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생각과 행동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예술가의 생각과 행동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태양과 무지개, 물과 바람의 스펙트럼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인다. 감각의 경험을 통해 그 세계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Olafur Eliasson, Din blinde passager (Your blind passenger), 2010 Installation view: Tate Modern, London, 2019 Photo: Anders Sune Berg Courtesy of the artist; neugerriemschneider, Berlin;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 Los Angeles © 2010 Olafur Eliasson
2003년 테이트모던의 터빈홀에 쏟아진 인공 태양의 햇살은 강렬했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라는 이름이 미술계에 각인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아이슬란드와 덴마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엘리아슨은 빛, 바람, 물, 안개 등 자연현상을 미술관에 재현해 낸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눈 앞에 펼쳐진다. 옛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터빈홀은 입구부터 중앙 엘리베이터까지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그 위는 천장까지 뻥 뚫려있어 어 건물의 높이와 공간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당시 <The Weather Project>는 깜깜한 터빈홀에 모노 주파수 램프로 만든 반원의 인공 태양과 인공 안개를 설치했다. 태양은 반원 모양인데, 천장 전체에 있는 거울에 반사되어 마치 동그란 해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이 공간에 누워 천장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작품과 하나가 되는 듯한 경험을 했다. 물리적 상호 작용을 통한 인지와 지각의 확장이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약 2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간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큰 전환점이었던 동시에 사회에 의미 있는 예술 공간으로서 테이트모던의 위상을 알렸다. 전시 이후 16년 동안 엘리아슨은 가장 흥미로운 예술가이자 모험가로 국제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올해 작가는 그 무대에 돌아와 자신의 작품 세계 30년을 아우르는 작품 40여 점을 모아 전시 <In Real Life>를 연다. (2020년 1월 5일까지) 뮤지션으로 치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앨범인 격이다. 그동안 엘리아슨이 천착해온 작업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시에 그가 제기하는 동시대의 시급한 문제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다.
Olafur Eliasson, Beauty, 1993 Installation view at Moderna Museet, Stockholm, 2015 Photo: Anders Sune Berg © 1993 Olafur Eliasson
새벽의 강가에서 마주한 물안개, 뚝뚝 떨어지는 빗줄기의 파장,
뜨겁게 떠오르는 태양의 광채...
Olafur Eliasson, Waterfall, 2019 Courtesy the artist; neugerriemschneider, Berlin;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 Los Angeles Photo: Anders Sune Berg © 2019 Olafur Eliasson
Olafur Eliasson, Big Bang Fountain, 2014 Photo: Anders Sune Berg Courtesy of the artist; neugerriemschneider, Berlin;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Los Angeles © 2014 Olafur Eliasson
올라퍼 엘리아슨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의 현상이나 상태를 관람객이 느낄 수 있도록 재현하는 작업에 있다. 새벽의 강가에서 마주한 물안개, 뚝뚝 떨어지는 빗줄기의 파장, 뜨겁게 떠오르는 태양의 광채.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지고 살아있는 순간을 느낀다. 테이트 모던의 외곽 테라스에 설치된 <Waterfall>은 높이 11m의 인공 폭포 설치물이다. 쉼 없이 세 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것이 예술 활동이 될 줄은 몰랐다.
내부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감각의 왕국이 펼쳐진다. 모던한 미술관에서 숲 속 이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1994년 처음 선보인 작품, <Moss Wall>은 스칸디나비아의 순록 이끼로 가 득 뒤덮은 폭 20m의 벽이다. 무지개를 만들어 내는 작품도 있다. <Beauty>는 미세하게 물이 떨어지며 무지개를 만드는데 다양한 각도에서 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작품 <Din Blinde Passager(Your Blind Passenger)>는 39m 길이의 복도에 인공 안개를 채운 작업이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로 관람객은 마치 구름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가시거리는 약 2m도 되지 않는다. 앞에 걷던 사람과 몇 걸음만 떨어져도 형체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Olafur Eliasson, Your uncertain shadow (colour), 2010 Photo: Mara del Pilar Garc a Ayensa/ Studio Olafur Eliasson Courtesy of the artist; neugerriemschneider, Berlin;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 Los Angeles © 2010 Olafur Eliasson
엘리아슨이 ‘유사 자연'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작품 앞에서 보통 수동적인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작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소화해내려고 한다. 엘리아슨의 작품에서 관람객은 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 없이는 의미 없는 작품 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개가 가득 찬 공간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 습한 공기, 뿌연 공간, 꿈속같이 희미하고 아득한 기분은 누군가가 느껴야만 의미가 있다. 그의 작 업은 그저 ‘자연을 재현하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이 아닌 사람의 감각과 인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Your uncertain shadow(colour)>라는 작품은 아무것도 없는 흰 벽이지만 누군가가 그 앞에 서면 휘황찬란한 색색의 그림자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팔을 움직이거나 춤을 추게 된다. 그런 행동이 ‘불명확한 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Olafur Eliasson Photo: Runa Maya Mørk Huber / Studio Olafur Eliasson © 2017 Olafur Eliasson
2016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의 개인전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이 열렸을 때도 엘리아슨은 작품이 망가지면 고치면 된다고 쿨하게 이야기하며, 아이들이 전시장을 뛰어다니며 이런 감각을 제대로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예술가가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의 미술관에 커다란 인공 태양을 띄우고, 거대한 폭포를 만들고 심지어 무지개, 바람, 안개를 만들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1995년 엘리아슨은 베를린에 ‘스튜디오 올라퍼 엘리아슨’을 설립하고 공예가, 건축가, 아키비스트, 리서처, 프로그래머, 미술사가 그리고 전문 테크니션 등 90여 명의 전문가와 일해왔다. 예술가는 개념과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수많은 전문가가 이 프로젝트를 함께 완성한다. 이렇게 그는 1990년 중반부터 건축과 기하학, 과학을 응용한 전 시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작업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빛을 뿜는 램프와 안개를 만드는 노즐 등을 숨기지 않고 노출해 의도적으로 작동 원리를 그대로 볼 수 있게 한다.
