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비수 May 01. 2022

그럼에도 밉지 않은, 너

일상과 여행사이, 어딘가

acrylic on paper_ Jo Grundy  작품 반모작


지난 수요일 밤,

내게는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밤 10시.

예방 접종을 하고 피곤하게 자고 있는 강아지 하니에게

뽀뽀를 하려고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코를 물리는 사고가 생겼다.


하니는 종종 주인을 무는 나쁜 버릇이 있다.

예전엔 내 손, 팔, 다리 에 입질을 해서 피가 나고 멍이 들기도 했었다.

3kg의 작은 강아지이고 이빨도 깨알 하나만하게 쬐끄메서 걱정없을 것 같지만.

송곳니 두개는 정말 날카로운지라

조금만 자신이 귀찮다는 느낌이 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물어버린다.


그 날은 예방접종을 마치고 온 날이라

더 예민하고 피곤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니 입으로 뽀뽀 쪽! 입술을 들이밀자 

얼굴을 찡그리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너무 웃겨서 두번.. 세번... 다가가자

네번 째에서는 그만 콱- 하고 내 코를 물고 놔주질 않았다.


너무 아파서 두 손으로 코를 붙잡고 웅크리자

눈에서 눈물이 났다.

코에서 손을 떼자,

피가 철철 흐르는 내 얼굴을 본 엄마가 깜짝 놀랐다.

"수정아, 옷입어. 응급실 가야겠다."


응급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엄마는 "그러게 왜 자는 애를 건드려?!!" 하고

소리쳤다.

너무 놀라면 사람이 힘이 쫙 빠지고. 아무 말도 하기가 싫어지나보다.

너무 놀라면 심장도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

그냥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응급실은 코로나 검사를 해야 입장이 가능했다.

검사소의 의사분이 

"지금 대기하면 12시간 기다리셔야 하는데, 기다리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가시겠어요?"

"...(머리 속이 하얘졌다)"

"다른 곳으로 갈께요."


예전에 봐두었던 빨간 배경에 흰 글자로 써있던 "산타마리 24시간 병원" 간판이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봤다.

"지금 진료 받을 수 있나요?"

"네. 무슨 일이 신데요?"

"강아지한테 코를 물려서요."

"네. 주사 맞을 수도 있어서 11시까지 오셔야 하는데 오실 수 있나요?"

시계를 보니 10시 35분.

"네 갈 수 있어요."


야밤의 드라이브.

그리고 병원 도착.

붙여 놓았던 밴드를 떼어내고 의사선생님께 상처 부위를 보여드렸다.

"손으로 건들면 살이 벌어져요."

의사가 손으로 상처를 눌러본다. 몇 번 눌러본 뒤

"이 정도로 꿰매지는 않습니다. 다만 흉이 남을 거에요. 자외선 조심하고 물 들어가지 않게 하세요.

나중에 피부과 가서 레이져로 치료 받으셔야 할 거에요."


"..."

이미 내 몸에는 하니의 입질에 의한 조그만 상처가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얼굴 중앙에 흉이 남는 다는 사실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상처보다 가슴이 휑- 한 것이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며칠이 흐른 지금은

가슴이 조금 진정된 상태이다.

내가 얼굴로 먹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얼굴에서 살이 파이고 피가 흐르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놀람을 넘어

뭔가 소중한 거 하나를 잃은 것 같은 휑-한 감정을 주었다.


병원에서 준 진통제도 거의 다 먹어가고 있는데

가끔 소독하려고 밴드를 떼어보면

상처부위는 코 끝에 적나라하다.


피부과를 한번 가봐야겠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믿어보자. 

시간의 힘을.




작가의 이전글 바라던 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