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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Dec 13. 2023

나는 뇌가 쉬는 것까지 통제하는가

진짜?

급히 걷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고 있었고 주차해 놓은 차를 옮기러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었다. 그러다 '어머!' 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어머!


나도 소리쳤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상대방도 반가워하며 내 손을 부여잡았다.


혜란이, 맞죠?


엥? 혜란이? 이게 무슨 말일까 하며 내 표정이 어색해졌나 보다. 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얼른 바로잡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혜란이 엄마 아니에요?-하는데 얼른 말했다.


최 과장. 저 최 과장이에요. 하하핫


전에 두 해 정도 같이 일했던 영어 교사였다. 교사를 관리하던 나와는 긴밀하게 지냈었는데 나를 잊었단 말인가. 선생님은 민망해하면서도 반가워하며 인사했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다음에 다시 보자는 일반적인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 거다. 내내, 이름을 떠올려보아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름이 기억이 나야 전화를 하겠다는, 그러니 담에는 커피를 같이 마시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 텐데 연락처를 뒤져보아도 연결되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생각이 안 날 수도 있는 일이지... 하며 하던 일을 하고 잊었다 했었는데 집에 가는 차 안에서 갑자기 아! 김*경!!! 하고 내 입이 소리치고 있었다. 뇌는 내가 다른 일을 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뒤지고 뒤져 답을 찾아낸 것이다.


전에 직장에서는 1월과 2월에 일 년 동안의 교사들 스케줄을 짜야했다. 기관에서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교사가 겹치는 경우가 흔했다. 지역도 되도록 교사들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짜주려 노력하다 보니 거의 밤을 새우곤 했다. 회사일을 하며 밤을 새운 것이 아니라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자을 자다가 새벽녘에 검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앗! 하며 벌떡 일어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얼추 맞겠구나-외치며 이불을 박차고 시간표를 꺼내 들고는 했다. 날이 갈수록 꺼칠해지는 얼굴과 메말라가는 정신을 다독이고자 되도록 일찍 자고, 내일 생각하자 하면서도 뇌는, 전혀 쉬지를 못한 거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낮이나, 어제나, 엊그제- 영 생각이 안나는 것을 고민하다가 에잇, 꼭 생각나지 않아도 괜찮아. 별것도 아닌 것이 생각이 안 나고 그랴-하다가 문득 아! 하고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운전을 하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의 뇌 속에 있는 폴더를 하나씩, 하나씩 열어보며 내가 원하는 그 자료를 계속해서 검색하고 있는 거다.


참, 별일이다.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다.

아! 그리고 착하게 살아야겠다. 이래저래 다시 만나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면 안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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