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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Dec 02. 2022

병아리 감별사 vs 실험동물 감별사

작품성을 인정받아 상을 많이 받은 영화들은 내용이 공감이 잘되지 않는다거나, 해석이 어렵기도 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해서 나는 평소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영화 ‘미나리’는 평소 좋아하던 윤여정 배우님이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면서 장르가 드라마라고 하여 아이들과 함께 다 같이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 온 아빠 제이콥과 엄마 모니카가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장면이 나왔다. 병아리 감별사는 병아리 부화 직후, 30시간 이내에 성별을 감별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약 70억 마리의 수컷 병아리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수컷병아리는 달걀도 낳지 못하고, 살도 잘 찌지 않아서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의해, 산 채로 조각조각 잘려 가루가 되거나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질식사 시키는 방법으로 죽음을 당한다. 그 이전에는 산 채로 커다란 비닐에 넣어져 질식사 하는 방법도 사용되었다.


영화를 보다가 나는 이전에 내가 실험동물 생산회사로 이직했을 때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실험동물연구센터에서 근무한 지 4~5년이 지난 시점에 나는 실험동물 생산 회사로 이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생산시설은 단순노동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배울 것이 없는 곳이라고, 나의 커리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이라고 말하면서(나의 커리어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곳으로 이직하고자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들 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실험동물 전공자라면 당연히, ‘동물실험(연구), 번식관리(생산), 그리고 실험동물시설’ 이렇게 세 가지에 대해서는 이론만이 아닌 자세한 실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실험동물 번식 시스템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이직을 결심했다. 또 한편으로는 생산시설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동물실험 과정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실험동물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귀여운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 주 업무일 거라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다.


내 예상대로 역시, 동물실험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무서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산시설의 경우에도 병아리 감별사와 마찬가지로 태어난 당일 또는 그다음 날 성별판정을 한다. 이 시기에 성별 판정은 항문과 생식기 사이의 길이를 보고 판단한다. 그 길이가 짧으면 암컷, 길이가 길면 수컷이다. 물론 수컷이지만, 항문과 생식기 사이의 길이가 조금 짧거나, 암컷이지만 조금 긴 동물들도 있기에 잘 구분해야 한다. 성별 판정이 끝나면, 병아리와는 반대로 실험동물에서는 암컷의 거의 대부분이 안락사 된다. 암컷동물은 발정주기에 따라 변화되는 호르몬 등으로 인해 실험 결과 해석이 어렵다는 이유로 주로 실험에는 수컷동물들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서 허용이 불가한 방법이지만, 이전에는 수컷병아리와 마찬가지로 비닐에 넣어져 질식사 시켰다.


수컷병아리 안락사와 관련해 스위스(2020년), 독일(2021년), 프랑스(2022년) 등 농업 선진국들은 수컷 병아리에 대한 대량 도살을 금지하기 위해 최근 관련 법을 개정했고, 달걀의 성분 미량을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화할 병아리의 성별을 알아내거나, 달걀에서 나오는 가스의 미세한 성분 차이를 분석해 암수를 구별하는 등의 첨단 기술까지 도입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기술을 이용한다면, 수컷병아리들이 태어나자마자 대량 도살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마우스나 랫드는 달걀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병아리에서의 그러한 기술 개발을 바로 실험동물에게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하루빨리 실험동물에서도 이러한 기술이 개발되어 도입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 그보다 과학의 발전으로 동물실험 없는 그날이 오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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