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사는 것, 성공하는 것 중요해요. 근데 그다음은요?
안녕하세요. 선한 영어 나누는 유니스예요.
제 주변에는 소위 잘 나간다고 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어요. 한 명은 한국서 태어났고,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까지 졸업한 후(어릴 때 외국 체류 경험이 있긴 하지만) 미국 로스쿨에 진학한 토종 한국인 국제변호사죠. 로펌 경험을 거쳐 이번에 미국인들도 들어가기 힘든 A사의 변호사로 합격했다는 소식이었어요. 6번의 면접을 거쳐 또 필기시험까지 진행해서 7년 차 변호사였지만 정말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힘든 시간이었다고 해요. 또 한 명 지인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역시 미국에서 회계학과 교수를 하고 있는 제 친구의 이야기예요. 동양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교수 모임에서 구어체 말투들에 끊임없이 스트레스받으며, 또 백인 학부 학생에게 영어수업을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영어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곤 해요. 이제 미국에서 거주한 지 15년이 지났고, 시민권까지 있는 친구인데도 말이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냐고요? 둘 다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의 상징인 것도 같지만 사실 그 삶을 들여다보면 안 쓰러울만큼 치열한 것이 사실이에요. 이 둘 뿐 아니고 거의 커리어를 가진 제 주위의 지인들은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 살아야 하고 끊임없이 할 일을 메모하고 완수하고 또 미처 끝내지 못해 아쉬워하고 그러면서 내일 눈을 뜨면 또 다른 노력으로 살아내요.
'아~ 너무 불행한 삶이야!'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만나 본 이 분들은 너무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성취를 통해 행복을 느끼며 사시거든요. 이 분들에게 잠을 덜 자는 것, 남들보다 여가시간이 적은 것, TV를 보고 담소를 나눌 시간이 적은 것은 그리 불행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어떤 상황의 방해로 인해 본인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나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더 불행할지도 몰라요. '어휴 너무 힘들어서 불행할 거야'라고 하는 건 높이 달린 포도를 시어빠졌을 것이라고 따먹지 않으려는 여우의 심리처럼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러운 감정일지도 몰라요.
여기 비슷한 맥락으로 "행복이 삶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심리학자가 있어요. <12가지 인생법칙>이란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한 조던 피터슨이죠. 최근 번역되어 들어온 이 책은 일찌감치 베스트셀러에 자리 잡았더라고요.
우리가 삶의 목표를 행복에 잡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일을 하고 공부를 한다면 목표에 도달해 이내 배신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쉽게 말해 아이들에게 대학만 가봐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할 것으로 현재를 저당 잡히는 것을 정당화하잖아요. 하지만 S대를 들어가고, 의대를 들어가고 하면 고통이 사라지나요? 이제 공부 끝~ 하는 세상이 오나요?
이 분이 말한 것처럼 '야~ 난 해냈어' 하는 순간 내가 모르는 것들 또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것들이 나오거든요. 완벽에 가까웠나 생각하는 순간 다리미로 쫙쫙 펴야 할 결함들이 줄을 선다는 거죠. 국내에 내로라하는 지식인 유시민 작가님이나 이국종 교수님 같은 분들이 '야~ 나는 그간 공부하고 경험을 쌓은 것으로 충분해 이제는 편안하게 먹고 놀아도 잘 돌아갈 거야' 이런 마인드로 일을 하실까요?
이 분이 내린 배움의 정의는 정말 가히 무릎을 탁~ 칠만 합니다.
배우는 것은 고통스럽게 무언가를 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일부분은 죽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고통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돼요. 나의 일부가 죽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하하호호 즐겁기만 하겠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 오만, 게으름 같은 천성을 다 부인하고 고통의 언덕을 성실히 올라가면 마침내 과거의 내가 사라지고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는 공부의 참 진리인 거죠.
저는 여기에 하나 더 강조하고 싶어요. "그 언덕을 올라가도 고생은 끝이 아니다"라고요.
부정적이라고요? 팩트 폭격이라고요?
아이들에게 열심히 사는 것, 성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가르치지 않으려 합니다. 다 중요하고 멋져요. 우리 아이들에게 꼭 주었으면 하는 것들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그다음을 제대로 말해주어야 할 의무도 있기 때문이에요. 정해놓은 그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나만이 알고 있고 내 몸이 기억하는 그 작은 거듭남의 경험이 이 아이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 믿으니까요. 오히려 많은 아이들이 어른들이 정해놓은 목표를 힘겨이 달성하고 허무해하거나 실패해서 좌절하거나 않았으면, 그 보다는 그렇게 자신을 부인하고 알을 깨고 나와 성장한 그 희열 자체에 삶의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성공 이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도전의 삶에서 진짜 승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했나요. 인생은 결국 이러한 도전을 많이 한 사람은 눈덩이처럼 자신의 가치가 불어나고 그저 땅속에 재능을 묻어두거나 한, 두 번의 성공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에게는 또 그만큼의 값어치만이 있을 뿐이니까요.
저는 지금 고입을 준비하고 있는 자녀가 있어요. 그 어떤 말보다 오늘 이 말을 해주고 싶답니다. 너가 알고 있는 너 자신에게 너를 가두지 말고 그것을 부인하고 깨부수고 과감히 나가라고요. 그리고 그것을 하는 과정을 통해 결과를 넘어서 이미 제 아이는 승자가 될 것이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voViTxi8vNM
이 영상의 9:50초대를 보면서 저는 이 분의 사상과 제 삶의 철학이 참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전체 다 보시기 힘든 분들은 뒷부분이라도 꼭 한 번 봐주세요. 약간 울컥하는 교수의 모습에서 삶의 진리를 경험한 자가 이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자에게 전하는 책임이자 사랑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