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비수 May 08. 2022

시간의 자전거

허구과 현실 사이의 구름

illustration by tobysoo


 레모네이드라 쓰여있는 시원스런 깃발이 연꽃밭과 유채꽃밭 사이로 난 길에 서 있었다.

흙먼지 이는 길.

 가호는 병을 입에 대고 꿀꺽꿀꺽 소리를 내면서 레모네이드를 마신다.

 군데군데 움푹 들어간, 칙칙한 녹색의 두꺼운 유리병.


 "아, 시원하다."

목이 짜릿짜릿하다. 눈앞이 온통 흔들리는 연꽃이다.

싱싱하고 푸르른 풀 속에 종이 쓰레기를 뿌려놓은 것 처럼 꽃이 피어 있다.


 붉은 자주색, 꾸밈없는 꽃이다. 연꽃밭 너머에는 유채꽃이 하염없이 피어 있다.

길쭉한 노란색이 바람에 스민다.

 가호는 한동안 그 한적한 풍경을 바라보다가 여기가 어디야, 하고 물었다.




 "나, 옛날에 연꽃밭이 나오는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어."

 불현듯 생각이 나서, 그대로 말한다.

나카노 앞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무장해제를 하게 된다.


 "로봇이 나오는 이야기야. 관람차를 탔더니, 바로 밑에 연꽃밭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좀 슬픈 이야기야."

 "그랬어?"

 그 말이 뭐가 슬플까, 하고 나카노는 생각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제목이 뭐였더라."

가호는 눈을 찌푸리고 심각하게 기억을 더듬는다.

삽화는 유난히 색이 엷은 수채화였다. 이와사키 치히로였나.


                             "그림이 굉장히 슬펐어."


   나카노는 세 살짜리 가호와 서너 살짜리 자신이 이렇게 서 있는 기분이었다.



 가호와 있을 때면 때로 그런 기분이 든다.

시간의 고리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다.

 자전거를 탄 아줌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_에쿠니 가오리, <홀리가든>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밉지 않은,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