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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Oct 02. 2023

마음에 여유를 주는 여행 이야기

여행을 출발하기 전까지 갈지 말지 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이번 여행은 더 무계획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출발 바로 전날 밤 10시가 넘어서야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나 내일부터 여행 다녀올까 생각 중이야. 그런데 갈지 말지 아직 고민 중이야.”

“그냥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다녀오렴.”      


그날 밤 12시가 되어서야 가겠다고 결정했고 가슴이 답답한데 동해 바다나 보러 가자고 강릉의 호텔을 예약했다. 이 호텔은 벌써 세 번째 가는 곳이다. 한숨 잔 후 아침 8시, 어머니께서 새벽기도에 다녀오셨을 때 바로 말씀드렸다.      


“나 여행 다녀올게. 이제부터 짐 싸고 10시 정도에 출발할까 해.”

“그래. 잘 다녀오렴.”      


그렇게 동해 바다로 출발했다. 보통 여행을 하면 정보습득, 계획 등 사전조사를 완전히 하고 출발하는데, 이번 여행은 모든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냥 눈앞에 길이 있어서 그 길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동해 바다로 가는 기분이 쾌했다. 머릿속을 텅~비우고 달리니 몸과 마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도착 후 방 배정도 잘 되어서 바다가 잘 보이는 위치였다. 강릉의 바다가 매력적인 것은 망망대해를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있어서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나무 향이 바다 냄새와 더불어 방을 감싸는 점에 있다. 파도 소리와 함께 소나무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도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강릉 강문해변


‘나 바다에 왔구나~’     


하루종일 방에서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산을 보면 ‘경치가 장관이구나~’라고 감탄하지만 바다를 보면 그냥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속이 다 후련해진다. 강릉의 매력은 이렇게 한적함과 여유로움에 있는 것 같다.      


저녁을 먹은 후, 해가 질 때까지 바다만 바라보았다. 이제 창밖으로 어둠이 찾아왔다. 내일 무엇을 할지 생각할 시간이다. 예전에 한창 세계여행을 할 때에는 새로운 것을 하나라도 더 보아야 한다는 의지와 노력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러한 열의는 사라지고 가본 곳 중 괜찮은 곳을 다시 찾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취향으로 바뀌었다. 그러한 의미로 강릉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세 번째였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이번 여행은 무계획이 바로 계획이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와보겠어.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 보는 거야.”      

급하게 대구의 호텔을 예약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께 연락드렸다.      


“나 동해안 따라 내려가 볼게.”

“그래~ 엄마는 동해 바다가 좋더라. 천천히 보면서 내려가고 일찍 돌아올 생각하지 마.”

     

어떠한 선택이든 격려해 주는 어머니께 너무 감사했다.  

    

출발.      

동해, 삼척, 울진을 지나면서 조금 더 원초적이고 태곳적 바닷가를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삼척해변은 되도록 피하고 사람들이 없는, 기암괴석이 있고 강한 파도가 치는 곳을 위주로 차를 세워 사진을 찍었다. 강한 파도가 거대한 바위에 부딪치고 거센 바람과 함께 잔여 물방울이 내 얼굴로 뿌려진다. 바로 앞이 검푸른 바다이다. 정말 나 하나 바다에 떨어지더라도 아무도 찾지 않을 것만 같았다.      

도시공학이 전공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동해안은 카페로 도배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카페와 개인 펜션, 대형 리조트가 동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기 때문에 중간중간 차를 세운 후 조금 더 바다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길을 찾아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던 중 어느덧 경상북도에 다다랐고 한가로운 어느 날 오후 나는 대구에 도착했다. 대구에 며칠간 있으면서 느낀 점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라는 점이 마치 두 손에 감추어진 진주와도 같다는 것이었다. 대구는 서울에 비해 작지만 도시에 스카이 트레인이 있고 수성구 주변으로는 미래도시와 같은 초고층 빌딩 라인과 함께 동네 전체가 면학 분위기로 균형 잡혀 있었다. 수성못 주변은 늦은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 걷거나 운동을 한다. 마치 유원지에 온 것처럼 느껴지는 데 내가 여행 중이기에 좋게만 보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밤중에 사람들이 공원에 모여 단체로 춤을 추는 모습은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정감 있는 모습이었다.      

대구 신세계 옥상 정원에서 본 대구
대구 수성구 범어역과 황금역

대구에서 짧게 보낸 후 부산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형? 지금 어디예요? 무조건 꼭 오세요~ 아니... 그냥 내일 바로 오세요.”라고 해서 통화한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부산으로 달렸다. 친구 집에 도착하니 친구 아이들이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너무 반가워서 날뛰고 울려고 한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며칠간 홀로 여행했는데 이러한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오랜만이다. 검푸른 바다와 초고층 스카이라인의 도시를 돌아본 후, 이렇게 밝게 맞이해 주니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친구 아내의 양해를 구하여 친구와 함께 송정 바닷가에 가보았다. 이제 해운대는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었고 광안리는 부산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었다. 해운대 위에 있는 송정해변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몰린다. 특히, 서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외국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는 점에 놀랐다.     

송정 해수욕장

나는 사람들을 피해 늦가을이나 겨울에 바닷가로 오는 편인데 ‘역시 바닷가는 성수기’라고 느낄 정도로 송정 해수욕장은 바닷물 반 서핑하는 사람 반이었고 여름 바다를 찾는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졌다. 푸드트럭, 작은 가게들, 서퍼들, 곳곳에 세워져 있는 서핑보드 등 송정은 개성적이고 재미있는 바닷가이다. 내 개인적으로 부산 바닷가 중에서는 가장 좋았던 기억이다.      


기장의 친구 집에서 며칠을 머무른 후 부산 시내에 호텔을 잡아 하루를 보냈다. 나는 부산을 여행하면 꼭 시내를 들르는 편이다. 부산 시내가 요즈음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가끔 서울에 없는 브랜드가 부산에 있는 것들을 보며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국제적인 도시이지만 부산은 국제적인 관광지’  

   

라는 것을 느낀다.      

부산 전포동 카페 'OFF COURSE' 옥상

이제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 어머니께 전화드렸다.      


“며칠 더 있다 오렴. 올라오다가 운전이 힘들면 세종에서 쉬었다가 와. 세종시도 구경해 보고...”    

 

아들은 가족이 보고 싶어 집에 일찍 가려고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들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천천히 오라고 하신다. 예전에 2년간 세계여행을 하며 티베트에 있었을 때도, 북극권을 넘어갔을 때도 친구들이 내 SNS를 보고 어머니께  

“인기가 북극권에 넘어간 것 같더라고요.”라고 하니  

“그러니?” 하며 그냥 무덤덤하게 답하셨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신앙에서 오는 여유이겠지만 무엇보다 자녀를 움켜쥐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 같다.  

    

경제적인 여유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마음의 여유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다.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자식에게 여유롭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신다.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하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해해 주신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시리라. 지금은 여행을 다녀온 후 사진들을 정리하며 그 추억을 되새기는데, 어머니와의 대화도 생각하며 노트에 적어본다. 그리고 나도 어머니를 닮아가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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