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새해를 맞으며
작년 1월 1일에 어떻게 느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독 이번엔 1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간 느낌이다.
바빠서 그랬던 걸까? 잘 돌이켜보면 바쁜 척을 했지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바빴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너무 별일 없이 똑같아서 그런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시무룩해진다. 나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그렇기에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열심히 살았다는 게 느낌뿐이었는지 실제로 열심히 살아왔는지 살펴봐야겠다. 바다바다한 곳에서 생각에 빠져보고 싶어 제주도로 훌쩍 떠나왔고 길가다 우연히 만난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불과 9개월 ~ 1년 전인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봐 ㅠ
우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브런치 글을 열심히 써봤던 기억이다. 2개월? 3개월? 정도 문미(잘노는 대표), 학독만 형님들과 목요일마다 모여 식사를 하며 서로 회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숙제는 각자 브런치 글을 하나씩 써오는 것. 글을 못 써오면 그날 식사값을 내는 벌칙이 있었다. (덕분에 난 거의 매번 공짜로 식사를 했다!) 벌칙 때문은 아니었고 원래도 글을 꾸준히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최대한 매주 글을 써보았다. 아직 글쓰기 경험이 부족해 나의 경험과 내가 해놓은 것(자랑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글을 다른 누군가가 보면 부끄러웠지만 글쓰기라는 게 원래 그렇게 늘어가는 거겠지 싶어 꾸준히 쓰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역시나 동력이 부족했는지 몇 개의 글 밖에 쓰지 못했다. 저장해놓은 글은 꽤 있지만 마무리 지을 끈기가 부족해 아직도 저장 상태에 있다. 올해는 정말로...! 이번 회고를 시작으로 꾸준히 써보도록 해볼까... 싶지만 아마도 이 글이 올해의 마지막 글이 될 수도 있으니 함부로 약속하지는 못하겠다.
2월 혹은 3월 즈음 문미에게 올해 내로 후속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다면 우리 회사는 가능성이 없으니 퇴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문미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실제로 후속 투자 없이는 가망이 없었다. 그저 그런 회사에 몸 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더욱이 그 회사가 내가 함께 만든 회사라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회사가 별로라서 그만둘 거야! 가 아니라 18년이 가기 전에 회사를 멋지게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연초에 미리 퇴사 선언을 하고 문미와 함께 열심히 달려왔다. 그 결과 정말 공교롭게도 18년이 마무리될 즈음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투자 유치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뒤에 더 할 생각이다) 잘노는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그저 그런 회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18년도에 증명해 보였다. 이젠 퇴사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투자사와 함께 잘노는을 지금 꿈꾸는 모습 그대로 실현해내기 위한 방법과 전략을 생각하면 된다.
절친한 친구와 둘이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나트랑에서 3박, 호치민에서 2박. 여러모로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첫 동남아 여행이었고 스쿠버다이빙도 처음이었고 거친 파도랑 싸우다 무릎 부상을 당하기도 했었다...! 음식도 다 맛있었고 물가도 저렴해서 좋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점차 무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행을 가면 일에 대해 다 잊고 마냥 편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난 그런 성격은 아닌가 보다. 몽골 때도 느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내게 놓인 환경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일상에 놓여있자니 뭔가 불만족스러웠다. 회사에 대한 책임감이었을까 싶었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보다는 생산적인 활동에 대한 욕구가 내재되어 있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그 결과가 나올 때의 만족감이 굉장히 크고 그게 행복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앞으로 여행을 갈 때 노트북을 꼭 들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여행이었다.
나 이때 뭐했지...? 한 게 없나 봐...!
