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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덕 Feb 01. 2024

0.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씨!

이 편지는 영국에서... 가 아니라 긴 캥거루 통신 답장 같은 겁니다

무라카미 씨의 글을 읽어온 지도 어언 20년이 되었네요. 시간이 빠르다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꾸준히 읽어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그것도 심지어 여러 번 예전 글들을 반복해서 읽을 거라고는 더욱이 몰랐네요. 그도 그럴 것이, 무라카미 씨의 글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거든요. 학교 도서관에 꽂혀 있던 <상실의 시대>가 바로 제가 읽은 첫 글이었지요. 사실 그 때는 진지하게 그 소설을 읽었다기보단 일종의 야설(...)로 느꼈습니다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열일곱 혈기왕성한 철부지의 심정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반 학우들 모두가 무라카미 씨의 책을 사랑했지요. 어험 어험.


강렬한 첫 만남에 매혹되어서였을까요? 그 이후로 먹이감야설을 쫓는 매처럼 저는 여러 도서관을 배회하며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었답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제 그 고딩 친구는 어느덧 12년차 직장인 아저씨가 되어 버렸죠. 그 와중에 지금까지 한국어로 번역된 무라카미 씨의 책들은 왠만큼 다 책장에 구비해 두게 되었답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거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리고 <스푸트니크의 연인> 등등. 심지어 <1Q84>는 영문본도 가지고 있네요.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아는 일본어라는 게 겨우 とりあえず生ビールお願いします, 내지는 トイレはどこですか 정도인 관계로, 원서는 갖고 있지 않답니다. 그래도 훌륭하신 번역가 선생님들께서 맛깔나게 번역해 주신 덕분에, 매번 신간을 내실 때마다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인사 전하고 싶네요.


사실 저는 무라카미 씨의 장편보다는 단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단편보다는 초단편 - <밤의 거미원숭이> - 를 좋아하구요, 특히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앙앙>이나 <일간 아르바이트 뉴스>에 연재하셨던 스낵같은 글들을 사랑한답니다. 한국에는 <무라카미 라디오>라거나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등의 수필집으로 소개되었죠. 제가 특히 이 글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셋째로 짧고, 둘째로 깊이가 없으며, 첫째로 재밌다는 겁니다. 볕이 좋은 일요일 오후에 약속도 없고 나른한데 집에 있기 싫어 동네 한 바퀴 살살 뛰러 나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딱 감자칩 같은 글입니다. 언제 읽어도 재밌고, 책 어디를 펼쳐도 즐거우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요 근래에 이 글들을 다시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무라카미 씨가 고른 글감들을 3-40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눈길로 바라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다시 돌고 돌아온 LP 붐이라거나, 전철표가 없어진 시대에 대해서라거나 등등 말입니다. 마라톤만 해도 무라카미 씨 때와 다르게 이제는 젊은 친구들의 힙한 문화가 되어 버린걸요. 무라카미 씨가 쓴 글들에 대해 40년 뒤를 살고 있는 제가 독자투고를 보내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여기다가 쓸 생각이에요. 캥거루 통신 같은 거니까, 왈라비 통신이라고 해볼까 합니다. 아마 이 조각글들을 읽게 되실 가능성은 0에 수렴하겠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럼 다음 투고를 기다려 주세요.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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