Olafur Eliasson and Minik Rosing, Ice Watch Installation: Bankside, outside Tate Modern, 2018 Photo: Charlie Forgham Bailey © 2018 Olafur Eliasson and Minik Rosing
올라퍼 엘리아슨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작더라도 어떻게든 세상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예술가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환경 문제와 난민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왔다. 그는 사회와 자연에 대한 공동 책임감이 확실한 사람이다. “우리는 지구로부터 분리될 수 없어요. 불가피하게 세상에 휩쓸리고 우리의 행동은 결과를 초래하죠. 기후와 난민 문제 등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그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해요.” 그는 시청 앞에 녹고 있는 그린란드 빙하를 설치하고(<Ice Watch>), 강에 녹색 염료를 풀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했다(<Green River>). 이번 전시에서 역시 20년 전 작가가 촬영한 아이슬란드의 빙하 사진이 전시되었고, 2018년 테이트모던 앞 광장에는 빙하 여러 덩이가 설치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하염없이 녹아내리는 얼음은 지 금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 비상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끼게 한다.
Olafur Eliasson, Cold wind sphere, 2012 Photo: Jens Ziehe © 2012 Olafur Eliasson
이번 전시 공간 중 'The Expanded Studio'에서는 엘리아슨이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업을 집중 적으로 소개한다. 2012년 테이트모던에서 처음 선보인 <Little Sun>은 노란 태양 모양의 휴대 용 태양광 램프다. 당시 엘리아슨은 미술관 전체의 조명을 모두 끄고 이 ‘작은 태양'만 가지고 전시를 보게 했다. 지구 상에는 아직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가 약 16억 명 있다. 램프는 태양광으로 충전되어 약 5시간 동안 빛을 밝힐 수 있어 전기가 없는 지역에서도 유용하다. 이 프로젝트는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느껴봄과 동시에 개발도상국과 지역사회에 램프를 보 급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 망명 희망자와 난민이 대중과 함께 녹색 전등을 만드는 ‘녹색 조명' 예술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엘리아슨은 사람이 보는 것을 통해 어떻게 주변 환경을 지각하는지 연구한다. <In real life> <Your planetary window> 등 만화경 연작은 색색의 빛과 모양이 투영되는 광경을 통해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Installation view of Tate Modern’s Terrace Bar featuring artworks and lamps by Olafur Eliasson Photo: Anders Sune Berg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특이한 이벤트가 하나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 스튜디오는 유기농 채식, 산지 공급 농산물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추구하는데 스튜디오의 주방 팀인 SOE 키친이 테이트모던의 테라스 바를 위한 특별 메뉴를 고안한 것. 엘리아슨이 디자인한 미술 작품에 둘러싸여 그의 베를린 스튜디오에 온 듯한 식사 시간을 갖는 것도 특별할 테다. 이번 개인전 <Olafur Eliasson: In Real Life>는 2020년 1월 5일까지 테이트모던에서 열린다. 이후 빌 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2월 14일부터 6월 2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그의 시선은 늘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상에 있다. 멀리 있다고 믿는 세계는 생각보다 가까이 곁에 있다. 감각의 경험을 통해 그 세계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올라퍼 엘리아슨이 행동하는 예술은 이런 것이다.
Editor 이소진
도움 테이트모던
<ORDINARY> Magazine 30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