고 칠 놈들이 술을 마셔서 사고를 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시 음주 범법행위에 대해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이 아니라 과중 처벌이 답이 아닌가 합니다. 


담배도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습니다. 애초에 담배란 제사장들이 의식을 치를 때나 성인식의 통과의례에서 흥분제로 쓰이곤 했던 것인데, 이걸 유럽 친구들이 피워보더니 뿅 간다고 들고 돌아가 열심히 뻑뻑 피우게 된 거더란 말이죠. 게다가 술처럼 사람을 떡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만취한 사람들이 보이는 추태나 행패, 여기저기 치는 사고에 비하면 그 해악의 반경이 흡연자 주위 10미터 가량에서 그칠 뿐입니다. 단지 암을 발생시키고 싱싱했던 폐를 타르로 새카맣게 칠할 뿐인데, 뭐 그 정도는 중국발 미세먼지라거나 깨진 석면, 상태 안 좋은 디젤 엔진, 뉴델리나 베이징의 평상시 대기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에 비해 화를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해 줄 수 있게 해 준다거나,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에서의 10분의 여유, 그리고 도심의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은 흡연구역을 찾으러 헤매는 모험을 선물해 준다는 점에서는 역시 그 공이 적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게다가 무라카미 씨가 알려주신 금연 노하우, 그거 적용하다간 저 회사 짤려요..


따라서 아래와 같은 로직이 이 건강의 주적 3형제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음 → 살아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음 →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술을 마심 → 안정제를 섭취한지라 중추신경계의 평형을 위해 각성/흥분제를 찾음 → 담배를 피우게 됨 → 뇌가 뿅뿅! 신난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          

결국 이 모든 것은 다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건강검진 때 의사선생님께 길게 변명해 봐야 역시 별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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