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삽질>, 어쩌면 가장 뜨거웠지만 동시에 차가웠던 눈물들
전 10년 차 영화 기자입니다. 리뷰, 인터뷰, 현장 취재 등 이 루틴의 나날 중 우연과 필연의 조합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듀서를 맡게 됐습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삽질>은 저의 첫 작품입니다. 13년간 쌓인 4대강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약 2년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그 기억을 소환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 녹조로 뒤덮였던 금강의 모습. 녹조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다. 청산가리의 20~200배에 해당하는 독이다. <삽질>에도 등장하는 부역자(우리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더니 끝내 카메라를 피해 도망치기에 바빴다)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 같은 이들은 "녹조로 화장품도 플라스틱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맞는 말. 하지만 거기에 쓰이는 녹조는 인공으로 배양한 '독성 없는 녹조'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녹조엔 맹독 물질이 담겨 있다.
대체 왜 지금 4대강 사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삽질>이 나왔어야 하는지 지난 글에 담았다. 나름 ‘야심 찬 호소’였는데 14일 개봉 이후 상영관(전국 약 200개로 시작)에 비해 흥행 성적은 좋지 않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제작 과정을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영화 기자가 어떻게 프로듀서를 맡게 됐는지가 이번 연재의 주제기도 하니까.
이 영화의 시작은 회사에서 나름 공들여 만들어 올린 미니 다큐멘터리 5편이었다. 2006년, 그러니까 이명박 씨가 강력한 대권 후보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무렵 내뱉은 ‘대운하 사업’ 검증 시도, 금강 및 낙동강과 영산강을 다니며 강의 변화를 담아온 김종술, 정수근 시민기자 및 환경 운동가들의 모습이 곳곳에 담겨 있는 영상들이다. ‘환경’, ‘경제’, ‘민주주의’ 등 소주제로 나눠 5편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나름 반응이 있었다.
20분 분량의 영상을 내 개인 SNS에 올렸다. 동료 기자들의 노력을 나름 홍보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12년간 이어진 추적 보도가 총망라된 작품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정도. 22조 2천억 원을 강에 쏟아붓고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비자금 조성 의혹, 횡령 의혹, 공사 인부 사망 사건 등에 반성은커녕 일언반구 없는 그들의 모습에 나 역시 다소 분노를 갖고 있기도 했다.
게다가 녹조(전문용어로는 남조류)가 화장품 제조에 쓰이기에 유익하다느니, 4대강 사업 이후 가뭄과 홍수가 줄었다느니, 4대강 사업 이전에도 그 강에 녹조가 있었다느니 하는 ‘가짜 뉴스’(여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정진석은 말했다’ 연재 기사를 검색해보시길.)가 버젓이 나돌아 다니고 있었다. 누군가는 정리해야 했고, 그게 우리 작품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 투자배급사가 될 뻔했던 모 영화사의 A대표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내 게시글을 본 그는 “영화적으로 잘 구성해서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자. 내가 도와주겠다”라고 했다. 이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약 2개월 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투자계약서가 오갔다. 본격적인 ‘프로듀싱’ 과정의 시작점이었다.
+ 영화 <삽질>의 숨은 연출자 안정호 기자(좌)와 촬영 당시 든든하게 카메라를 지키고 들었던 조민웅 기자(우) 조민웅 기자는 퇴사 후 현재 또다른 팀에 들어가 해당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소 '변태적'이었던
분명히 적어놓지만 이는 일반적인 과정은 아니다. 물론 각종 영상 콘텐츠가 저마다의 플랫폼에서 명멸하는 마당에 무엇이 정석이고 무엇이 아닌 지 그 구분은 이미 무의미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기획 및 개발 과정이 필수인 통상적인 영화화 공정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취재 기반의 언론사가 내놓았던, 언론사 출신 영화인들이 내놓았던 몇몇 다큐가 이런 길을 걸었을 것이다. 최근 개봉해 의미 있는 성적을 낸 <김복동> 또한 그간 쌓여온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영화화 경험이 전혀 없는 우리 시스템에 전문가의 피를 수혈해야 했다. 구성 작가가 가장 중요했다.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PD 수첩> 수심 6m의 비밀’ 편으로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로부터 해고당한 정재홍 작가를 모셨다. 그런 아픔을 겪었기에 그는 사명감과 분노로 의기 탱천 해 있었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 <공범자들>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관록의 작가였다. 그렇게 약 2년 동안 우린 4대강 사업으로 잘 먹고 잘살던 온갖 권력자와 부역자들을 차자 헤매 추가 촬영을 진행했다. 1년간 행방을 추적하다 겨우 따라붙어 만날 수 있었던 자도 있었고, 우리의 촬영 메모리가 분실되거나,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가 없어지는 수상한(?) 일도 겪었다.
'인생은 생각대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가 <삽질>에도 작용했다. 지친 제작진 사이에서 영화화 전면 백지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그 와중에 기존 투자배급사 문제로 계약 자체를 해제해야 하는 일을 겪어야 했다. 안에서 제작진들은 각자 눈물을 쏟았을 것이고, 나 역시 외부에서 대안을 찾아 헤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기에 다 실을 수 없는 온갖 기술적 오류들, 영화계에 존재하는 어떤 냉소들, 우리 안의 자기 검열들이 <삽질>의 장애물들이었다.
그리고 공식 개봉. 첫 주말,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관객들과 대화 행사를 진행하며 서로 차마 내놓지 못했던 사연을 관객들과 나눴다. 12년간 집에 제때 들어가지 못할 때마다 두 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던 김병기 감독님, 특히 금강에 내려간 이후 큰빗이끼벌레를 먹고, 녹조가 낀 물을 직접 마시기까지 했던 김종술 기자님은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다 울컥해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의 자세한 사연은 이 기사에서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 "밤길 조심해" 협박·폭행 당하고... )“이 얘기하면 나 자신이 초라해져서...”라며 그가 지나가는 말로 10년 넘게 강을 지키면서 겪어왔던 숱한 모멸감과 아픔을 드러냈다.
+ <삽질>의 내레이션 녹음 당시 모습. 박혜진 아나운서가 전주영화제 출품 버전에 참여했다. 이후 개봉 버전에선 김병기 감독이 직접 녹음했는데 장장 3일이 넘게 걸렸다. 영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바로 녹음과 사운드 작업에 들어갔다는 사실! 사운드에 매우 공을 들인 작품! 그래서 이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
<삽질>에 켜켜이 쌓인 우리의 감정만 놓고 보면 분명히 뜨거워야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선 종종 ‘건조하다’, ‘차갑다’ 등의 반응을 보이신다. 사실 맞는 말이다. 마치 기자가 쓴 기사가 감정적일 수 없듯 이 영화는 어찌 보면 미련해 보일 정도로 어떤 ‘영화적 양념’이 빠져 있다. 물론 우리의 능력 부족이기도 하다. <삽질>이 영화적이지 않다는 비판 역시 우리의 몫이겠지만 분명한 건 이 기저에 흐르는 뜨거움을 발견하는 분 역시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2년간 우린 너무도 뜨거웠다. 강을 볼모로 한 22조 원의 돈 잔치, 대체 왜 그래야 했는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리고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그들을 너무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흥행과 별개로 ‘기록’으로써 <삽질>은 일단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자부해 본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아무도 내놓지 않았던 이 최초의 기록을 우리 모두가 함께 보고, 깨어난 시민으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길 바라는 것이다.
☞ 영화 <삽질> 예매 사이트
http://movie.yes24.com/Ticket/Ticket_Movie.a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