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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Feb 20. 2023

우울증약, 먹어야 될까? 말아야 될까?

  “약을 줄이시고 싶으신 거잖아요?”


  약을 줄이고 있었다. 수면장애, 감정조절장애, 두통 등이 부작용으로 동반됐다. 그래도 약을 먹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날이 늘어나는 것이 기뻤다. 다만 부작용을 누르기 위해 다른 약을 더 많이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심지어 다른 약으로는 부작용이 완벽하게 잡히지도 않았다.


  ‘이러면 약을 줄이는 게 의미없는 거 아냐?’


  합리적 의심이 들 때쯤 병원을 방문했다. 약을 줄일 때 권고하는 방식은 매일 복용하던 약을 격일로 복용하며 체내 농도를 천천히 낮추는 것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권장되는 방법이다. 반면 나는 수면장애는 가볍게 무시하고, 뇌에 전기충격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작용이나 감정조절장애가 나타날 때쯤에야 마지못해 약을 먹었다. 미복용 상태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고 뿌듯해 했지만, 세로토닌의 체내 농도를 급격히 저하시켜 감정조절장애를 유발하는 최악의 방법이었다.




  약을 줄이고 싶은 거 아니냐는 의사의 말은 안일해진 마음에 큰 충격을 줬다. 약을 줄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약을 끊어도 되는데 부작용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다. 의사는 내가 약을 줄이거나 끊어도 되는 상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환자의 바람과 의지를 존중할 뿐이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벌써 삼 년 가까이 우울증 및 불안장애로 장기간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다. 의사가 금방 약을 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 건 초기뿐이었다. 그때는 내 상태가 어떤지 제대로 파악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의사라고 알 수 있었겠는가. 내가 이렇게 오래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였다는 걸 말이다.


  도대체 우울증약을 끊을 수 있는 건 언제일까? 누가 그걸 알까? 그런 신호는 무엇으로 알 수 있지? 의사와의 면담 후 적어도 감정조절장애는 부작용 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부작용이 아니라 약으로 누르고 있던 나의 우울증 증상이 다시 발현된 것뿐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맞을 것이다. 올해 안에는 약을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부푼 희망은 또 다시 좌절됐다. 너무 자주 좌절돼서 이제는 아프지도 않다.


  “요즘 어때?”


  그래도 동생이 묻는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은 조금 서글프다.




  ‘혹시 내가 우울증인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이 ‘우울감’을 ‘우울증’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잠깐 스쳐지나가는 가벼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온라인상에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우울증 자가진단표가 많이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경험상 정확도가 꽤 높다. 본인이 우울증이라고 의심된다면 먼저 자가진단을 해보고, 결과에 따라 병원에서 구체적인 진단과 검사, 면담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우울증 삼 년차로서 나는 우울증약을 복용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약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후회했지만 지금은 약 한 알이면 감정조절이 되고, 약 몇 알이면 긴장성 두통이나 복통이 사라지고, 푹 잘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심지어 약 복용 후 수개월이 지났을 때는 그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의 경미한 정도라면 선택에 신중할 것을 권한다. 만약 먹게 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복용을 중단할 수 있을 정도이길 바란다.


  주변에는 몇 달간 복용을 중지했다가 힘들면 잠깐 처방을 받아서 먹는 환자들이 몇몇 있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케이스의 우울증 환자가 이런 유형일 것이다. 몇 개월씩이나 약을 안 먹어도 괜찮을 수 있다니. 새삼 부럽다. 나는 정말 많이 좋아진 게 고작 삼 일인데. 장기복용을 하게 되면 우울증은 지병이 된다. 언젠가 약을 끊고 싶어 하는 나에게 의사가 “약을 계속 먹는다고 해서 인체에 유해한 건 없어요.”라고 했던 것은 내가 계속 약을 먹게 될 것이라는 복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좌절감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시도해볼 것이다. 그 과정이 아주 느릴 수도 있고, 어쩌면 실패로 끝날 수도 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우울증약 성공적으로 끊는 방법’이란 글을 쓸 수 있길 바라며, 매뉴얼대로 약을 끊는 연습을 새롭게 해보려고 한다. 평생 우울증 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고 싶지는 않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된다면, 그건 또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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