#1인자 #근면성실 #철저한자기관리 #겸손함 #재밌음 #말잘함 #리더십
어려서부터 롤모델이었던 재석이 형을 드디어 만났다. 슈가맨2 방청을 갔고 작가인 사촌누나의 도움을 받아 재석이 형과 잠깐이나마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 맘 같아선 몇 시간이라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판타지고 어려서부터 팬이었다는 뻔한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재석이 형님께 사인을 받기 위해 고급 A4 용지까지 준비해 갔고 싸인을 보관하기 위해 액자까지 사서 현재 옥탑 방문에 걸어놓은 중이다. 유느님의 싸인을 보며 종종 마음을 다잡곤 한다(?)
6월 말에 2박 3일간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해커톤에 참여하여 대상을 받았다. 제주도에서 코딩이라니...! 낭만적인 모습을 꿈꾸고 도착한 제주도에서 우린 해커톤이 끝나기 전까지 바다 한번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에 갇혀 하염없이 프로그램만 진행했다 ㅠㅠ. 그래도 결과는 좋았다. 결과물은 안드로이드(네이티브) 데모 앱, iOS(리액트 네이티브) 데모 앱, 관리웹 이렇게 3가지였고 멋진 팀원들과 함께 하니 운 좋게도 대상을 탈 수 있었다. 마무리 후에야 팀원 및 지인과 함께 바다 구경을 갔다. 처음 계획은 구경뿐이었지만 역시나 다들 한여름에 바다를 보니 참지 못하고 몸을 적셨다. 결과도 좋았고 바다와 흑돼지도 즐겼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뭔가 많이 벌려놓은 시기!
올 초에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브런치에도 글을 남겼었고 자퇴 전까지 저울질을 많이 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이미 기울어진 저울이라 저울질은 의미가 없었다. 자퇴를 결심하고 과 사무실에 전화를 하니 세상에...! 부모님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한다. 당연히 부모님께 말도 없이 자퇴를 덜컥해버릴 건 아니었지만 동의서를 받는 행위는 느낌이 다르다. 부모님이 나의 얘기를 전달받는 것뿐이 아니라 당신들께서 직접 서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기껏 좋은 대학 보내 놨더니 자퇴해버린다는 아들의 자퇴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게 얼마나 착잡하셨을까... 난 정말 불효자구나 싶었고 이때 마음이 정말 싱숭생숭했다. 가득 차 있던 자신감도 줄었으며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더 자주 들었다. 근데 불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내 선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인생은 나로 인해 결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내게 삶을 주시고 좋은 생각을 심어주시고 부족하지 않게 살게 해 주셨다. 이 모든 게 너무나 감사하고 어떻게 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중대한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 판단했다. 그래서 자퇴 후 1년, 3년, 5년 뒤 내가 하고 싶은 것들, 해야 할 것들,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선택지들을 모두 준비하여 피피티로 만들었고 부모님 앞에서 발표했다. 부모님께서는 아쉬운 모습을 숨기진 않으셨지만 늘 그러하셨듯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시고 서명해주셨다. 이때 자취방에 돌아가던 중 아쉬워하시던 부모님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불편해 눈물이 맺혔다. 그럼에도 결심을 하게 된 건, 이런 아들의 길을 선택하고 지지해주신 부모님의 믿음에 보답하는 것뿐이다.
어느 여름날 친구들과 연희동 자취방에서 놀던 중 서로의 뱃살에 놀랐다.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었지만 외면해오던 그것.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에 친구들과 바디 프로필을 찍기로 결심했다. 9월까지 열심히 살 빼고 몸을 만들어서 같이 찍기로 한 것이다. 동기 부여를 위해 몸을 만드는데 실패한 친구는 그 몸 그대로 찍는 굴욕을 감수하기로 했다.
바로 헬스를 끊고 유튭에서 헬스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열심히 운동을 시작했다. 꾸준히 운동하고 간헐적 단식을 하며 적당히 먹을걸 즐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9월이 되었다. 그런데...? 살은 많이 빠졌지만 바디 프로필을 찍기엔 부족했다. 위기감을 느낀 난 식단도 조절하기로 하였고 이때부터 고샐닭(고구마, 샐러드, 닭가슴살) 식단을 시작했다. 점심에 팀원들이 나가서 밥 먹을 때 혼자 남아 고구마와 샐러드를 먹었다 ㅠㅠ 고된 시간이 시작되었다.
