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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Aug 23. 2019

꽃게는 사랑을 싣고.

# 05 글쓰기 주제 : 브런치x한식문화


어렸을 때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고기'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같은 '육류'를 뜻 하는데, 특별히 맛이 없다거나 식감이 별로라든가 하는 좋아하지 않음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고기보다는 채소를, 채소보다는 해산물과 생선 같은 바다생물들이 더 맛있고, 자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다생물들은 내가 정말 애정 하는 음식 군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우리 가족이 집 근처 돼지갈비 집으로 외식을 가면, 그 면모가 더욱더 돋보이곤 했는데 우리 가족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육식파에 대식가인 우리 아빠는 돼지고기를 소고기처럼 드셨고, 엄마는 과자처럼 바싹 익은 고기가 아니면 잘 먹지 못해서 본인이 점찍어 놓은 고기를 정성껏 굽는데 온 힘을 다해 집중하시곤 했는데, 두 분의 모습은 언뜻 돼지갈비로 바둑을 두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고기를 지키려는 자와 보이는 고기는 다 먹어버리려는 자. 그리고 그 둘과는 별개라는 듯이 돼지갈빗집 밑반찬으로 나온 꽁치구이에 공깃밥 하나를 뚝딱 해치워 버린 어린 나. 그때는 돼지갈비를 뜯는 것보다 꽁치 갈비를 뜯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그때의 나에게 바다생물들을 얼마큼 좋아하냐고 다정하게 물어봐 준다면, 나는 일주일 내내 해산물이랑 회만 먹고살다가 하루 쉬고 먹고 하루 쉬고 계속 먹는 것을 반복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했었다 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신기한 것이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식성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흔히 꺾이는 나이라고 하는 그 시기에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프고 나서 보니, 소고기보다는 바다생물! 을 주야장천 외치고 다니던 나의 오래된 자아는 더 이상 없었다. 힘겹게 이십오 세를 넘긴 내 신체기관들이 이제는 고기가 필요한 건지, 뭐니 뭐니 해도 소가 최고쥬~ 를 외치는 내 모습만 남게 되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몸무게 앞자리 수와 입맛이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덕분에 요즘의 나는 문어꼬치보다 닭꼬치, 생선가스보다 오겹 돈가스, 광어회보다 노른자가 올려져 있는 육회가 더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그런데 딱 한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애정 하는 바다생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꽃게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직 꽃게탕만큼은 끊어내질 못했다. 내가 꽃게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하시다면, 꽃게탕을 사주고 가만히 나를 지켜보세요.



왼손으로는 내가 맛있게 먹어줄 꽃게의 한 부분을 단단히 잡아 고정시키고, 쇠 젓가락 한 개를 휘어잡은 오른손으로는 꽃게 살을 구석구석 발라낸다. 이때, 머릿속으로는 꽃게의 구조를 상상하며 현재의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 얇은 껍질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살을 발라낸다. 유난히 더 단단한 부위인 집게발 또한 기똥차게 발라먹는다. 단, 집게발은 주방용 가위가 필요하다. 날카로운 옆 부분을 가위로 쭈ㅡ욱 잘라 틈을 만들고 그 사이에 쇠 젓가락을 넣어 짚게 부분의 살들을 살살살 발라낸다. 이렇게 먹으면 꽃게를 대충 통째로 와그작 씹어먹었을 때 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분해된다.



이런 나의 꽃게 살 발라내기 기술은 꽃게에 대한 섬세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꽃게는 생각보다 신체구조가 단순하지 않아서, 집중력과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살을 깨끗하게 발라먹기가 어렵다. 실제로 게 다리와 붙어 있는 몸통 쪽 살 중에 얇은 막에 숨겨져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 막을 뚫어야지만 살을 발라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과정 자체를 번거롭다고 여기기 때문에 살을 발라내려 하기보다는 그냥 앙 물어버리는 쪽을 택한다. 나는 짚게 발은 물론, 작은 다리에 있는 살 까지 몽땅 발라내서 먹는다. 가히 국보급 문화재 발굴 수준인데, 이 모든 건 엄마의 엄마, 바로 나의 외할머니로부터 직접 터득한 것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오래된 은색 냄비와 그 속에 담겨 있던 외할머니의 꽃게탕. 할머니는 결혼한 큰 딸이 집에 내려온다고 하면, 수산시장에 나가 꽃게를 사다가 탕을 끓여 놓으셨다. 어렸을 때부터 비위도 약하고 가리는 음식이 많았던 엄마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된장 베이스의 구수하고 얼큰한 맛.  어미새처럼 게살을 발라 내 입에 쏙-쏙- 넣어 주시곤 했던 할머니의 다정한 모습. 아마 우리 할머니는 나의 엄마에게도 손녀딸에게 하셨던 것처럼, 꽃게 살을 손수 발라 입에 넣어 주시며 흐뭇 해 하셨을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란 우리 엄마. 이제는 엄마가 할머니의 꽃게탕을 끓인다.




외할머니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신 까닭에, 엄마는 꽃게탕 레시피를 직접 전수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엄마의 꽃게탕에는 외할머니의 꽃게탕이 그대로 있어서, 엄마의 꽃게탕을 먹고 있으면 외할머니의 꽃게탕이 저절로 그려진다. 여자는 나이를 먹으면 엄마를 닮아간다는데, 어쩌면 나도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할머니의 꽃게탕을 끓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우리 엄마는 쇠젓가락을 들고 게살을 발라주는 할머니로 나이 드시려나?!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꽃게는 사랑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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