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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Dec 11. 2023

05 여초와 남초직장은 정말 다르네요

요즘 시대에 남녀를 구분하는 글을 쓴다는 건 꽤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글의 취지는 딱히 남녀를 구분한 다기보단 내가 느낀 신기한 점을 적어보고 싶어서다. 각자의 경험이 다르고 사바사 케바케겠지만 두 집단을 모두 경험해 보니 재미있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어서다. 그러니 혹여나 오해나 불편한 감정이 있다면 이 글을 읽지 않기를 추천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내가 다니던 직장은 거의 다 여초직장이었다. 남자가 전체 인원 중에 10% 정도인 곳이었고, 어떤 곳은 모두 여자만 있는 곳도 있었다. 남초를 겪어보지 않았어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초라고 해도 흔히들 생각하는 감정으로 똘똘 뭉친 여초와는 좀 달랐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감정소모보다는 군대를 안 갔지만 마치 군대에 있는 것 같이 군기가 바짝 든 여초도 있었고, 아기자기하게 오밀조밀 따뜻했던 여초도 있었다.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여서 그렇지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 클라이언트나 거래처 등등은 대부분 남자인 경우가 많았기에 여초라는 느낌을 못 받았던 적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일하면서 남자여자를 따로 구분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 머릿속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나눴을 뿐이었다. 여자라고 해서 무조건 시기, 질투를 한다거나 남자라고 해서 더 잘해주거나 하지 않았다. 여자라서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한다거나 기계를 잘 못 만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남자라고 해서 커피를 타면 안 된다거나 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사무실에 있는 직원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직원'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바이오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나는 유일한 여성 직원으로서 내 인생 첫 남초 회사를 경험했다. 나마 내가 직급이 과장이고 나름의 위치를 보장받고 있었기 때문에 덜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여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번에 이직한 직장도 남초 직장이다. 사무실에 여자는 나와 팀장님 2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직원들이다. 이곳은 이전 스타트업에 있을 때 보다도 보수적인 분위기여서인지 모르겠지만 남초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많이 느껴졌다.



문득 든 생각인데 여초에 다니는 남자직원남초에 다니는 여자 직원.

둘이 느끼는 것은 같을까 다를까.


갑자기 SNL  MZ오피스가 떠올랐다.








남초에 와서 여성 직원으로 느낀 점은 이런 거였다.


1. 사회분위기상 회식이나 술자리, 특히 접대를 해야 하는 자리 등 과음과 약간이라도 우려가 있는 자리는 최대한 참석시키지 않는다.

2. 무거운 것을 들거나 하면 다들 도와주려고 한다.

3. 각보다 커피 내리는 걸 좋아하는 남직원들이 많다.

4. 담타는 어쩔 수 없다.

5. 스포츠에 관심을!

6. 밥은 빠르고 단순하게.






1 같은 경우는 요즘 사회분위기가 이런 쪽으로는 좀 예민해지다 보니 최소한의 여지조차 없애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나도 가정이 있다 보니 배려를 해주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다. 다만 이전 직장도 그렇고 내가 가고 싶은 미팅(저녁식사와 약간의 음주를 동반한)이 있어서 손을 들어도 못 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기에 그런 부분은 아쉽게 느껴졌다.


2의 경우는 정말 아직도 어쩔 줄 몰라하는 부분이긴 하다. 남초였어도 이전 직장에서는 키가 작아서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컴퓨터나 각종 기계 만지는 거나 생수통을 바꿔 끼운다거나 하는 일들은 모두 내가 손수 했다. 오죽하면 사무실 공사때 왔던 이사님이 대체 과장님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 수 있는거냐고 물었던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남자 직원들이 있어도 왠간한 것이 아니면 부탁하지 않았다. 그들의 몸도 소중한 것인데 내 것이 그들의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내 모습을 굉장히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내가 하는 모양이 어설퍼서 혹은 걱정돼서 혹은 못 미더워서 셋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도 무거운 것도 잘 들고 한때는 카트 두 개씩 밀고 짐을 나르던 여자(?)였으니 너무 걱정 말고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해 주면 좋을 거 같다.


3의 경우는 좀 신기했는데 믹스 말고 원두를 내려 마시는 커피는 남자직원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커피맛도 맛이겠지만 그 내리는 시간, 내리는 행위를 즐기는 남직원들이 많다는 건 신선했다. 의외로 여초에 있을 땐 원두보단 캡슐머신을 좋아하던데.. 사실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4의 경우는 아무래도 아직 남성 흡연율이 높아서 일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여초에서는 아무래도 드러내고 흡연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예전에 한번 담타가 있는 여초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5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남초에서 흔히 보는 현상(?)일 거 같기도 한데, 스포츠 이야기가 끊임없다. 덕분에 나도 스포츠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기도 하고 스포츠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확실히 여초에서는 다루지 않던 주제라 가끔 생소한 기분을 맛보곤 한다.


6경우는 SNL에서도 한번 풍자됐던 풍경인데 식탁에 앉으면 식사는 음식이 나오고 10분-15분이 최대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돌아왔는데 30분이 채 안되게 지나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고 돌아와서는 각자 자리에서 한숨씩 잔다. 사무실에서 코 고는 소리가 종종 들리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처음엔 밥 먹는 속도를 못 따라가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느라 서랍 속에 간식을 쟁여놓고 오후시간을 버티기도 했다. 이전 회사 대표님은 앉으면 모든 면류는 3 젓가락에 한 그릇이 뚝딱 없어지던 분이었는데 덕분에 음식이 나오면 일단 코 박고 전력질주를 했다. 그때 쌓은 노하우로 지금은 거의 같은 속도로 먹고 일어난다. 가끔은 이런 나 자신이 신기할 때도 있다. 여초에선 점심시간 1시간을 살뜰히 아끼며 3-40분은 밥 먹고 커피타임을 꼭 가지며 수다 떨기에 바빴는데 정말 생경한 풍경이다.






남초나 여초나 다 같은 직장인데 풍경은 사뭇 다르다.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차이가 빚어내는 분위기나 직장문화가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각자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난 이제 남녀성비가 그래도 균등한 곳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곳은 어떤 느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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