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꼬마에서 25살 성인이 되기까지
누가 그러더라.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주위에서 아무리 하지 말라고 뜯어말려도,
어떤 핑계가 있어도, 결국에는 하게 되는 일이라고.
진짜 하고 싶은 일.
아마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런 일인가 보다.
글 쓰기라...
누군가 내게 내가 가진 꿈 중 가장 오래된 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글 쓰기'라고, '작가'라고 대답할 수 있다.
초등학교 2학년 9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그때부터 25살이 된 지금까지
16년 한 번도 놓아본 적 없는 꿈이니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 9살의 국어 시간,
그 수업이 '말하기 듣기 쓰기' 였는지 '읽기'였는지 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때 '동화 앞/뒷 이야기 꾸며 쓰기'라는 과제가 있었다.
아마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꽃피우고, 작문 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어찌 됐건, 그 운명의 날 교과서에 제시된 과제는 '흥부와 놀부 뒷이야기 쓰기'였고,
아마 놀부가 흥부의 이야기를 듣고 부를 얻기 위해
제비의 다리를 다시 똑 부러뜨린 후 치료해주는 장면에서 끊겼던 것 같다.
9살이던 당시의 나에게 그 과제는 꽤나 재미있었다.
그때쯤에는 다들 그랬겠지만 어쨌든 수업을 열심히 듣는 꼬마였던 나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국어 시간을 특히 좋아했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뒷이야기를 써 내려갔고, 수줍게 손을 들어 발표까지 시도했다.
아직까지 기억나는 그 발표는 대략 다음과 같다.
흥부와 마찬가지로 제비에게 박씨를 받은 놀부는 신이 나 씨를 심었고,
그 박씨에서도 어느덧 3개의 박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래서 놀부는 신이 나 박을 탔는데 그 안에 보물은 온데간데없고
박 하나당 제비 한 마리, 그렇게 제비 3마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에 어리둥절해진 놀부가 어찌 된 일이냐며 씩씩거리자
그 제비들 중 첫 번째 박에서 나온 제비가 놀부에게 너의 죄를 아냐며 엄히 꾸짖은 뒤,
콧방귀를 뀌는 놀부 앞에서 무려 '제비 로봇 3단 합체'를 해
대빵 큰 제비가 되어 놀부를 혼내고 놀부가 빼앗은 흥부 재산을 흥부에게 돌려준다는 뭐 그런 이야기.
25살이 된 지금 다시 되새겨보니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 싶을 만큼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쨌든 당시 내 발표를 들은 담임 선생님은 말 그대로 '극찬'을 해주셨다.
어쩜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하냐고, 선생님이 교사 생활하는 중에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다고.
그렇게 친구들 앞에선 9살 꼬마를 오래오래 칭찬해주신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그 꼬마의 마음에 평생 박힐 한 마디를 남기셨다.
'민송이 너는 작가를 하면 되겠다. 아마 정말 좋은 작가가 될 거야.'
그 말이 꼬마에게 미친 영향이란...
그날 과제가 정말 재미있어서였을 수도 있고,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한껏 칭찬을 받은 게 으쓱해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사실 '정말 진심 어린' 칭찬의 말을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선생님의 말씀이 그냥 단순한 칭찬이 아닌
정말 감탄해서 나온 말임을 알 수 있었기에,
어느새 꼬마의 마음엔 내가 이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굳은 믿음이 싹을 틔웠다.
그렇게 꼬마에게는 처음으로 매일매일 바뀌지 않는 제대로 된 꿈이 생겼고,
그 이후로 매일매일 커다란 스케치북에 자기만의 동화를 써 내려가며 그 꿈을 다졌다.
게다가 선생님은 그런 꼬마의 꿈을 응원하며 한 번 더 지원 사격을 해주셨으니!
당시 그 반 아이들에게는 한 달에 2~3 편씩 꼬박꼬박 제출해야 하는 독후감 과제가 있었는데
바로 그 독후감을 꼬마가 쓴 동화를 읽고 써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친구가 쓴 동화를 읽는다는 게 신기했던 걸까.
그 공식 발표 이후 꼬마의 스케치북 속 이야기는 불티나게 읽혔고,
우리 반을 넘어 꼬마가 모르는 옆 반 친구들까지 그 이야기를 읽겠다고 줄을 섰다.
게다가 이야기를 읽고 난 친구들이 해주는 재미있다는 호평과
새로운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는 애교 어린 독촉까지..
그렇게 온 친구들의 지원사격을 한 몸에 받으며 그 꼬마는
어린아이가 버린 막대사탕의 막대를 타고 세계 여행을 떠난 개미 이야기,
엄마를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선물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소녀 이야기 등
조금 황당하지만 그보단 조금 더 따뜻한 이야기들을 스케치북 한 가득 열심히 써내려 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9살 꼬마에서 어엿한 25살 성인이 되었지만,
사실 지금 이렇게 돌이켜 봐도,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 베풀어 주신 호의를 잊을 수가 없다.
9살이 쓴 동화가 탄탄해봤자 얼마나 탄탄하다고 그걸 읽고 독후감을 써도 된다고 하셨을까.
사실 아직도 나는 그때 선생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건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게 나의 꿈을 키워나가는 데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러다 전학을 가고, 그렇게 독자가 사라지며
조금씩 게을러져 어느 순간 더 이상 동화를 쓰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꼬꼬마 시절, 글을 쓴다는 것을, 그리고 글을 통해 소통한다는 것의 행복을
가슴 뻐근하게 알아버린 덕에 나는 지금까지 글쟁이의 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때 그 순간은 내게 참 소중하고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조금 이른 생각일지라도
언젠가 책을 내게 되면 처음 시작하는 감사의 글에
꼭 선생님 존함을 넣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에 비해 동심을 조금 잃고 생각은 조금 많아져,
이제 동화가 아닌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나누고픈 그런 꿈 꾸는 대학생이 되었다.
말하자면 일상생활의 소소한 감성 이야기라던가,
직접 겪거나 해낸 특별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그것도 아님 언젠가 깨닫게 될 거라 굳게 믿는 (그리고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복의 비밀 같은 뭐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자, 하지만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뒤로 하고 보다 엄격한 현실로 돌아오자면,
그때 선생님, 그리고 9살 나에게 부끄럽게도 지금의 나는
정말 나누고픈 이야기를 가끔 페이스북에 업로드해 조잘거리는 것 외에는 딱히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 마저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횟수가 줄어들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글 쓰는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일 거란
그 단단한 확신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내 이야기를 좋아해줄까..
그냥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그 연장선에서 내 글도 같이 좋아해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내 삶이 글로 담아낼 만큼 그렇게 특별한 부분이 있긴 할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조금씩 자신이 없어졌고,
글 쓰는 일 역시 점점 먼 일로 느껴졌다.
하지만 글쎄..
그렇게 살다가도 휴학하고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자마자 글 쓰기가 떠오른 것을 보니,
또 그 휴학 시기로부터 1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글이 쓰고 싶은 거 보니,
내 생각만큼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니 많이 안심이 된다:)
그리고 이제 정말 시작할 때가 되긴 했나 보다.
그래서 이제 진짜 제대로, 글을 써보려 한다.
오래오래 하고 싶었던 일인 만큼,
행복하게, 열심히 써보려 한다.
9살 꼬마에서 25살 성인이 된 글쟁이의
행복한 글 쓰는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