음악을 향한 열정은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표출이 되었다. 한동안은 노래만 하다가, 한동안은 기타도 치다가, 이번에는 피아노에 꽂혔다. 연주곡도 해보고 싶지만 무엇보다 반주를 해보고 싶었다.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 게 내가 꼭 갖고 싶던 역량 중 하나였다. 멋지잖아...! 그러나 반주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돈과 시간을 투자해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쉬운 코드들로 연습할 때는 쉬웠지만 더욱 다양한 코드를 활용해야 하고 다양한 반주법을 익혀야 할 때쯤부터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연습을 했고 연주곡으로는 'flower dance', 반주 연습곡으로는 '말하는대로', '숨', '간식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등등 정말 많은 가요곡을 연습했다. 왈츠곡도 두곡 연습했고 이 연습곡들은 이제 좀 익숙해졌다. 물론 쉬운 반주로만 가능해서 아쉬움은 있지만 코드는 다 누를 수 있고 노래와 함께 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마지막으로 'flower dance', '간식송'을 그랜드 피아노로 치는 영상을 남기며 학원을 마무리 지었다. 학원을 가지 않고도 꾸준히 연습하기 위해 그 좁은 자취방에 집에 있던 전자피아노를 들이기도 했다. 이제는 더 다양한 반주법을 익혀가며 그동안 연습해온 곡들의 반주를 더 풍부하게 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벌려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마무리 짓느라 그나마 제일 바빴다.
바디 프로필 촬영일은 계속 뒤로 밀렸다. 친구들도 나도 모두 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ㅋㅋㅋ
9월 중순부터 11월까지 고샐닭으로 고통받으며 계속 몸을 만들기 위한 발악을 했다. 엄청 열심히 한건 아니었다. 먹을 땐 맘껏 먹었고 대신 그 식사 이후 24시간을 굶기도 했다. 분명 건강한 다이어트 방식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다이어트는 지속가능성이 최고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3끼 다 건강식만 챙겨 먹으며 근력 운동에 유산소까지 같이 하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유산소를 줄이고 적당히 굶는 게 훨씬 편했고 그렇게 11월까지 진행을 해왔다. 무게는 11킬로 빠졌고 체지방은 20%에서 10%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슬슬 바디 프로필을 찍어도 괜찮겠지 싶어 업체와 후기를 찾아보니 세상에. 바디 프로필 가격에 생각보다 너무 비쌌고 찍는 사람들 후기를 보면 다들 거의 5%~8%의 체지방률을 만들어서 촬영에 임했다. 내 몸뚱이가 너무 비루해 보였고 너무 비싸서 이거 이대로 찍어도 되는 걸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때의 이런 고민을 할 나를 위해 과거의 내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나 바디 프로필 찍는다!'라고 기대감을 심어놔 버렸다. 결국 비루한 몸을 이끌고 바디 프로필을 촬영했다. 걱정했던 것에 비해 조명을 받으니 이런 몸도 어느 정도 괜찮게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12월에 나왔다. 생각보다 만족스러웠고 하나의 큰 도전을 해낸 내가 기특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해주는 계기가 된 도전이었다.
