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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Apr 01. 2024

03. 직장과 조금, 거리두기

일과 가정을 분리하자!

내 일상에 절반은 가정이요, 나머지 절반은 온통 '직장생활'이다.


내가 일을 시작할 즈음의 내 일은 '24시간이 모자란' 일이었다. 덕분에 싱글일 때는 정말 24시간 중 25시간을 일과 보냈다고 할 정도로 깨어나 있거나 잠이 들었거나 상관없이 일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아무래도 이제는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온전히 내 에너지를 직장에만 쏟을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나를 둘로 쪼개어 일과 가정에 투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서부터는 일과 가정을 분리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일과 가정을 분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끔찍하게 어려웠다. 특히나 일을 하면서 만난 신랑은 희소한 나의 직업군에 대해 너무나 잘 이해해 주는 환상의 짝꿍이었기에, 일 얘기를 같이 하는 것이 어찌나 즐겁던지...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도 일 얘기를 구구절절 신랑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일을 너무 잘 알고 이해해 준다는 건...
정말 축복이었다.  



결혼 생활 3년 차쯤 되었을 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신랑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너는 일과 가정을 분리할 필요가 있어. 집에 와서는 일 생각은 그만하는 습관을 길러보자.

 나한테도 일 이야기를 적당히 하면 좋겠어'.


솔직히 그 말을 들은 순간엔 살짝 섭섭함이 차올랐다. 연애기간까지 포함해서 근 5년 이상을 잘 들어주던 그였다. 갑자기 힘들어진 것은 아니었을 테고, 사랑의 힘으로 버텨온 것이었을까.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됐다. 내 일은 나만 사랑하는 것이지, 신랑까지 사랑해 줄 필요는 없었고, 내 일에서 오는 모든 희로애락을 그와 같이 하는 건 그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랑은 그동안 충분히 나를 공감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을 내가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을 하게 됐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면서, 일과 가정을 분리하는 작업은 꾸준히 진행이 됐다. 직장인 7년 차가 된 지금도 솔직히 온전히 일과 가정의 분리가 가능해졌다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예전에 비하면 훌륭한 수준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빨리 찾은 편이었고,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정말 정말 운이 좋게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중간에 공백기 없이 직장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이제 10년 차다. 가끔 만났을 때 '아 나는 이 일은 안 맞는 거 같아'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래도 나는 정말 운이 좋구나' 싶은 안도감을 가지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일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몰입감이 있게 일을 할 때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어떻게 할까?'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꿈에서도 일을 하며 잠꼬대를 해서 신랑이 놀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르니 일과 삶이 떼려야 뗄 수 없이 붙어있게 된 것 같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업무량과 난이도가 이전에 비해 다소 줄어들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일지. 일에 대한 집중도가 그만큼 내려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과 멀어지는 것이 쉬워졌다. 그만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일에 몰입하며 살아왔는지가 가늠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일하지 않는 시간에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해왔는데, 그동안 해왔던 자기 계발마저도 거의 일을 '더' 잘하거나,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에 들어서 집에 와서는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운동이나 일과 상관없는 자기 계발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일에서 멀어지면 불안할 것 같았지만, 내 세상이 더 넓어지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하루하루 더 삶이 더 충만해지는 느낌이랄까.



직장과 거리두기, 나에게는 꼭 필요한 숙제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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