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내용에 감명을 받았다거나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단 '미움받을 용기'라는 문구자체가 나 자신을 울린 것이 컸다.
어려서부터 난 그 미움받을 용기가 참으로 부족했다.누군가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거나 혹은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 이것이 부정적인 건가? 하고 의심을 많이 했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오히려 상대의 의도를 곡해해서 지레 겁을 먹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로 눈치를 많이 봤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게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고 계속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성격은 점점 소심해졌고 뭔가를 잘 해내기가 어려워졌다. 남의 기분,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보는데 나의 에너지의 80% 이상을 소진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저 그랬던 상황도 안 좋아지고 결국 더 미움을 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런 성격탓에 학창 시절부터 직장생활까지 괴롭힘을 종종 당했다.지금도 나는 내 뒷모습을 보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않는데, 내뒤에 대고 험담을 하던 그들이 떠올라 트라우마가 생긴탓이다. 지금도 그저 내 뒤에 누군가가 서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성인이 되면서 성격이 좀 바뀌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름대로 그런 것에 대응하는 스킬이 생기고 참고 견디는 것도 늘어났다. 예전보단 꽤나아진 모습이다.
이렇게 변화를 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결혼'이었다. 이런류의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않는 멘털갑 남편과 결혼하고 나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빠가 있어' 하고 덤덤하게 말해주는 그의 처방전이 나름 효과가 좋아 조금씩 더버틸 수 있게 되었다.
이전 직장 중 공백기를 한참 가지고 입사한 곳이 있었다. 그 전 직장 사수로부터 심한 괴롭힘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나에게 쏟아냈고 주눅이 든 나는 점점 더 안 하던 실수까지 했다. 일이 힘든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지만 사람이 힘든 건, 특히 사수가 괴롭히는 건 견디기가 힘들었다. 끝내는 내가 퇴사하는 쪽을 택했다. 그만두고 한동안 치유에 힘을 쏟으며 쉬었다.
쉬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참았을까. 그 사람한테 한 번이라도 당당하게 맞서볼걸.
이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그때 내가 떠올린 게 그거였다.
아, 난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구나.
당당하게 맞서고 그 뒤를 감당할 수 없다 생각했던 것 같다.
상급자이므로 어떻게든 보복당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딱 세 번. 참고 더 이상참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를 인격적으로 괴롭게 하는 건 더 이상 묵과하지 않기로 했다. 상식을 벗어난 괴롭힘을 당해줄 필요는 없었다. 세상에 나보다 소중한 이는 없으니까.
나는 내가 지켜야 했다.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지켜줄 수는 없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나서 지금까지 몇 개의 직장을 다녔지만 괴롭힘은 더 이상은 없었다. 지나고 나니 주변동료들이 말하길 뭔가 갑옷을 입은 양 늘 전투모드처럼 보였다나.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이미지였다고 웃으면서 농담처럼 얘기했다. 근데 사실이었다.
미움받을 용기로 무장하고 항상 일터로 향했다. 그렇다고 늘 좋은 일만 생긴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갑옷이 내 마음이 크게 다치는 건 막아줬다.
그만큼 미움받을 용기는 대단한 힘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미움받을 용기를 갖췄다고 말하기엔 부끄럽다. 여전히 속상한 일은 빈번하고, 가끔은 화가 나 퇴근 후 집에서 맥주를 들이켜기도 하고 가끔은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연차가 차고 직급이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좋은 건 직급이 오르면 괴롭히는 사람도 적다는 것.)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가 있다면, 조심스레 '미움받을 용기'라는 걸 가지려 노력해 보길 권하고 싶다.
미움받으면 어때. 괜찮아. 까짓 거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
그런 생각으로 작은 미움부터 사보는 게 중요하다. 작은 미움을 사고 내 마음은 조금만 다치는 거다. 미움받을 용기도 꽤나 많은 연습이 필요하더라.
어느새 3월. 오늘도 출근을 했다.
직장생활이란 게 정말 신기하게도 의도하든 안 하든 항상 미움받을 일 투성이다. 어쩌면 오늘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살 일이 가득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