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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온유한 사람을 찾아서

by 정인기


“저희 집에서 주무세요.”

“아냐. 너의 집 근처 호텔 예약했어.”


부산에 내려간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으레 온유한 사람을 찾게 된다. 신기하게도 유독 부산에 마음씨가 좋은 친구들이 많다. 그중 일부는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대부분 서울에서 자란 친구들이 부산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어 내려가게 되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면서도 언어가 거칠지 않은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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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나는 카페에서 한 친구의 이야기를 다섯 시간째 듣고 있다. 부산에서 만난 네 사람의 친구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다. 줄곧 서울에서 자랐으나 이번에 부산 서쪽 끝 거제도 근처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친구,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주말 기러기 아빠, 비교적 작은 교단에 속해 있어서 험난한 사역을 하시는 부목사님 등 저마다의 어려운 일들을 겪고 있었고 나는 주로 듣는 위치에 있었다. 내가 하소연을 하려고 마음이 온유한 친구들을 찾아왔는데 주로 하소연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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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해 질 녘 광안대교 모습이 너무 좋아 카메라 삼각대를 세워놓고 멍하니 바라보며 사진에 담았다. 그 시간은 아마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친구에게 다시 연락했고 그 친구는 기쁘게 내가 있는 자리까지 와주었다. 한동안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친구가 속 시원히 털어놓으니 후련하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을 찾아왔는데 많이 부족한 내가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처음부터 무엇을 보러 온 여행이 아니었고 사람들을 만나러 온 여행이었으니까·······.


‘그래도 광안대교 사진은 건졌네.’


혼자 있을 때에는 하염없이 바다와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느긋한 마음을 가진다. 삼각대를 세우고 물끄러미 풍경을 바라보며 사진에 집중한다. 사람에게 위로받으려고 왔으나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오히려 바다, 자연, 건물, 느긋한 시간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된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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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오세요.”


다음을 기약하며 부산에서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올라오는 길에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청송 주왕산에 들렀다. 이제 막 가을에 들어서기 시작한 주왕산에는 역시 사람들이 많았다. 손바닥 모양으로 우뚝 솟은 기암괴석과 이제 조금씩 물들어가는 산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예전에는 산과 나무, 단풍에서 아름다움이란 것을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자연의 색깔에서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낀다. 우렁차게 떨어지는 폭포수에서도 후련함을 느낀다.


‘이제 나도 나이 들었나 보다.’


이후 말티재 전망대까지 이번 가을은 볼만한 곳들을 알차게 다닌 것 같다. 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대화를 했지만 내가 그들에게 위로가 될 때 위로를 받는다는 신기한 경험과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도 감상하고 사진도 많이 남겼다. 무엇보다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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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내려갈 때 복잡했던 마음도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리되었고 뿐만 아니라 이번 여행에서 마주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서로 건네는 따뜻한 인사 속에 차츰차츰 안정감을 되찾았다. 시간을 내어 친구들을 돌아보는 여행도 제법 괜찮은 것 같다. 사적지에서 역사를 배운 것도, 휴양지에서 푹 쉰 것도, 발전된 도시에서 새로운 기술을 체험한 것도 아니지만 상쾌한 기분을 가지고 집으로 간다. 요즈음 스마트폰과 유튜브 영상 속에 사람들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는데,


마음이 온유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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