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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룩말 Nov 10. 2023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 당신을 찾아서

  라디오는 정통 시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튼다. 가요라고 해도 가요가 얼마나 많은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패티김, 배호, 이미자에서부터 하룻밤 자고 나면 속속 새로 나오는 케이팝까지. 또 2020년대 이후 나온 가요라고 한정한다고 해도, 메인스트림 케이팝부터, 트로트, 인디, 크로스오버, 발라드, 밴드 등 서로 "우린 엄연히 달라!"라고 주장하는 음악들이 천지다. 많고 많은 음악들 사이에서 피디는 어떤 곡을 고를까? 


  청취자 문자들 중에 이런 문자가 정말 많다. 

 - 여기 피디가 이 노래 좋아해서 많이 나온다. 

 - 피디 취향 알만하군. 


아직까지 AI가 피디의 선곡자리까지 꿰차지는 않아서 대부분 라디오에서 선곡은 사람이 한다. 사람인 이상,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해도 이미 판단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피디가 지가 좋아하는 노래를 튼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저런 평가는 사뭇 섭섭한 평가다. 선곡이 나쁘다는 말을 들어서 섭섭한 것이 아니다. 피디가 자기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튼다는 그 생각이 섭섭한 것이다. 


  주인장 혼자 운영하는 카페나 바 일지라도, 장사를 잘하고픈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음악을 틀 때 손님들의 취향이나 반응을 눈치라도 볼 것인데, 하물며 내 가게도 아닌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서 내가 무슨 권리로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제멋대로 튼단 말인가. 


  그럼 무슨 기준으로 너희 피디들은 음악을 트느냐? 물어본다면 '감'이라고 밖에는 답할 수 없어, 또 한 번 비웃음을 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그게 답이니 어쩔 수가 없다. 어떤 '감'인가. 바로 누구나, 보편적으로, 일반적으로,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노래일 것 같다는 '감'이다. 무슨 규정이나 지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이다. 


  물론 '감'은 여러 가지 자료로 증명된다. 옛날 우리 세대에 음악키워드 중 하나였던 '가요톱텐' 순위. 다운타운 집계순위. 소위 음반판매량이나 방송 횟수 등을 기반으로 잡혔던 가요 순위였다. 요즘은 온라인 음악플랫폼에서의 차트도 있다. 방송 관련 여론조사기관에서 선호하는 가수를 연령대별로 조사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종합하면서 과연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는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라디오는 TV와 함께 전통적인 매스미디어. 매스, 즉 범대중적인 사람들에게 뿌려지는 미디어다. 쌍둥이 간에도 세대차이가 난다는 요즘, 남녀노소가 함께 듣는 매스미디어의 '평범한 시청취자'는 과연 누구일까? 

노래 하나를 선곡해도 너무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거나 좋아할 만한 취향보다는 범대중이 좋아할 노래를 고르고, 퀴즈나 내용을 고를 때도 소수의 사람이 관심 있는 것보다는 누구나 관심 가는 것을 고른다. 그러나 '누구나'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저마다의 상황이 다른데, 보편화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까, 미궁에 빠진다. 


  예전엔 가끔 '대한민국 평균을 찾아라' 이런 신문기사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이는 40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소득은 얼마, 중간 규모의 회사에 다니며 직책은 어느 정도, 자녀는 두 명이고, 취미는..... 

하지만 이런 조건에 꼭 들어맞는 아저씨를 몇 명 찾았다 치더라도, 그에게 말 못 할 특수한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런 상황으로 인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없을 거야'라면서, 어디에서도 이해를 받지 못해 외로움에 오늘도 소주 한잔 기울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런 소주 한잔까지 대한민국 평균이라면 어쩔 수 없을까. 


  오늘도 나는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아주 희귀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범한 당신들'을 떠올리며 방송을 준비한다.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하루의 고단함도, 퇴근해서 잠시 티브이를 보며 두 다리를 쭉 뻗을 즐거움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그리움도,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쉬움도, 남들보다 아주 많이 겪지는 않고, 그냥 남들만큼만 겪으며 오늘 하루도 '평범하게' 지냈기를 바란다. 퇴근길에 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속 노래와 말에 잠시 마음이 풀어지고, 조금 웃기도 하고, 집에 도착하면 어느새 차에서 들었던 라디오 따위는 또 잊고 티브이를 켤, 아주 '평범한' 당신을 나는 매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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