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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Feb 21. 2024

11  현장 지원 행사, 또 가고싶다

에피소드 7 - The show must go on

회의기획자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참여하는 행사 말고 다른 팀이나 다른 담당자가 진행하는 행사에 현장 지원으로 투입되는 경우 왕왕 발생한다. 물론 바쁜 일정을 쪼개 현장을 나가는 것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다른 팀은 어떻게 하는지, 이 담당자는 행사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현장에 행사 지원하러 나갔다가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너무 잘 준비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행사장에서 있다 보면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부럽다,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오, 나는 저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반면교사를 얻기도 한다) 그런 영향들이 조금씩 모여 성장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




예전에 나갔던 현장 지원 행사 중 제일 재미있었던 건 한강에서 했던 대국민 행사였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성 행사로 낮에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진행하고, 저녁에는 푸드트럭과 공연을 하는 행사였다. 하루짜리 행사였고, 나는 현장답사 때 한번, 당일 현장 한번 이렇게 두 번 지원을 나갔다.


회의가 주가 되는 컨벤션본부의 행사와는 굉장히 느낌이 달랐다. 정장에 구두를 차려입고 컨벤션센터나 호텔을 누비던 때와는 달리 운동화에 면바지, 가벼운 재킷을 입고 온 한강을 누볐다. 조용히 무전기에 대고 속삭이던 때와 달리 모여든 대중을 컨트롤하기 위해 목소리도 내 몸짓도 커졌다.


보통 많아야 3000여 명에서 1만 명 단위인 국제회의들과는 달리 기본 1만 명부터 시작하는 메가이벤트는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정규팀도 아니고 간단한 행사 인계만 받고 진행하는 현장 운영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의외로 나는 그날 너무 행복했다. 아니 속이 시원했다.


시원한 한강 바람을 맞으며 낮부터 밤까지 넓은 공간을 누비며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즐거워하는 이들의 모습이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이게 내가 하는 일이구나.





벌써 몇 년 전이었는데 지방행사에 1주일 정도 지원을 나간 적이 있었다. 일을 쉬던 차였는데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일손이 부족해 도와달라고 해서 흔쾌히 갔다. 행사 규모도 컸고, 내가 맡을 파트도 꽤나 욕심이 났던 부분이라 냉큼 달려갔다. 오랜만에 지방행사라 설렘이 컸는데 현장에 가보니 더 설레기 시작했다.


행사 전날 내려가 부대행사 몇 가지를 담당할 거라는 것을 전달받고 당장 리허설을 하나 해치워야 했다. 가자마자 담당자라고 인사하고 몇 가지 진행방향을 체크하고 리허설을 간단히 진행했다. 다음날부터는 고위급 회의에 투입이 되었고, 있는 동안 몇 가지 작은 부대행사들을 진행하게 됐다.


현장에 갓 투입이 돼서 사실 행사에 대해 딥하게 공부를 못했어서 초반엔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큰 규모의 국제회의에 참여하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게다가 이전에 모시던 상사가 준비한 회의장을 가보고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사람이 내 사수였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러울 정도로 회의장 세팅이 완벽에 가까웠다. 디자인 하나하나 모두 고급스러웠고 세팅 하나하나 그의 노력과 재능이 담뿍 담겨있었다. 함께 일했던 시간을 비추어볼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준비했을지가 그려져 존경이 샘솟았다. 물론 그녀는 정말 많이 지쳐 보였지만, 이런 사람과 같이 일했다니 어디 가서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최근 갔던 행사는 태어나 처음 행사를 준비하는 동기의 것이었다. 준비과정을 남몰래 지켜보며 마음을 졸이거나 걱정을 했다. 난생처음 준비하는 이의 행사가 완벽할 수는 없었다. 100명 정도의 작은 규모의 행사였는데 당일 아침, 준비가 많이 부족함을 발견한 선배들의 노여움이 하늘을 찌르자 동기는 완전 얼음이 되어버렸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었고, 현장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최대한 백업해 주자고 마음을 먹고 왔기에 얼음이 된 동기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서둘러 갔다. 행사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게 하면 되는 일이다. 준비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 다행히 우리들만 만신창이었다는 걸 알았을 뿐, 성황리에 행사는 마쳤다.  


The show must go on.

이 말이 절실했던 날이었다.




현장지원행사를 다니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나도 성장한다. 배워서 성장하는 것도 있지만 몸으로 체득하는 것도 크다. 현장지원행사는 대개 하루 전날 대략적인 행사 브리핑을 듣고 움직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행사에 대해 빠르게 이해하는 능력도 길러질 뿐 아니라, 다른 이가 준비한 행사를 망치면 안 되기에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법과 상황에 더 잘 대처하는 법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대부분 현장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작은 행사일 경우 특히나 머릿수를 채우거나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일 경우가 많다. 큰 행사일 경우에나 부대행사 같은 것들을 맡아 움직이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럴 땐 정말 머리와 몸이 모두 체험 삶의 현장이 된다.


현장지원을 사실 막상 가라고 하면 안 가고 싶은 경우도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바쁜 일정을 쪼개 나가는 경우이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고 한다면 꼭 가기를 추천한다. 가라는 말이 없으면 가서 도와줄까? 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좋다. 이 일의 특성상 언젠간 나도 그가 필요한 날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항상 언제든지 도와주고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일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배웠다. 내가 맡은 것만 잘하면 되는 것이 최소한 이 업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혹여나 본인이 그런 성향의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일은 본인에게는 안 맞는 일일지도 모르고,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 거라는 걸 각오해야 할 것 같다.



다음 주면 나도 200여 명이 참가하는 반일짜리 행사가 있다. 올해 첫 행사인데 왠지 기대가 된다.

내 행사를 지원해 줄 내 동료들에게 미리 감사하고 늘 감사하고 앞으로도 감사하다.


우리, 다음 주에 잘해보자! 재미있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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