올해 초부터 잘노는 과 미팅을 가진 투자사가 있었다. 투자사는 돌봄 업계 모든 플레이어들을 보는 중이었고 그중 잘노는이 있었다. 처음부터 큰 임팩트를 준건 아니었지만 문미의 집요한 노력으로 투자사와 계속 미팅을 진행했다. 그 결과 투자사와 마음이 잘 맞아 투자 유치를 진행하게 되었고 우린 희망을 얻었다. 그러나 투자라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배운 좋은 경험이 되었다. 단계 단계마다 어려움에 봉착했고 그동안 쌓여온 잘못된 것들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이 모든 걸 바로잡기 위해 투자사의 파트너님과 직원분이 정말 열심히 해주셨고 덕분에 무사히 진행이 되었다. 문미는 이 과정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난 과정을 전달받은 게 전부였고 몇 가지 요구되는 정보만 제공했을 뿐 그 외 나머지 모든 일은 문미가 다 진행했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고생한 문미에게 수고했고 고맙다는 얘기를 전달하고 싶다. 덕분에 잘노는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우린 그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제 잘노는의 앞길에는 더 많은 고생이 있겠지만 그를 통해 도약하는 일만 남았다.
올해 초만 해도 연세대학교 도서관 구석에 마련된 자리에서 일을 했었는데 어느덧 광화문 위워크에서 일을 하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11월까지는 감사히도 서초구 메가스터디 건물에 제공받은 좋은 공간에서 머물렀고 12월에는 떠날 때가 되어 위워크로 옮기게 되었다. 위워크는 정말이지... 너무 좋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위워크의 더 좋은 공간(창문이 있는 넓은 사무실!)로 옮겨가기 위해 회사를 더욱 성장시켜야겠다.
올해 잘노는과 함께해주신 멋진 분들이 꽤 있다. 떠난 분들, 지금 함께 하고 계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직 부족한 리더들이지만 잘 따라주시고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셨기에 지금의 잘노는이 될 수 있었다. 나름대로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제공해드리고자 노력했지만 좋은 성과를 내진 못했다. 그래도 꾸준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 중이고 언젠가 누구나 일하기 좋은 회사로 만들어 내겠다. 지나간 분들은 언젠가 다시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길 바라고 지금 함께 하는 분들과는 잘노는이 만들어낼 성과를 끝까지 함께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올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리액트 네이티브 개발이 올해 큰 빛을 보았다. 리액트 네이티브를 도입하고 개발함으로써 서비스를 시터용, 학부모용으로 분리할 수 있게 되었고 랜딩페이지까지 리액트로 통일해버렸다. 프레임워크가 하나로 통일이 되니 편리해진 것이 많았다. 리액트 네이티브를 배워 서비스에 적용한 것은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게 되었기에 회사에도 매우 효율적이었다. 다만 아직 역량이 조금 부족해 최적화와 짜임새 있는 코드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는 이제 리액트 네이티브만 담당하여 개발할 우리 팀 개발자과 함께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잘노는에 새로운 팀원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내 리더십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은 아니더라도 조직을 부드럽게 잘 이끌어 나가는 정도의 리더십은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기업에서의 리더십은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관계부터가 다르기에 기존의 리더십은 의미가 없었다. 시스템을 구축해서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적절한 업무 분배와 동기 부여를 해야 하며 그 와중에 팀원들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팀원들이 늘어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고 기존의 자기 할 일 알아서 처리하는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기존의 방식을 고치지 못했기에 문제가 발생했고 이 점을 올해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올해는 아마도 나와 문미의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일 게 분명하다. 둘 다 아직은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고 성장하는 회사에 걸맞은 리더십을 키워나갈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리더십이라는 게 단순히 타고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도 분명 겪어보고 분석해보면 더 나아질 수 있는 영역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개발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도 리더십의 성장이 올해의 가장 큰 숙제이지 않을까 싶다.
돌아보니 다행히 2018년도에 이것저것 해왔구나 싶다. 개발자로서는 리액트 네이티브라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익혔고 창업가로서는 회사의 성장 및 후속투자 유치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자퇴를 해버린 것과 바디 프로필 촬영, 피아노 연주 정도의 일들이 있었다. 리더십이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쉬운 점들은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한 해였다. 크게 아픈 일 없이 건강했고 옥탑에서 파티도 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2020년 1월 1일 '2019년 회고록'을 쓸 때에는 더 많은 것들을 뿌듯하게 적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고 그렇게 만들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