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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덕 Feb 07. 2024

5. 루돌프는 불쌍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삐딱한 어른의 자세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씨,


오늘은 크리스마스입니다. 날이 날이니만큼 - 그리고 무라카미 씨가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라는 그림책을 내셨던 만큼 - 오늘은 역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써야겠죠. 음절 상 훨씬 경제적인 X-mas라는 단어도 있습니다만, 그 단어는 어감 상 짝짓기 명절을 일컫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용치 않도록 하겠습니다. 뭐 홍대/강남/이태원 거리나 이 즈음 공실이 없는 숙소들을 생각해 보면 맞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말이죠.


역시 크리스마스엔 누가 뭐래도 바로바로바로 산타클로스 아니겠습니까? 이날의 찐 주인공인 예수를 밀어내고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자리를 꿰어찬 산타클로스 옹, 이 분에 대한 의혹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저나 무라카미 씨에게나 유의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물론 이 크리스마스 날의 찐찐 주인공은 예수도 아니니 더욱 상관없겠네요. 사실 예수의 정확한 생일은 따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이 크리스마스 날(12월 25일)은 로마의 태양 탄생 축제일이 기원이거든요.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적기엔 제 여백과 같은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직접 챗GPT에 물어봐 주세요.


일단 산타라고 하면, 빨간 털옷에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코가 빛나는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서 세상의 모든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크리스마스이브 저녁부터 당일 새벽까지 전 세계 모든 굴뚝을 배회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실제로 이 산타 옹이 크리스마스이브 저녁부터 당일 아침까지 정말 도대체 무얼 하시고 계신지 살펴볼까요? 산타클로스의 물리학(The Physics of Santa Claus)이라는 페이지에는 이에 대한 메릴랜드 주립대에서의 토론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계에는 20억 명의 어린이(18세 미만의 사람들)가 있습니다. 산타가 이슬람, 힌두교, 유대교, 불교 아이들을 챙기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대략 3억 7800만 명의 어린이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후보가 됩니다. 평균적으로 1가구당 3.5명의 어린이가 있다고 가정하고, 각 가정에는 최소한 한 명의 착한 아이가 있다고 본다면, 대략 9천2백만 회의 가정 방문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산타는 지구의 자전과 타임존 덕분에 날짜 변경선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돌면서 크리스마스 선물 배달에 31시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초당 823개의 가정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착한 아이들을 가진 각 기독교 가정마다, 산타가 주차하고, 썰매에서 내려, 굴뚝으로 뛰어들어 양말을 채우고, 남은 선물을 나무 아래에 분배하고, 남겨진 간식을 먹고, 다시 굴뚝으로 올라가서 썰매에 올라타 다음 집으로 이동하는 데에 1/1000초 정도만 쓴다는 것입니다.           

            편의상 대략적으로 계산할 때 총 이동 거리는 7550만 마일(대략 1.2억 km)이 됩니다. 이는 산타의 썰매가 쉼 없이 초당 650마일(1000km/s)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음속의 3000배입니다.           


이쯤 되면 산타 옹께서 DC의 히어로들은 물론이고 어벤저스가 몰려와도 한 방에 때려눕힐만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역시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서 매년 산타를 추적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게죠.



그런데 말입니다, 빨간색을 좋아하고 추운 곳에 살며 수염이 덥수룩하다니 이거 누구 이미지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난 1년간 아이들 행적에 대한 리스트를 관리하면서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배급을 준다는 것도 뭔가 심상치 않구요. 무엇보다 그 수많은 선물을 어떻게 구했는지, 그 예산의 출처는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룻밤 만에 전 세계에 배달을 완료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일관되게 소명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싸한 느낌이 듭니다. 혹시 추운 나라 인적이 드문 격오지에 거대한 캠프(노동 수용소?)를 운영하며 선물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코카콜라와의 전속 모델 계약 등 초상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From https://www.threadless.com/designs/merry-christm


개인적으로는 산타 옹께서 동물 학대 내지는 노동착취를 저지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무엇보다 이 썰매 순록들의 노동 강도가 매우 극단적으로 높을 거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과연 합당한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네요. 각지의 좀 뛴다 하는 친구들이 모두 모여 중간중간 바꿔 몬다고 하더라도, 유일하게 헤드라이트 역할을 하는 불쌍한 루돌프는 산타와 함께 전 지구를 초속 1000km로 돌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인 한번 잘못 만나서 이게 무슨 x고생


믿음이 부족한 혹자들은 산타라니 그런 거 없다 그거 너희 부모님이다 라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역시 차라리 다행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위에 나열한 것과 같은 산타 옹에 대한 의혹도 모두 해소되고 말 테니까요. 슈퍼히어로 산타는 없지만, 그래도 잠든 아이가 다음날 행복해하는 얼굴을 기대하며 머리맡에 작은 선물을 마련해 온 우리 곁의 산타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물 학대도 없고, 선물의 자금 출처가 수상하지도 않으니 이보다 나은 일이 없네요. 다만 선물의 경우엔 실제로 울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매우 매우 자본주의적인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좌우된다는 점이 슬플 뿐입니다.


어찌어찌 또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무라카미 씨에게도 산타가 찾아왔길, 대단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선물 하나, 말 한마디, 친절 하나쯤 건네주고 갔길 바라 봅니다. 그렇게 내년에도 열심히 살 기운을 내 봐야죠. 


그리고 세상의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외롭지 않기를, 덜 춥기를, 아프지 않기를, 다가오는 해에는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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