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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민송 Sep 30. 2020

어느새 4년 차 스타트업 대표가 되었다

만 3년 4개월 차의 지난 대표 일기를 돌아보며

어느새 창업한 지 법인 등록일로 3년이 되었다. 2020년 9월 29일이란 날짜를 물끄러미 보다 문득 생각나 3개월 전의 일기를 찾아봤다. 그 사이 우린 지금까지 중 가장 큰 사무실로 이사했고, 이젠 그 사무실을 채울 새 동료도 찾는 중이다. 더더더 잘하고 싶고 잘해야지!




나의 지난 3년 4개월을 그냥 있는 그대로 오롯이 인정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시간 대비 이뤄낸 것들이 아쉬워 지난 시간들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법적인 법인 등록일은 2017년 9월 29일이니까 그게 찐이고, 그렇게 해서 이제 대략 2년 9개월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사실 3년 4개월은 뭔가 너무 많이 흘러온 것 같고, 2년 9개월은 그래도 아직 3년은 안 되었으니 좀 더 안심해도 되는 느낌? 뭔가 저걸로 퉁치고 싶달까. 대부분의 동료들이 실제로 저 즈음, 혹은 저 이후 합류했기에 더더욱. 5년, 7년, 9년 혹은 그 이상 걸리는 길이라는 걸 알고 시작했고, 성장과 시간이 linear 한 형태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래도 이쯤이면 좀 더 많이 와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흔히 친구들이 말하는 30살에는 뭔가 진로 고민도 없고, 나름대로 내 필드가 정해져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길 바라는 마음과 유사한 마음. 예전에는 한 달이라도 더 오래 사업한 사람이고 싶어 무조건 2017년 2월을 기준으로 연차를 말했는데 언제 이렇게 변했지ㅋㅋㅋ 어려 보이고 싶지 않은 10대에서, 아직 난 어리다 주장하고 싶은 30대가 된 느낌.


나는 언제부터 대표였을까. 언제부터 대표라는 게 내 삶에서 중요해졌을까. 회사 대표의 기준을 뭘로 세워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실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기념할 날짜는 내게 17년 2월이긴 하다. 회사 이름도 없었고, 제품 아이디어 하나와 얼마 전 설득한 팀원 한 명만 있었을 그때. 2월 초에 첫 회의를 하고, 스타트업 대표의 삶을 시작할 거라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 끊어둔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2주간 다녀왔었지. 그러고 본격적으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려고 온갖 책을 섭렵하며 대표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MVP 공부를 하고, 기창업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엉성하지만 필요한 걸 갖춘 MVP를 만들고, 테스트를 진행하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정부지원금을 따내고, 트레이너를 설득하고, 개발자를 구하고, 개발한 프로덕트를 출시하고, 최초의 수입을 내고, 투자사를 만나는 그 모든 과정들은 나의 2017년 2월에서 9월 사이에 녹아있다. 그래, 지금의 내가 보기에 얼마나 미숙해 보이는 시간이었든, 지금의 내가 보기에 얼마나 어설프던 시절이었든 사실 그건 창업 기간이었다. 미숙했지만 열심히 달렸던 기간. 내가 원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나와 팀이 결과물을 완성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게 내가, 우리가 걸어온 길이니까. 과거를 부정하거나 축약하려 하지 말자. 사실 지금 시각에서 과거를 훑어볼 때 어떤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오히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그런 시간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된 거니까.


확실히 나는 창업 전에 비해 훨씬 냉정해졌고, 막연한 낙관이 줄었으며, 욕을 먹어도 된다,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이 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걸 알고, 내가 맡지 못할 업무의 R&R을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을 때 팀이 얼마나 버벅거리게 되는지 알고, 고객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동굴 속에서 프로덕트를 만들었을 때 그게 얼마나 시장과 동떨어질 수 있는지 알고, 우리 제품의 현재 형태가 우리 제품의 최종 형태가 아님을, 앞으로 상상치 못한 변화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가치를 실제로 제공하기 위해,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걸 제외한 나머지 것들이 얼마나 많이 변화할 수 있는지도 이젠 안다. 여전히 처음 창업했을 때의 그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이루는 방법은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바뀔 수 있음을 안다. 나는 여전히 겁이 많지만 행동할 줄 알고, 나는 여전히 욕먹는 걸 싫어하지만 욕먹는 게 더 나은 상황이 있는 걸 알고,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선의가 반드시 의도한 결과를 낳지 않음을 안다. 이런 깨달음들이 쌓여서 현재의 내가 있고, 현재의 팀이 있고, 현재의 프로덕트가 있고, 현재의 의사결정이 있으니까.


그래, 3년 4개월 사업을 했다. 욕심내는 것만큼 오지 못했다 해서, 내가 성장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전보다 많은 게 명확해졌고,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기특하기도, 더 잘했으면 싶기도, 더 잘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하는, 그런 나로 살고 있다.


    

이사 전 사무실에서 찍은 요즘의 사진 :) 큰 꿈을 꾸고, 치열하게 분투하고, 동료들을 애정하고, 함께 매일 깔깔거리며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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